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이어간다.
북쪽으로 난 골목을 지나
이사 오기 전 동네로의 꽤나 길었던 길이다.
(위 사진) 북쪽으로 난 좁다란 골목
(위 사진) 골목 따라 이어진 큰 길로 내려가는 통로
북쪽으로 난 좁다란 골목은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고집스럽게도 여전히 그 넓이로만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큰 길로 내려서기 전 왼편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단정하게 생긴 집 고양이 한 마리가
날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순간, 색 바랜 기억이
잠시 그쪽을 둘러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쪽은 예쁜 우리 반 여자 부반장 아이가 살던 곳이다.
(위 사진) 여자 부반장 아이 집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길
고양이는 마치 나를 안내라도 하듯이
계단을 오르며 가끔 힐끗 뒤를 돌아다보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이 가파르고 디딤 면이 좁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오르다
고개 들어 다시 그 고양이를 찾으니
어느 집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사라져 버렸다.
이쯤이 그 아이네 집이었을 텐데
변해 버린 주변 모습과
그 후 그 집이 새 단장해 버렸는지
그 집을 찾아내기는 이 짧은 시간엔 어렵게 되었다.
가파른 계단 길 끝까지 가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적한 계단 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어느 늦가을 오후였던 것 같다.
그 아이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날 불렀다.
학교 파하고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며 같이 오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며 헤어졌었는데
웬 일일까 하며 문을 열었다.
자기와 함께 큰 길 건너 학교 아래에 있는
여관에 같이 가 달라는 것이었다.
그곳엔 자가 아버지가 계시다고 했다.
지금이야 별 생각을 다하며 추정을 했겠지만
그 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도 없었고
그저 그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
그러자며 함께 그곳으로 향했었다.
그 여관이 있는 곳은
우리 선생님이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동네 안쪽 끝에 있었다.
뭔가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내색 않고 함께 걸어갔다.
자기 아버지에게 가는 건데도
그 아인 그리 내키지 않은 듯 자꾸 뒤쳐졌다.
함께 그 여관 2층으로 가
나는 복도에 서 있고
그 아인 자기 아빠가 계시다는 방으로 들어섰다.
한 5분쯤 지나 그 아인 붉은 얼굴로 나와
말없이 앞장 서 갔다.
뭔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상황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고 없다.
그 아이가 예뻤다는 건
내 기억이 분명하다고 판정하고 있어도
그 아이의 얼굴 모습은 전혀 떠올릴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상황에 대한 기억은
왜 이리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
이제 나이 지긋이 들어
지금이라면
그 상황을 추정하여
서너 가지로 결론 내고
위로도 하고 그 마음 다독거려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붉어진 그 아이의 얼굴만
안쓰러웠을 뿐이다.
그래도 반 아이들 중에 내가
거기에 같이 가 달라고 할 정도
마음 편한 벗이었다는 게
지금에서야 뿌듯하고,
그래서 더 그 아이가 그립다.
다시 이사를 가야 했고 그래서 전학을 가면서
그땐 왜 서로 연락처를 나누고
인연을 이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허긴 그러기엔 너무 어렸으니 ㅎㅎㅎ
어떻게 잘 살고는 있는지...
(위 사진) 빈 집으로 남아 황폐화된 계단 길 옆 집
생각을 추스르고
계단 길을 내려온다.
길 오른 편 빈 집, 깨진 창문 안쪽엔
덩그러니 남겨진
외로운 추억들만 가득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세요.
2011.04.20 15:30
그때 그곳으로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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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올 줄 고대하였더만,,,ㅎㅎ
참 순진하셨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