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사랑방>사랑방이야기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세요.
2011.04.20 15:30

그때 그곳으로 (7)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다시 길을 이어간다.
북쪽으로 난 골목을 지나
이사 오기 전 동네로의 꽤나 길었던 길이다.


(위 사진) 북쪽으로 난 좁다란 골목


(위 사진) 골목 따라 이어진 큰 길로 내려가는 통로

북쪽으로 난 좁다란 골목은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고집스럽게도 여전히 그 넓이로만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큰 길로 내려서기 전 왼편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단정하게 생긴 집 고양이 한 마리가
날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순간, 색 바랜 기억이
잠시 그쪽을 둘러가라고 등을 떠민다.
그쪽은 예쁜 우리 반 여자 부반장 아이가 살던 곳이다.


(위 사진) 여자 부반장 아이 집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길

고양이는 마치 나를 안내라도 하듯이
계단을 오르며 가끔 힐끗 뒤를 돌아다보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이 가파르고 디딤 면이 좁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오르다
고개 들어 다시 그 고양이를 찾으니
어느 집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사라져 버렸다.

이쯤이 그 아이네 집이었을 텐데
변해 버린 주변 모습과
그 후 그 집이 새 단장해 버렸는지
그 집을 찾아내기는 이 짧은 시간엔 어렵게 되었다.
가파른 계단 길 끝까지 가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적한 계단 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어느 늦가을 오후였던 것 같다.
그 아이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날 불렀다.
학교 파하고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며 같이 오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며 헤어졌었는데
웬 일일까 하며 문을 열었다.

자기와 함께 큰 길 건너 학교 아래에 있는
여관에 같이 가 달라는 것이었다.
그곳엔 자가 아버지가 계시다고 했다.
지금이야 별 생각을 다하며 추정을 했겠지만
그 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도 없었고
그저 그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
그러자며 함께 그곳으로 향했었다.

그 여관이 있는 곳은
우리 선생님이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동네 안쪽 끝에 있었다.
뭔가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내색 않고 함께 걸어갔다.
자기 아버지에게 가는 건데도
그 아인 그리 내키지 않은 듯 자꾸 뒤쳐졌다.

함께 그 여관 2층으로 가
나는 복도에 서 있고
그 아인 자기 아빠가 계시다는 방으로 들어섰다.
한 5분쯤 지나 그 아인 붉은 얼굴로 나와
말없이 앞장 서 갔다.
뭔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상황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고 없다.

그 아이가 예뻤다는 건
내 기억이 분명하다고 판정하고 있어도
그 아이의 얼굴 모습은 전혀 떠올릴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상황에 대한 기억은
왜 이리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

이제 나이 지긋이 들어
지금이라면
그 상황을 추정하여
서너 가지로 결론 내고
위로도 하고 그 마음 다독거려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붉어진 그 아이의 얼굴만
안쓰러웠을 뿐이다.

그래도 반 아이들 중에 내가
거기에 같이 가 달라고 할 정도
마음 편한 벗이었다는 게
지금에서야 뿌듯하고,
그래서 더 그 아이가 그립다.

다시 이사를 가야 했고 그래서 전학을 가면서
그땐 왜 서로 연락처를 나누고
인연을 이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허긴 그러기엔 너무 어렸으니 ㅎㅎㅎ
어떻게 잘 살고는 있는지...


(위 사진) 빈 집으로 남아 황폐화된 계단 길 옆 집

생각을 추스르고
계단 길을 내려온다.

길 오른 편 빈 집, 깨진 창문 안쪽엔
덩그러니 남겨진
외로운 추억들만 가득하다...



  • ?
    슬기난 2011.04.21 06:23
    쭈욱 내려가며 그 여자아이와 무슨 첫사랑의 비밀 이야기가
    나올 줄 고대하였더만,,,ㅎㅎ
    참 순진하셨습니다요^^*,
  • ?
    섬호정 2011.06.24 07:09
    추억의 저편 기슭에 도사리고 있을 선명한 추억 또 한 점을 기다리며
    가슴 두근거리며 잘 읽었습니다...역시 글을 맛갈스럽게도 잘 쓰시던 허허바다님 반갑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사진 업로드 2 하해 2016.07.01
공지 변경된 사이트 이용 안내입니다. 하해 2016.05.20
공지 해연님의『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출간! 9 하해 2009.07.01
공지 이 곳을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께--필독 17 운영자 2008.07.19
5851 안녕하세요~만화가 입니다^^ 5 file 예모 2011.05.07
5850 붉은 꽃봉오리 5 file 허허바다 2011.05.07
5849 그때 그곳으로 (10) 4 허허바다 2011.04.30
5848 우린 그때... 1 file 허허바다 2011.04.29
5847 하성목님에 대해서.. 4 푸르니 2011.04.29
5846 노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2 file 산사나이 2011.04.28
5845 그때 그곳으로 (9) 1 허허바다 2011.04.28
5844 흙과 먼지가 있는 현장에서 2 file 허허바다 2011.04.26
5843 바래봉에 철쭉은 언제가면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2 팽구 2011.04.26
5842 오늘의 화두는 '사랑' 2 푸르니 2011.04.26
5841 그때 그곳으로 (8) 3 허허바다 2011.04.24
5840 단풍나무 고집 2 file 허허바다 2011.04.21
5839 터 잡고 산다는 것이란... 1 file 허허바다 2011.04.21
» 그때 그곳으로 (7) 2 허허바다 2011.04.20
5837 꽃바람이 붑니다. 3 file 공수 2011.04.19
5836 공작춤! 5 file 슬기난 2011.04.18
5835 걷기 예찬 8 file 연하(煙霞) 2011.04.18
5834 그때 그곳으로 (6) 3 허허바다 2011.04.17
5833 여수 영취산 진달래 2 file 산사나이 2011.04.16
5832 바탕화면 정리 2 file 허허바다 2011.04.1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316 Next
/ 31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