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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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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총알처럼 날아간 배낭(2)

김성종님의 배낭을 받아 둘러메기가 바쁘게 총알처럼 사라진 그 청년을 따라가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가 빠른 걸음 그대로 계속 가버린다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게 뻔했다. 그 청년은 나의 배낭을 메주겠다고 했는데, 그에게 나는 김성종님 배낭을 메달라고 했던 것이다. 배낭을 잃게 되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었다.

"그 청년 전혀 모르는 사람인가요?" 김성종님이 아무래도 배낭 행방이 불안한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예, 성도 이름도 몰라요. 군에서 막 제대를 했다며 취사도구도 없이 라면 몇 개만 가지고 올랐다더군요. 취사 도구를 빌려달라는 조건으로 배낭을 대신 메고 갔는데...!" 사실 그것이 내가 청년과 짧게 나눈 얘기의 전부였다.

과묵한 성격으로 말을 아끼는 김성종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최고 베스트셀러 추리작가인 그이는 나를 얼마나 어이없는 놈으로 생각할 것인가! 낯선 청년에게 아무런 다짐이나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덥석 배낭을 내다맡겼으니 생각할수록 나의 경박한 처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었다.

혹시 그 청년이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로 지치고 힘든 것도 잊고 숨을 헐떡거리며 걸음을 서둘렀지만, 그의 그림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새 하루 해도 뉘엇뉘엇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만 아주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야영지인 세석고원에 도착했을 때는 정신적 피곤까지 겹쳐 그야말로 '파김치'가 돼 있었다.

"선생님, 이제 오세요? 제가 밥 하고 찌개 다 해놓았어요!" 아, 나의 배낭을 받아주는 사람은 바로 박박머리 그 청년이 아니겠는가. 걸음이 빠른 그는 먼저 도착하여 밥 짓고 텐트까지 쳐놓았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참으로 순박한 모습이었다. 이런 청년을 '도둑'으로 단정하고 저주를 하다니!

그 청년은 우리와 한 가족이 되어 다음날 중산리에 닿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대신 메주었다. 얘기를 나눌수록 믿음직하고 좋은 친구였다. 지리산에서 만난 산같이 가슴이 넓은 청년을 마구 의심했던 게 얼마나 민망하고 후회스러운지 몰랐다. 이제 40대 후반의 나이가 됐을 그가 지금도 지리산을 자주 찾고 있을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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