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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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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사암의 '아름다운 그림'

쌍계별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밤 사이 눈이 내려 온 세상이 백설천국으로 변해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온통 하얀 솜을 깔아놓은 것과 같이 순백의 순수세계다. 나는 그 순수한 눈밭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쌍계사 경내를 통과하여 불일폭포를 향해 서둘러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국사암 갈림길 앞에서 나는 짐승의 발자국에 무의식중에 홀렸다. 아주 덩치가 큰 짐승의 발자국이 국사암 가는 길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더구나 그 짐승이 꼬리를 끌고 간 흔적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짐승은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많은 발자국이 국사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 모자이크가 돼 있었다.

이른 아침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국사암의 모습이 동화세계와 같았다. 사천왕수와 돌담장, 아담한 법당 건물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다음 순간 나는 가슴이 쿵했다. 진짜 그림을 그리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온 때문이었다. 그녀는 법당 축담에 이젤을 세워놓고 설경을 화폭에 담는 것에 아주 몰입해 있었다.

그녀는 얼마나 그림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는지 나의 출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림을 그리느라 나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국사암 뜰에 들어서기 전에는 설경과 어울린 국사암이 그림과 같았다. 그런데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 자체가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으로 생각됐다.

나는 불일폭포의 변규화님을 만나보려던 생각도 잠시 잊고 '그림을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지켜보느라 한동안 넋이 팔려 있었다. 한번씩 얼굴을 훔쳐보니 그녀는 20대 후반의 미혼여성일 것으로 생각됐다. 그녀에게 뭔가 한마디 말을 건네보고 싶은 강렬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어찌 그녀의 창작을 방해할 수 있으리오.

나는 별수없이 발길을 돌렸다. 나에게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녀가 정말 멋진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나는 그 이후 그녀의 모습을 두번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국사암에 들러면 그녀의 모습을 환영처럼 보게 된다. 그녀도 이제는 50대로 늙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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