집은 미리 이곳 동광동으로 이사를 오고
전학은 미처 이루어지지 않아
한동안 이 길을 걸어서
셋째 형과 함께 영주동 봉래국민학교로 통학했다.
형은 5학년이라 나보다 늦게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땐 늘 혼자 이 길을 돌아왔어야 했다.
방학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중간쯤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바닷가 소나기라 세차고 굵었다.
그 후론 그런 소나길 다시 맞은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우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쫄딱 맞고
겨우겨우 집으로 들어섰는데
하필이면 집엔 아무도 없었다.
추워 웅크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데
먼저 들어온 누나가 그런 나를 발견하곤
허겁지겁 내 젖은 옷 벗기고
마른 수건으로 몸 닦고
춥지 않게 새 옷 입혀 재워 줬던 기억이
이 길에 대한 추억으로 아직도 생생하다.
(위 사진) 삼거리에서. 왼편 길은 내가 태어났던 동네로 가는 길
(위 사진) 방송국 아랫길
(위 사진) 그 당시 우리 집 뒤쪽으로 난 골목길에서
길은 어느덧 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그 위엔 방송국이 있었는데
난 그 아래에 있던 동네에서 태어났다.
우린 그곳에서 5년을 살았는데
그래서 어머닌 가끔 방송국댁이란 호칭으로 불려지기도 하셨다.
S자로 휘어진 오름길 올라
그 동네를 가 본다.
방송국은 사라지고 입구엔 남성여고 팻말이 붙어 있다.
동네 아이들과 활개치고 놀았던
그 넓디 넓은 방송국 아랫길은
그냥 평범한 골목길이 되어 날 맞아 주고 있다.
늘 반질반질하던 정겨운 대청마루가 있던
그 당시 우리 집 터는
도대체 어딘지...
안타깝게도 알 길이 없다.
동네 아이들은 우리 집 뒤엔 귀신이 살고 있다며
집 뒤쪽 골목으로 이어지는 음침한 곳을 늘 무서워했다.
그런 무섭고 싫던 그곳이
다행히도 아직 예전 모습을 지니고 있어
우리 집 터 위치를 가늠케 하는 것을 도우고 있으니...
참... 세상 일이 어찌 이리 다 비슷한지...
(위 사진) 다시 영주동 가는 길에서
방송국 아랫동네에서 내려와
다시 영주동으로 이어진 곧게 난 길을 간다.
길 오른편은 축대로 단절되었었고,
그 축대 아래엔 큰 길이,
그 길 건너면 건축 폐기물로 채워진 넓은 빈 터,
그 너머는 항구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위 사진) 항구 쪽 전망
지금은 축대 아래와 큰 길 건너 빈 터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이 윗길 걸으며 즐길 수 있었던 항구 쪽 탁 트인 전망은
이젠 요원해졌고
철조망 안 갇힌 신세 같은 답답한 처지에서
벗어만 나도 좋을 것 같다.
(위 사진) 길 왼편 집들
영주동 쪽 영역으로 들어선다.
기억이 어슴푸레하지만
길 왼편 화분 많은 집은 친구네 집이었던 것 같다.
몇 채의 집들이
아직 그때 그 모습으로
지금도 항구를 향해 열 지어 선 광경에서
멀어져 버린 순정을 느낀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세요.
2011.04.28 09:06
그때 그곳으로 (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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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까지 확인해 보는 ,그리운 생애의 의욕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누나가 있어 보살피고 다독여주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네요
나도 그 동네들을 여울고 다니던 소녀시절을 더듬어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 일어나구요..
'순정은 남아 항구를 그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