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추억의지리산,사랑의지리산(최화수)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173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5> 불일암의 검정고무신 두 켤레

쌍계별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 시각에 국사암을 거쳐 불일폭포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백설의 천국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1980년 12월, 그 날의 그토록 환상적인 설경은 그 이후 지리산에선 다시 만나지 못 했다. 적설기 지리산 눈 세계는 언제나 마주치지만, 발목까지 빠지는 서설의 경이와는 다른 것이다.

불일폭포도 온통 은세계였다. 청학이나 홍학도 만날 수 없었지만, 적막강산의 백설세계가 안겨주는 신비로움은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폭포 바닥에 내려갈 때는 몰랐었다. 되돌아 올라오는 길에 작고 야트막한 지붕 한 채가 보였다. 벼랑 위에 웬 집일까? 가만히 올라가보니 작은 움막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불일암(佛日庵)이었다.

'열걸음에 한번 쉬고 아홉번 돌아보면서 비로소 불일암에 도착했다. 이곳이 곧 청학동이다. 이 암자는 허공에 매달린 듯한 바위 위에 있어 아래로 내려다 볼 수가 없었다. 동쪽에 높고 가파르게 떠받치듯 솟아 조금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향로봉이고, 서쪽엔 푸른 벼랑을 깎아내어 만 길 낭떠러지로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이다.'

1558년 이곳을 찾았던 남명선생의 기록이다. 그 때는 지금의 길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 올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일폭포란 이름은 지눌(知訥)선사가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다 입적하자 그의 호인 '불일'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1489년 이곳을 찾았던 김일손의 '속 두류록'에도 이곳을 청학동으로 보았고, 청학이 날아든다고도 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스님이 아니더라도 유명 석학들이 찾아와 깊은 상념에 잠겨들었을 그 불일암이다. 하지만 움막집은 너무 낡아 지붕이 방금이라도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듯이 보였다. 방문 앞 축담에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스님을 만나보고자 헛기침을 했지만 방문은 끝내 열리지 아니했다.

흰 눈세계에서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검정 고무신 두 켤레! 나는 그 고무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상상으로 그려보기로 하고 돌아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로부터 몇 달 가지 않아 그 불일암은 스님끼리의 갈등으로 소실되고 말았다. 아직도 빈터로 썰렁한 그곳에 검정 고무신 두 켤레의 잔영만 남아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0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 최화수 2002.09.08 4348
99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2) 최화수 2002.09.08 2742
98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3) 최화수 2002.09.08 2501
97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4) 최화수 2002.09.08 2020
96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5) 최화수 2002.09.08 2010
95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6) 최화수 2002.09.08 1935
94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7) 최화수 2002.09.08 1850
93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8) 최화수 2002.09.08 1994
92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9) 최화수 2002.09.08 2037
91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0) 최화수 2002.09.08 2267
»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1) 최화수 2002.09.08 1739
89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2) 최화수 2002.09.08 1495
88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3) 최화수 2002.09.08 1375
87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4) 최화수 2002.09.08 1358
86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5) 최화수 2002.09.08 1279
85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6) 최화수 2002.09.08 1292
84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7) 최화수 2002.09.08 1267
83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8) 최화수 2002.09.08 1245
82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19) 최화수 2002.09.08 1248
81 '추억의 지리산, 사랑의 지리산'(20) 최화수 2002.09.08 128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