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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랑방>삶의추억

2004.11.25 13:21

차의 화두 만행

조회 수 14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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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순례의 길 떠나기

 11월이 끝나는 늦가을 겨울맞이 만행의 길을 떠난다.
 맑은 하늘에 둥 실 떠 있는 흰구름들을 따라 아직은 
노랗게 빨갛게 오순도순 정다운 단풍진 낙엽들을 만나러  
시골을, 강을 , 산골을 찾아 나선 만행의 길이다.

마음은 지리산 섬진강 변 화개 동천 어느 골짝 다원을 
걸으며 그 골골이 들어 앉은 찻집들을 섭렵하고 싶은 게다

화개 십리벚꽃 길을 달리자고 예쁜 가마꾼 석불문화 연구회의 연님과
오래 전 언약이 되어온 일이다. 

마침 1, 6일장인 유명한 화개 장터에 도착하여 소문난 사찰국수를 먹었다
쌍계사 입구에 즐번한 찻집들의 이름을 눈으로 인사 나누며 칠불사 쪽을
달린다 . 
길가에 낯 익은 찻집 '쉬어가는 누각'에 올라 화개천을 내려다 보며 앞에 
버티어 내려선 삼신산 줄기를 바라본다. 

지난 여름 산사태로 산록의 차 밭이 많이 헤실이 났다.  
넓은 길이 생긴 듯이 산의 모습이 훤히 성글어져 있어 차 밭을 소중하게 
보아오던 마음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쉬어가는 누각의 茶母는 이른 아침 시간에 오롯이 서서 반가이 맞아준다
언제 보아도 맑고 향기로움이 풍기는 인상으로 고향도 아니건만 이 
화갯골에서 정성을 다 해 차를 내고 길가고 오는 차인들을 편안하게 
쉬어가게 배려해 준다.

해방 직전에 태어나 지어진 이름이라 촌스럽다고 본명을 밝히며 수줍어 하는 
모습도 참 순수한 여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창가에 가꾸고 있는 작은 화분에 담긴 
각종의 들곷 들도 그녀의 여린 모습을 말 해 주듯 한다.

아침 녘이라 따끈한 차를 셋이서 각각 시켜 오미자차를 내가 받아 들고 마신다.  
현대식 찻집 분위기로 장식은 되었으나 창 밖의 시야가 화개동천 그 자연의 
모습으로 계곡물소리. 지리산을 내려온 바람소리, 손짓하는 초겨울 산 나무의 
잎새들이 차 맛의 향취를 더욱 깊게 한다.
관광철 주말이 아니어서 마치 고요한 산장에 앉아 차를 마시는 느낌이다.

문덕산을 끼고 칠불사로 오르는 길을 가지않아서 '끽다거' 강시인의 전통찻집엔 
들르지를 못한다. 건너편에 새로 아담하게 지어서 이사간 달빛초당의 김시인의 
자택에도 그냥 마음 접고 들르지 않기로 했다. 워낙 이곳에 오는 지인들로 쉴 
틈없이 붐비는가 싶어 결례를 접은 것이다.
   
19번 국도를 달려 섬진강변 평사리 들판을 가로질러 축지마을로 나온다. 
하동송림을 바라보며 300 여년 오랜 솔숲의 솔향을  깊은 숨 속에 가득 담고 
햇살에 반짝이며 뒤채이는 초겨울 강물에 시조 한수를 담근다.

                 섬진강 소견

    산매화 피는 소식에 열 굽이 돌아온 강물
    벽소령 넘다 숨 고르는 흰구름을 불러선
    '산철쭉 붉게 타면 만나자' 
    소리치며 흐른다.

    강변에 죽 늘어선 벚나무 가지 틈새로
    물비늘 반짝이며 뒤채이던 햇살도
    평사리 기웃거리다가
    봄빛 따라 달아난다.

    바람은 돛을 달아 매화 향을 실어가고
    작설차 다담 나누며 섬진강은 깊어간다
    오랜 삶 연륜이 감겨 
    수척해진 그 물 빛. 


  -오영희 시조집 <섬진강소견> 중에서
     

어느새 강물이 깊어 출렁이는 섬진강 신방촌 재첩국 원조 골을 지난다
지금도 그 강 기슭엔  시멘트 층계 여닐곱 계단이 강물에 출렁이다 잠기며
 50 여년 전 나룻배가 닿을 때 재첩잡이 아낙들 음성이 들리고 있다.

그냥은 못 떠나리,  동행한 고향친구 김교장은 예쁜 가마꾼을 위해 하차하여 
재첩 한 뚝배기를 담아온다. 출렁이는 강물을 내려다 보며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껴 주는 길 섶에 앉아 추억의 이야기를 담아 휘이 저어가며 뜨거운 
재첩국을 맛 있게들 마신다.

어느덧 강물을 뒤로하고 진주남강 경상대학 후문에 들어선다 .
낯 설지만 인터넷으로 친해진 들꽃님 찻집'날마다사진'을 찾아 든다. 
차를 마시고 이미지사진을 찍고 나오는 희한한 행복한 찻집이다
러시안 인상이 풍기는 사진작가인 들꽃님 남편이 내오는 정성껏 담근 
모가차를 따숩게 마신다. 

인터넷의 유물인가 아뿔싸, 얼굴을 알아보고 닉네임도 알아 맞추는 젊은 
사진 작가님… 당혹한  순간이다. 하지만, 낯선 여행길에서 이런 예기치 않던 
사건은 긴장하게도, 즐겁게도 한다.

찻집 이름을 섭렵하러 떠난 남도길 만행은 겨울맞이 행복을 예감하는 길이다. 

34번 국도를 찾아  대구를 지나고 얼굴 모르는 이름들로 4년 여를 통해온 
낯선 지기들의 삶의 현장으로 달리고 있다.
 
南安東을 지난다. 영양 立岩 '선바위휴양지' 수석 분재원을 찾는다. 
34번 국도변의 호젓한 고을 곳곳에 문화재들이 숨쉬고 있었다. 
이름난 시인 조지훈, 오일도, 작가 이문열 들을 다 품어 배출한 고을은 
이제 그들의 향촌에 새로운 문화로 날개를 펴고 있다.     
 
문암리 좁은 마을길로 오가피 작은 나무들 키를 재보며 육각정 찻집에 들었다. 
그 누구가 이곳을 알 수 있었으랴.  육각정의 다모는 훤출한 키의 善男...
 同塾자인 또 한 善男은 울진으로 바다새를 찍는 사진가로, 이 고을에 우리 문화 
알림이로 뛰어다니기도, 지난 주엔 김치축제를 열었다며 그을린 얼굴로 반가이 
맞아 준다. 

낯선 객들에게 맑은 눈빛과 환한 웃음으로 커다란 찻 상에 말끔하게 준비된 
다구 들로 차를 만나게 한다. 

싸늘한 산 바람에 목이 타는데 노란 여린 차 빛깔이 투명한 茶停의 분위기에서 
산국차를 마신다.  
황국을 정갈하게 다듬어 살풋이 삶아 말린 차이다.  
 순수한 우리차의 개발을 위해 자연 그대로의 식물로 건강차를 개발하려고 온갖 
들꽃과 나뭇잎을 시험 연구하는 찻집이란다.  

아담한 2층 육각정 찻집이 이 깊은 골짜기에 들어 앉아 있음을 , 
이곳에 와 보지 않고서는 찾을 수도 향긋한 이곳만의 차를 맛 볼 수도 없을게다.

스님들이나 수도자가 정처 없는 만행을 떠나는 화두를 이제사 조금은 알 수있을 
것같다.
길을 떠나 귀한 찻집을 만나고 그들의 정성껏 마련한 귀한 차를 만나는 일은 
차 (茶 )라는 화두를 지니고 길 떠난 기쁨이요 행복이다. 

 새삼 '동다송'  해설집을 펼쳐 읽는다. 백이운 시인님에게서 받은 
'푸른 茶 문화연구원' 에서 낸  '초의 意洵  著. 古月 龍蕓 譯 ' 東茶頌 을 
외출길에 지하철 속에서 곧 잘 읽어 온 동다송 제18송을 소개한다.
   
   건양 단산 벽수향  [建 陽 丹 山 碧 水 鄕]

   건양과 단산은 물이 맑은 고장으로,

  품제 특존 운간월    [品 題 特 尊 雲 澗 月]

운감 (蕓 龕)차와 월간 (月 澗) 차의 품격을 특별히 높혔네.

 다산 선생의 * 걸명소(乞命疎)에 보면
 '아침에 일어나 기분이 상쾌할 때나,흰구름이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나, 낮잠에서 막 깨어나 정신이 흐릴 때나, 달이 시냇가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에는 차 마시기 좋은 때이다' 라고 하였다.
  
                     [차 마시기 좋은 때]

         몸과 마음이 한가로울 때
         책 읽기나 글 쓰기에 싫증 났을 때
         마음이 어수선 할  때
         노래나 음악을 감상 할 때
         번잡한 세상을 피하고 싶을 때
         연회가 끝나 손님이 돌아갔을 때
      
         거문고를 타거나 그림을 감상할 때
         밤 늦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밝은 창밑의 깨끗한 책상을 마주 했을 때
         아늑한 방이나 전망 좋은 정자에 있을 때
         손님과 주인이 허물없이 정담을 나눌 때
         친구를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화창한 날 순풍이 불 때
         가랑비가 새 순을 적실 때
         아담한 다리가 있는 놀잇배 안에서
         우거진 숲이나 길게 자란 대숲을 바라 볼 때
         꽃을 가꾸거나 새를 길들일 때
         작은 정원에서 향을 맡을 때
         조용한 절이나 사원에서
         맑은 샘물이나 괴석이 있는 풍경 속에서.


             -허차서가 지은 '茶疎 '에서-

길 떠날 때엔 늘 지니고 다니는 작은 다구와 찻봉을 싼 다포를 풀어 놓는다.
집에 돌아와 백이운시인에게서 받은 오룡차 한 잔을 마시며 차 맛을 음미
하듯이 국도 23번, 19번, 34번, 7번 길들을  생각속에 펼쳐본다.

백운산 아래 농장 <오지게 사는 ...>주인공 농부아저씨댁 '마당도서관 의 
1만5천여권' 책들을 밤 늦도록 살펴보던 날, 그 밤 자정부터 날 새도록 목청을 
찢기우는듯한 닭 울음은 비록  잠은 설치었어도 간절히 듣고 싶던 추억을 더듬는 
마음을 다독이는 것 같았다.

번화한 대구 도심 한 복판의 작은 국밥집에서 귀를 흥분케 해주던 단소소리 두가락, 
만행길 다듬는 이 찻잔에 어우러 섬섬히 피어오른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리며 죽변에서 가슴설레게 하는 동해일출을 맞이하고  
신사임당의 <思親>을 흥얼거림 속에 강릉길 바다갈매기 벗하던 아침, 
함께 간 핸들잡이 예쁜 가마꾼님의 모습도 아침해 처럼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조금은 무작정 길을 떠났었는데 도중에 연락하면 모두가 제 자리에 있어준 님들에게,
감사한다. 멀리 전주박물관 답사에서 돌아와 뒷풀이도 뿌리치고 달려와 준 이모라고 
불러주던 님에게 고마워 또 합장을  보낸다. 

대진 고속도로에서 지인의 전화주소를 물으면서  좀 바쁘게 사는 중이라 했더니,
 김인호 시인은 '바쁘지 않으면 백수가 아니라는 말' 여행길 내내 그 해학이 따라
오며 만행 속에서도 바쁜 일정을 위로해 주었다. 

국도를 달리며,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우리의 고귀한 자연을 가슴에 가득 담고
 왔다.  그 곳에서 마음에 매말랐던 우리 고유의 풍류를 즐기고 온 듯해  오늘은,
 차맛도 더 향그러운 아침이다. 


- 섬호정(도명) 합장-
영양

영양 서석지 입구에서

심진스님:무상초. 사진: 달새님(영양문화재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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