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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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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7 16:45

그때 그곳으로 (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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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살던 동네로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 용두산공원 입구까지 다시 거슬러 올라가
큰 길 건너 기상대와 남성초등학교 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 골목을 한 30m쯤 가다 오른편으로 돌면
곧고 긴 골목이 나타나는데
그 골목의 끝 마주하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위 사진) 우리 집이 보이는 곧고 긴 골목

초가을 저녁 먹고 밖으로 놀러 가기 위해 대문을 열면
서쪽으로 곧게 난 이 길 끝으로
힘 빠져 지는 해가 기상대 오르는 언덕에 걸렸고
주변은 지는 해가 털어낸 주황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인상적인 장면,
긴 세월 지워지지 않고 생생히 남아
그리움으로 환생하여
40여 년이 지난 지금
날 이곳으로 오게 하였으리라.

이 골목은 어린 나에겐 무척 넓은 길이었다.
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이 긴 골목 좌우에 살아,
놀고 싶을 땐 서쪽으로 곧게 난 길을 걸어가며
노올~~~자 노올~~~자 하면
적어도 2~3명의 친구들은
미닫이 대문을 스르르 열고
함박꽃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뛰쳐나왔다.


(위 사진) 그 시절 주택 형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집


(위 사진) 미군기지였던 곳엔 망해 버린 호텔이…

일본식 단층 주택으로 가득했던 골목은
이제 대부분 낡은 철근콘크리트 건물들로 빼곡하고,
그 건물들엔 모두 인쇄를 업으로 하는 사무실들이
서로 부대끼듯 촘촘히 들어서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높은 담으로 동네와 구분 지워진
옛 집 앞 미군들이 들락거리던 넓은 땅엔
언제 지어진 지 모르는
망해 버린 호텔이 폐허가 된 채 덩그러니 서 있다.


(위 사진)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우리 집이었던 곳

우리 집은 가운데 마당이 있고
그 마당을 ㄷ자로 감싸는 2층 주택이었다.
1층과 2층 남쪽을 우리가 쓰고,
남향으로 햇볕이 잘 드는 2층 북쪽은
남편 없이 딸만 셋 둔 아주머니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 얼굴엔 늘 잔잔한 미소가 가득하였고,
부드럽고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눈매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파닥거리는 나를
바로 얼어붙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두 딸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들이었고,
막내는 나보다 4살이나 어린 꼬맹이었다.
꼬마 숙녀는 나에겐 그지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난 오래 전부터 어머니께
여자 동생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있었는데
그 아이로 인해 내 소원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여름 어느 날 그 꼬맹이 막내가 덥다 하여
찬물에 목욕시키고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을 닦아 주고 있었는데
시장 갔다 돌아온 아주머니께서
그 광경을 보시곤 기겁하며 막내를 앗아 가 버렸다.

그 뒤론 아주머니 가족이 이사 갈 때까지
막내와 단둘이 노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미소와 부드러움이 사라진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면 이해는 되나
그래도 그냥 헛웃음만 흘러 나올 뿐이다.

지금 그 옛 집은 2층이었던 집이 3,4층으로 증축되었고
중앙 대문과 마당은 밀폐된 건물 층계로,
양 옆 건물은 1층에 각각 인쇄소가 하나씩 들어서 있다.


(위 사진) 오른편 앞집

지점장집이라 불린 우리 집 앞 오른편에 있던 집도
큼지막한 주황색 간판을 매단 인쇄소로 바뀌어져 있다.
그 집 아들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동네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도 않고
늘 그 집 앞마당에서 바이올린만 켜고 있었다.
학교도 남성국민학교로 우리완 달라 그 이질감이 더했다.
이사 오기 전 난 남성국민학교 입학 추첨에서 떨어졌는데
그 학교를 다니면 다 저리 되나 보다 하여
그 추첨에서 떨어진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아이의 여동생은
인사성 바르고
목소리는 잔잔하였고
말은 천천히 하였으나 답답하지 않았고 항상 예의 바른 어투였다.
날 오빠라 부르며
우리 가족과 용두산공원에 함께 가기도 할 정도로 친근성도 있었다.

그 아인 늘 흰 양말과 까만 단화를 신고 다녔는데
그 인상이 그 뒤 내가 여자를 보는 판단기준을 형성시켜 버렸다.
단정한 까만 단화와 하아얀 양말을 신고만 있으면
무조건 최고의 여자로 판정하였으니 말이다.

앞집 담 아래는 잎새 많은 나무로 늘 그늘이 져서
초여름 한낮엔 명당이 따로 없었다.
우선 시원하고
그 아래에서 형이나 누나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는
정말 크고 또렸하게 들렸으니 말이다.


(위 사진) 옛 집 앞 정겨웠던 골목은 어디로 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곳에서 그때를 되새기며 한참을 쉬어 볼 거라고
등산용 간이 의자까지 들고 왔건만
그곳의 잎새 많은 나무는커녕 정겨웠던 담벼락은
에어컨 실외기로 가득하고
공기는 인쇄기름 냄새와 먼지로 탁하고
골목은 공사로 어디 앉기도 마땅찮으니
가히 꿈은 산산조각난 유리 컵 꼴이다.

졸지에
계획한 시간은 턱없이 많이 남게 되었다.



  • ?
    청솔지기 2011.04.18 06:22
    세월이 흘러
    그 빛까지 바래버린 유년시절 추억의 보물창고,
    낭만을 일깨우는 아릿한 글들...잘 보고지냅니다.
  • ?
    공수 2011.04.19 12:19
    이 이야기꾼은 그동안 어디에서 뭘하고 입 다물고 살았는고?
    자주 만나니 반갑고 즐겁우이!
    자주 난나세!
  • ?
    섬호정 2011.06.24 08:30
    추억!이란 아련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읽어가는 것 같습니다
    허허바다님의 무궁한 추억의 세계 속으로 땀 흘리며 뛰어가듯
    좁은 골목길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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