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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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대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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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대성계곡은 오랜 옛날부터 보기드문 기도처로 뭇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근세에 들어서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피의 제전이 역사를 간직한 길고 깊은 골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화개동천 맨 안쪽에 숨어있는 협곡의 수림과 남향으로 배치된 기암 절벽, 그리고 그 위용의 품위를 한 단계 높여주려는 듯 흐르는 물줄기는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로 손색이 없다.

세석평전을 거느리는 영신봉의 위엄은 세석과 더불어 대성골을 이상향의 대상으로 삼게 만들어 오랜 옛날부터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성골을 찾아나서는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대성골 가운데서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는 영신봉 아래 영신대는 지리산에서 최고의 기도처로 각광 받으면서 치성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 영험스런 자태는 금방이라도 소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듯해 치성객의 애간장을 태우기에 충분하다.

우리 민중의 정서를 방증하는 대성골의 소망하는 그러나 온 산하가 동족상잔의 전란을 겪으면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변하기도 해 우리에겐 비운의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성골은 빨치산 투쟁의 최대의 비극으로 이 곳에서 수백여명의 빨치산이 몰살당했다. 정충제씨가 기록한 "실록 정순덕"과 이기형씨가 쓴 "죽음의 골", 그리고 이태의 "남부군"등은 1950년대 초 지리산 일대에서 치러진 군·경과 빨치산의 처참한 격전을 기록으로 전해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성골의 비극이 가장 격렬하고 처절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 기록마다 빨치산 몰살 규모와 일시등이 조금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그 시기는 1952년 1월 17일과 18일이 최대 격전기였으며 그 해 1월 한달동안이 백야전사령부 3기 토벌작전 시기로 보인다. 토벌대의 작전이 시작되면서 1월 17일 무렵 지리산 온 골짜기는 함박눈이 퍼붓고 있는 가운데 날이 저물자 빗점골, 거림골, 신흥등지에 있던 빨치산이 대성골로 모였다. 다음날 새벽무렵 눈덮인 대성골에는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1만명에 이르는 빨치산이 모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른바 백야전 사령부의 제3기 토벌작전이 시작되자 대성골에 모인 빨치산은 사면초가 격으로 수백명이 처참한 최후를 맞은 사실이 전해진다. 당시 몰살 당한 빨치산의 규모는 각 기록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1952년 1월께 남은 빨치산 수를 미뤄볼 때 이기형씨의 "죽음의 골"에 나오는 수백명(대략 800여명)이 근사치에 가깝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빨치산 몰살 사건이 이 곳 대성골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대성골이 갖는 지형적 특성에서 비록된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 계곡중 대성골이 가장 깊은 협곡인데다 지세가 험난해 도피하기엔 안성 맞춤이어서 궁지에 몰린 빨치산이 이곳으로 숨었고 때마침 토벌대의 정보와 작전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불과 40여 성상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대성골엔 당시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무심한 대자연은 수천년 변함없이 그대로 인간이 하는 일을 모른듯 지켜만 보고 있을 따름이다.

비운의 사연을 간직한 대성골을 찾아가는 길은 화개동천을 따라 잘 포장된 길을 올라 대성교에서 시작된다. 등산로는 대성교에서 시작되는 길과 조금 위의 의신 마을에서 시작되는 두갈래다. 세석까지 12km, 대성교에서 등산로는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지만 의신부터는 평탄한 길이 시작돼 1km만 지나면 하나로 된다. 이곳이 옛날 능인사가 있었다는 절터이다. 해발 500m지점이기도 하다.
능인사 터에서 완만하고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후박나무가 우거진 대성동 마을에 도착한다.

대략 대성교에서 2km거리에 위치한 대성동에는 10여 가구가 산골생활을 하면서 민박도 하고 토종닭, 산채, 동동주등을 팔고 있다. 자가발전으로 전깃불을 이용해오다 95년 12월에야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했다. 경운기 동력으로 전기를 만들던 자가발전기는 새해부터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원래 대성동은 이곳에서 4km 더 들어간 곳에 있었으나 60년대 후반 정부의 배려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4km 위의 집터가 있는 곳을 원대성이라고 부른다. 대성동에는 대성골이 으뜸 기도처임을 입증이라고 하듯 지금도 아무 하는 일없이 정신수양을 하거나 요양을 위해 장기간 민박하는 사람이 10여명이 된다고 한다.

대성동 마을에서 세석까지는 10km. 이 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등산은 험난한 코스가 별로없이 비교적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남부 능선과 갈라지는 1,400m 갈림길에 못미쳐 3m 구간이 조금 힘들 뿐 등산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조금 지루한 산행은 각오해야 하는 게 대성골 등반의 특징이다. 대략 오르는데 4시간30분에서 5시간은 걸리며 내려오는데도 3시간 30분은 각오해야 한다. 



자료-남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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