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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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내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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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비극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채 우리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해 주는 곳이 있다. 갈색 수풀 사이로 푸름이 하나 둘 움을 돋아내고 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 중순. 우리 한민족 역사에 있어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이었던 역사의 현장인 지리산 내원골은 아직도 을씨년스럽다 못해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음침한 갈색 수림은 당시의 비극을 말해 주듯 했으며 어둠의 대지를 뚫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연분홍 진달래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남긴, 아니 못다한 삶을 계속 영위하려는 듯 핏빛처럼 선명하게 갈색 숲속에서 돋보였다. 그리고 햇푸름을 보일락말락하고 있는 고목들만이 변함없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수십여 성상을 버티고 있었다. 폐허가 된 채 잡목과 잡초만 무성히 자리한 그 옛날 빨치산의 생가와 살던 집, 그리고 끝내 붙잡힌 장소는 아직도 흉물스런 모습을 하며 남아 있는 내원골.

초라하고 처참한 당시의 흔적을 내원골은 그대로 부여 앉고 있으나 세상은 이제 한 세기를 마감하며 "이데올로기"를 역사의 낡은 단어로 뒤꼍에 미련없이 내팽개치고 있음은 무얼 의미하는가.

이제 관광지로 겨우 각광받고 있지만 수 년전 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던 곳이다. 내원사에서 바깥 내원마을을 지나 배양이, 안내원 마을에 이르기까지 다소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주변 곳곳에 중장비가 들어와 집들을 짓고 단장하고 있는 모습은 개발의 전주곡처럼 보였다. "외탑이" "쌍탑이" "큰 절골" "작은 절골"등등의 지명이 그것이다. 장당골과 나누어지는 내원사에서 왼쪽으로 연결한 도로를 따라 계속되는 내원골은 국사봉으로 이어지는데 승용차를 이용해도 해발 8백m인 안내원 마을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내원골은 별다른 세련된 운치를 풍기는 풍광은 없으나 고산지대에서 보기 드문 "분지"가 이색적이며 옛날 불교문화가 꽃피었던 사실과 근대 빨치산들의 활동무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찾아가 볼만한 곳임에 틀림없다.




자료-남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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