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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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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왕봉과의 첫 만남(2)

74년 당시는 지리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아주 드물었다. 더구나 12월19일은 이미 적설기로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도 사진기자와 나는 단화에 바바리코트를 걸친 채 배낭 하나 메지 않고 천왕봉으로 오르고 있었으니, 호통을 들을 만 했다. 우리를 야단치는 사람들은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광주 산악인들이었다.

그 무렵 나는 부산의 근교산들을 다녔기 때문에 산행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교산에도 등산객은 많지 않았는데 당시의 산행은 군대식으로 아주 엄격했다. 열명이든 스무명이든 일렬로 열을 지어 질서정연하게 이동했고, 휴식할 때도 "뒤로 전달. 10분 휴식!" 하고 외쳤다. 단독산행을 하는 이는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광주 산악인들은 나와 사진기자에게 호통을 치는 것은 물론, 천왕봉 등정을 허용할 수 없다며 강제하산을 시키려고 했다. 선배 사진기자가 '취재'를 내세워 변명을 한 끝에 겨우 그들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날씨는 아주 쾌청하여 햇살을 흠뿍 받아서인지 별로 춥지는 않았다. 우리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법계사 초막에 닿게 되었다.

법계사는 전란 때 불탄 이후 그대로 방치돼 있었는데 노천에 모신 불상을 천막으로 덮어놓고 있었다. 법계사 앞에 손보살(한청화)의 단칸 초막이 있었는데, 그녀 대신 키가 큰 중년의 사나이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초막에 닿은 사진기자는 자신은 한 발자국도 옮겨놓을 수 없다며 나더러 천왕봉에 혼자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 말 하지 않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광주산악인들이 다녀간 덕분에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발자국이 잘 연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위로 오를수록 점차 적설량이 많아지면서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해도 뉘엇뉘엇 기울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되돌아내려갈까 하고 주저앉으며 위를 보니 하늘이 뻥 뚫려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바로 위가 천왕봉이었다. 나는 마침내 천왕봉에 올라섰다. 온 세상이 발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짧은 일순간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강풍이 얼마나 거센지 나를 날려보낼 듯했다. 나는 천왕봉에서 소변을 보는 짧은 순간만 겨우 머물고 급히 법계사 쪽으로 내려섰다. 사위가 벌써 어둑어둑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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