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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랑방>삶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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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며(2) 벽라춘을 마시는 날
  
   
                                -도명-

비오는 아침에 눈을 뜨면 따스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진다
오늘도 여지없이  눈길은 다관을 향해 머문다
이 아침엔 무슨 차를 따숩게 마실까...

오래 전 석불회에서 만나 교분을 맺어 온 인연 젊은 여류 작가 배연파님이 
정성껏 손수 빚어서 만든 예쁜 신형 다관을 만진다. 
그녀처럼 맑고 깨끗한 색깔인 하얀 다기는 그녀의 단양토굴 풀꽃 마당에서 
채집해 둔 작은 풀꽃 잎을 새겨 넣은 다관이다. 
찻잔 바닥에도 같은 풀꽃 문양이 옅은 갈색으로 페인팅 되어 자칫 찻잎이 
불어서 가라 앉은 줄로 착각하며 마시던 찻잔이다. 

어느 새해에 연하장을 보내는 대신 그녀는 멋진 다구를 건네 주었었다. 
이 다구는 간편하여 미국 생활을 위해 잠시 떠날 때에도 나와 동행하던 
정이 깃 든 그릇이다. 
 
 오늘 아침에는 며칠 전 안국동 찻집 茶經園에서 길상화님이 건네준 
벽라춘을 우려 마시기로 한다.    
좋은 벽라춘은 값이 좀 나가는,  만지기 쉽지않은 중국차라서 자주 만나질 
못했었다. 
마침 소암스님의 ' 다로경권'* 봄호에 실린 글을 읽으며 함께 자리한 茶席이
라서  다경원의 茶母는 벽라춘을 선선히 덜어내 주었었다 .

그 벽라춘을 홀로 조용히 음미하는 아침이다.
찻물이 설설 끓어오르는 소리에 왠지 가슴이 설레인다.
마치 예고하고 방문하는 귀한 志人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벽라춘을 수저에 덜어서 배연파님 다관에 옮기는데 아뿔사, 손이 왜 부르르 
떨리는지 찻잎이 흩어지는 바람에 아까운 찻잎을 쓸어 담아 쇠걸름 그물에 넣어 
물로 슬쩍 씻어서 다관에 함께 다시 담으며 혼자 웃고 말았다. 
만일에 귀한 지인 앞이라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물론 아까웠어도 쓸어담은 
찻잎을 씻어서 함께 다관에 담아 넣지는 않았을 테지만, 찻잎이 소중해서인지, 
자신에겐 스스로 지나치게 허물없이 대하는 것인지...

얼른 한 잔을 우려내어 찻잔에 따라서 흠취해 본다. 
좀전의 차분하지 못하던 심리 상태 여서인가, 차향도 차맛도 별다른 느낌이 오질
 않는다. 역시 차를 우릴 때에는 마음도 행동도 잘 가다듬어야 함을 깨닫는다.

 다시 맑은 따순 물을 부어서 두 번째 차를 울구며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한다. 
잘 우려진 차를 조심스레 찻잔에 부어 초의선사 작은 영정 앞에 한잔을 올렸다. 
이 순간 떠오르는 모습... 
매주 화요일마다 시조세계 방에서 백선생님은 늘 조용히 차를 먼저 우려서 내며 
모인 시인들에게 시조 스타디를 이끌어 주시는데, 그 때마다 차를 처음 우려낸 
첫 잔을 정성껏 들고 일어나 사무실에 모신 육우님의 진영에 헌다를 하시는 
백이운 시인님을 연상해 본다. 

늘 차향에 쌓여 살아오면서도 일상에서는 차를 우려 마실 때에, 곧 바로 나의 
입술에 먼저 대어 버렸던 지나간  몇몇 날 들이 송구스럽다.  
얼마전 향.찾.사 모임의 방장 박희준님이 선물해 준 차와 초의선사 영정을  
서재에 모셨다. 초의선사께 정성껏 헌다 생활을 일상화하라는 메시지로 알고 
새삼 마음을 가다듬는다. 

주변에 향기로운 다인 들의 모습을 가까이 대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평생을  우리차를 즐기며 늘 변함없이 실행하는 백이운시인의 조신하고 단아한 
헌다(獻茶) 모습에서 처럼 고상한 茶人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소중한 차에 대한 
예의라 생각되어 오늘은 귀한 벽라춘 차를 마주하고 다짐하는 아침이다.

이른 아침에 마시는 차 , 오늘의 벽라춘이 주변의 여러 차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茶人이 해야 하는 일상적인 차생활 기본을 허튼 맘으로 지나쳐 버리지 말자. 
고요한 모습으로 맑은 정신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차를 대하여 마시는 
다도의 예를 지니고 살자. 
홀로 마시는 차에게서 자신을 견책하고 스스로 탁마한다. 

아, 한 낮에는 오래 만에 차 소꿉을 좀 살아 보아야겠다. 어린 시절처럼,
찻 상을 마루 한가운데에 옮겨 놓고 이곳 저곳에서 구해 왔던 나의 귀한 찻잔들을 
꺼내어서 세 명의 정 깊은 차 벗들을 가상으로 모셔다가 앉히고 度明의 主 특기인 
차 소꿉놀이를 하는 게다.
나는 팽주요 그대는 팽객 이라면서... 
이러는 중에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귀여운 내 외손녀 도윤이랑 진짜 재미있는 차 茶
소꿉놀이가 벌어질 것이다. 
벽라춘 찻봉지를 닫으며 잠시 즐거운 기분이 되어 혼자 말을 주절거린다.
다경원에서 차를 건네준 길상화님에게 감사를 보내며 졸시 한 편을 새로 읊는다.

                茶經園 찻집에서

                                      도명

   烹主랑  오순도순 찻물 설설 끓인다
  마음 담은  無 遮 詩  벽을 향해 읊으며
  매화차  향기에 취해  환희로움 깊어간다.

  무릎 어깨  맞댈 만큼  아늑하여  좋은 집
  만행 뒤의 차 공양  승속이  따로 없다
  부처님  발자취 따라  普이茶맛 속을 걷네.

   -오영희 시조집<섬진강소견>중에서-

*無遮詩 : 격의없이 차를 마시며 애송시 낭송(무차시낭송회를 운영함)

*茶爐經卷 : 해인사 학인스님들의 차 월간지

  -2004. 9. . 竹宣齋에서 오영희-  

  • ?
    섬호정 2004.10.03 20:54
    찻집을 가는 곳이 안국동 인사동등에 몇군데 있지만,차값을 지불하며 마시는 꼭 같은 차 일지라도 마치 내 다실에서 편안한 마음이 되어 마시는 그런 찻집이 꼭 필요하다. 물론 찻집의 茶母의 분위기가 그런 차맛을 주는 곳이라야 한다. 그런 찻집을 전전하며 무차시낭송을 해 온터이지만,다모가 함께 시를 낭송하는 찻집은 다경원이어서 고마움을 더한다. 하여서 무차시낭송의 본거지라 해 오고 있다. 찻집에 들르는 낯선 스님들도, 낯선 차객들도 동참하는 분위기여서 더욱 친근한 분위기이다....이곳을 우리는 <무차다실>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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