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쳇말로,
앞사람 뒤꿈치서 날리는 먼지만 보며 걷는다는 제주올레길.
평소엔 블랙홀로 빨려 가듯, 열 지어 소풍 가듯 부지런히 걷던 올레꾼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양 감쪽같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여기 제주가 맞나 싶게 고요하여
행여 지나는 여행객이라도 만나면 눈이라도 마주치며 인사라도 하고 싶어진다.
최대의 방사능 수치 비가 예고되던 날 빗길 해안을 따라 종일 걸었다.
간간이 실 가락 빗방울은 머리카락처럼 흩날리고
푸른 바다 시커먼 바위 옆 유채는 그 빛이 샛노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하다.
걷기.
먼먼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아 온 가장 쉬운 일.
정신과 몸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즉,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존재함을 자각하는 행위로
감각적 오감의 체험과 내면의 사색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마음이 느슨히 무장 해제된 채로
내가 나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제각각인 만물과 조화를 이룰 방법은
확실히 이것뿐이지 싶다.
각박한 세상사와 시름 모두 내려놓고 긴 길을 온종일 걸을 수 있는 것처럼 행운이 있을까.
문명의 편리를 떨치고 걷고 싶은 본능에 마음껏 충실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느 자연예찬주의자는 하루 네 시간 이상 걸으면 삶을 삶답게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어딘가 걷고 싶은 곳이 있어
걸을 계획을 세우고
걷기의 스타트 점에 서면
벌써 머리끝은 찌릿
발바닥은 근질거리며
피부는 대기를 호흡하며 살들은 깨어나고
가슴은 벌써 저만큼 벌판을 달리고 바다를 넘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다.
걷기에서 얻는 깊은 충만감은 걷기에 홀려본 자만이 안다.
홀로 걸을 땐 누군가의 부재를 더 쓸쓸하게 확인하기도 하지만...........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살아 있는 자신으로 가득 채워져 더욱더 영롱해질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거나 먼 곳을 바라보는 신열이 있는 자들의 처방에도 걷기 이상 없다.
꽃과 갈대와 뒹굴어지고 내와 바다와 뒤섞이며 원초적 자유와 행복을 벅차게 느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정되고 화해하고 고집은 꺾이고 유순해지리라.
인생은 들판의 꽃과 같아서 지고 나면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도 못하고
어디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을까 만
걷지 않는다면 인생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 손은 바다를 잡고
한 손은 들을 붙잡고
리드미컬하게 팔까지 흔들며
콧노래 흥얼거리며
씨익씨익 웃어가며 벼랑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바닷물을 들이마시며
꽃향기를 따먹으며
내내 바람이 부는 언덕길을 또 걷는다.
아무것도 나를 교묘히 조종할 수 없고
나는 기꺼이 비이성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나의 걷기는 이기적이고
세상에 어떤 것도 겁내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텅 빈 마을을 지나고
길을 잃고 수상쩍은 거리를 헤매기도 하며
풍경은 매 순간 나를 선택해서 와락 와락 달려들 것이다.
(안녕하세요. 좋으신 분들의 좋은 글과 사진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해님 사진 크기 줄여 올리는 게 어렵네요. 해봐도 잘 안 되고 엑스로만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걷기에 홀려 봐야 알지요 ^^
"마음이 무장 해제된 채로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풍경이 와락와락 달려들다"
와! 정말... 구구절절 어찌 이리 딱 맞는 표현들을!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리 좋은 글 읽었으니 깊은 잠을 보장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