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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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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단풍의 바다에 익사하다(2)

지리산 산길을 야간에 걸어간 것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계절에 따라, 또는 곳에 따라 랜턴 없이도 걸을 수 있었다. 달빛이나 별빛이 스며들기도 하고, 무슨 빛인가 반사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81년 가을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내려오던 그 길은 무성한 숲에 가려 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어둠의 포로가 된 것이다.

그 때의 등산로는 물론 지금처럼 돌계단길로 정비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한 발만 내디뎌도 돌부리에 채이고, 빗물에 패인 수렁에 허물어진 곳도 있었다. 일행은 너나없이 넘어지고 엎어지는 하였다. 그럴 때마다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앞 사람 허리를 잡고 발을 옮기다 함께 나둥굴기도 하였다. 이건 아주 지독한 연옥이었다.

누군가 욕지꺼리를 터트리는가 하면, 나를 비난하는 소리도 쏟아냈다. 하지만 나로선 잡아죽인다고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모두가 완벽하게 시야를 잃었으니, 발바닥으로 한발한발 땅바닥을 더듬으며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이라면 아마 날이 새기 전에는 화엄사 여관촌에 닿지 못할 듯했다. 참으로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한동안 그런 소동 끝에 모두가 지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신음소리가 진동했다. 바로 그 때 수협에 근무하는 이아무개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기서 푹 쉬세요. 제가 저 아래 서어나무야영장까지 가서 전등을 빌려올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둠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는 넋이 나가 그녀를 따라가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그녀를 따라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모두가 너무 지쳐 길바닥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빠른 속도로 랜턴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녀는 야영장에서 여러 개의 랜턴을 빌어 번개같이 달려왔다. 그녀는 광명의 세계를 열어준 천사였다.

랜턴 불빛에 의해 화엄사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다시 정상으로 뚫렸다. 서어나무야영장에 닿자 노고단에 오르지 않고 여관촌에 머물던 소설가 최해군 선생 등이 불을 들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여관에 닿은 일행은 모두가 이아무개양을 생명의 은인이라며 칭송했다. 그녀는 그 즉석에서 우리 산악회의 평생 무료회원으로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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