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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랑방>삶의추억

2004.12.06 09:08

백석현 이야기

조회 수 147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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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현 이야기

어느날 사무실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누가 '천전초등학교 동창 백석현'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목소리도 낮설고 이름도 낮설다.
초등학교 졸업한지 햇수로 26년,그동안 험난한 세파에 시달리며 정신없이 살다보니,특별히 친하던 사람 외에는 다 망각의 먹구름 속에 잃어버렸는데,상대는 나를 잘 알고 있다.

퇴근하여 세운상가 앞 공중전화에서 알려준 다이얼을 돌리니 5분 뒤에 그가 나타나 인파 속에서 공중전화 부쓰에 서있는 나에게 닥아온다.서로 상대를 짐작하여 확인 후 만났다.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전화 걸고 불쑥 찾아오는 친구는 대개 월부책 사달라는 일이 많다.경계의 눈초리로 형색을 살펴보면서 근처 다방으로 갔다.
'진주서 3년 전에 자네 부친을 뵈었네.'
말하는 걸 보니 동창이 맞긴 맞는데,그래도 자기는 커피 나는 홍차를 시켜놓고서도 그가 누군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찾아온 용건은 내가 근무하는 전자회사와 관련된 일.자세히 내력을 들어보고 연관성이 없음을 설명해주었다.그는 초등 동창 근황을 이야기했다.

서영상은 중대 졸업 후 헌병 하다가 제대하여 진주서 30억원 정도의 재산을 모았다가 서울로 올라와 건설회사를 채렸다가 망했고,소싯적에 방직공장 외아들로 계집애 밝히던 추용식이는 지금도 상팔자로 피아트 승용차 끌고 낚시 다니고,구자연은 통조림공장을 채려서 잘 하고 있고,김덕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방직공장을 하고있고,시장 근처에 살던 한명호는 건축기사로 일하고,공 잘 차던 여옥이는 술 때문에 문제가 많고,칠암동 정덕일이는 마산서 선생 하고있고,반장 박현태는 서울서 교편 잡고있는데,서로 소식 모르느냐는 것이다.

반가운 친구들 소식 들으니 틀림은 없는데,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그가 정확히 기억나지않아,
'배건너 니네 집은 어디 살았노?'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섭섭한 기색을 보이더니.
'니네 집 6거리서 백 미터도 안떨어진 해인고 앞인데...'
말꼬리를 흐리더니,갑자기 큰소리로
'아!우리집 옆에 큰 공동우물이 있고,그 앞에 이발소가 않있었나?성수네 정미소가 그 옆에 있고...'
한다.
그 소리 들으니 금방 살짝곰보에 항시 초라한 옷을 입고다니던 백석현이 얼굴과 그 시절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맞다 이 친구가 맞다.

무더운 여름이면  해인고등학교 탱자나무 그늘에서 낮잠도 자고,장기도 두고,운동장에서 공도 찼다.거기 나중에 축구 국가대표하던 홍경구도 있었다.태양이 이글이글 땅을 불태우는 더운 날씨엔 길가 하수도 물을 한길에 뿌려놓고 평상에 앉아 때기 따먹기도 했고,이윽고 해가 기울어 거리에 그늘이 덮히고 산들바람이 불면 부채를 펄럭이며 어른들이 평상에 나와 잡담을 시작한다.

청년들은 지네끼리 모여앉아 지나가는 처녀들 용모를 채점하고,간혹 손가락을 꼬부려 입에 넣고 휘파람도 불었고,때로는 처녀들에게 히야까시도 넣었다.서로 어디 사는지 잘 아는 처지라 그러면 그냥 모른체 지나가는 처녀도 있지만,괜히 몇마뒤 딱딱거리며 뭐라고 입을 삐쭉거리며 시비를 걸어보다가 가는 처녀도 있었다.
대가수 남인수 고향 아니랄까봐 청년들은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못쓸건 이내 심사',남인수의 대표가요 '청춘 고백'을 구성지게 부르고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백석현의 출현으로 년전에 할머니 산소 다녀오던 길에 들른 배건너 6거리 풍경이 떠올랐다.

21살에 군에 입대한 후,대학시절 드문드문 가 본 일 제외하곤 15년만에 찾아간 고향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택시로 가 본 6거리는,서울집들만 보던 눈에 초라하고 거리도 좁아보였다.집 모습은 대개가 옛모습 그대로인데,사는 사람들은 모두 낮선 얼굴이었다.낮선 거리를 간첩처럼 어슬렁거리다 나는 옛날 우리집 대문 앞에 섰다.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옛날 여기 살던 사람이라 그런데,주인장 이 집 우물물이나 한 바가지 먹고 먹고 갈 수 있나요?'
이렇게 말하리라.

대문을 밀치고 안에 들어가니,내가 타잔처럼 나무타기를 하던 마당에 서있던 세그루 감나무와 석류나무는 그대로고,큰방 대청 작은방 문간방 아래채방 아홉개 방도 정원을 둘러싸고 디귿자 그대로고,필순이가 일하던 부엌도 그대로고,여름이면 수박 참외를 담가놓고 먹던 시원한 우물도 그대로고,강에서 돌을 주워다 시멘트로 만든 작은 연못도 그대로다.그때 중학생이었을 것이다.남강에서 피라미도 잡아오고 습천못에서 방개와 붕어도 잡아왔다.당시 집을 세 개나 사서 땅을 합쳐 2백여마리 닭도 키웠고 목욕탕도 있었으니 당시 집에 목욕탕 있는 곳은 드물었다.화단의 달리아는 마른 닭똥 거름 때문에 크기가 어린애 머리통만 하였다.

그리움과 반가움 섞인 눈으로 둘러보니,집은 초라하고 때묻은 모습인채 마치 물 속에 잠겨있었듯 20년 전 모습 그대로다.오랜 객지생활을 하면서 문득문득 사모치게 그립던 고향집이 이거였구나 하는 감회에 젖어 한참을 서 있다 나왔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는 옛 말 되씹으며 집 앞 한길에 이제는 울창한 거목이 된 내가 심은 수양버들을 손으로 쓰다듬어보고,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날로 가서 쓸쓸히 상경했었더랬다는 말을 백석현에게 하니 그는 놀라운 말을 들려준다.

'옛날 6거리 살던 사람 아직도 거의 다 거기 살고있다.부산여관도 그때 그 사람이 아직 하고있고,우리집과 담 하나 격하고 있던 탁구 잘치던 문태식이도 그대로 그 집에 살고,구슬치기 잘하던 청깨도 아직 거기서 구멍가게 하고있고,해인고 앞의 이발소도 주인이 그대로다.그 밖에 맥아더로 불리던 정란이는 독신녀로 진주서 '청송'이란 주점을 하고있고,습천 못가에 살던 양자만 얼마 전에 마산으로 이사가버렸다.'
고 한다.

백석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둘은 귀가하는 사람들로 쓸쓸한 거리의 한 음식점에 들러 냉면 한그릇씩 먹고 악수하고 헤어졌다.
진주서 사업하다가 실패하고 올라왔다는 백석현이가 헤적헤적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뒷모습 보면서,월급 타면 불러서 술 한잔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또 20여년이 지났는데 그는 지금 서울서 뭘 하고 사나?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 ?
    허허바다 2004.12.06 10:27
    뒷모습은 항상 쓸쓸함이 차지하고 있더군요...
    저도 그럴까요?...
    그래서 모임때도 모두들 마중하고
    맨나중에 떠나려고 노력하지만...
  • ?
    솔메 2004.12.06 13:16
    한세대를 반이나 더 - 훨씬 뛰어넘는
    고향(친구)의 추억이군요.
    지난 시절을 반추하다보면
    저는 왠지 우울한 구석만 많은지요..
  • ?
    섬호정 2004.12.07 08:45
    '진주라 천리길 내 어이 왔던고(가)~.~촉석루에 달빛 어린 나무기둥을 얼싸안고~이 노래 잠시 흥얼대었죠. '11월 말쯤 노랗게 낙엽 떨어지는
    황혼녘 진주성에 올라 의암이 바위에 내려가서 출렁이는 강물 보며 개천예술제때 그 바위우에 건너 뛰어가서 사진도 찍었는데 (지금은 다리가 떨렸다) 교복시절 추억을 동행자에게 들려주고 왔는데요...
    남강다리 건너 천전동에서 약국을 하던 친구집에서 둘만의 동창회 수없이 하던 일 떠 올라 그 언저리 이야기에 가슴이 울컹 하며 뜻 깊게 잘 읽습니다.
    추억은 우리를 그리움으로 살찌게 하는 아름다움입니다. 합장
  • ?
    오 해 봉 2004.12.27 23:15
    가슴이 찡한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쯤 손주손을잡고 잘 지내리라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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