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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323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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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고 나니 온 세상에 연두 물이 드는구나.
담부랑 위에 동구밖에 뒷동산 언덕배기에 매일 한뼘씩 연두물이 번져나간다.
~~문리버얼~ 위더 덴 어 마이얼~ 섬 데이이잉~
~~꼬메노퐈아~ 따바라뱌랴뱌랍~ 쑌투뚜뽜아 ~바바바바라바라바 빠라바라 라라뤼이~
간밤에도 FM 김세원의 영화음악을 듣느라고 늦잠을 잤다.
어머니가 정지 부뚜막에서 도마에 대고 칼자루 밑동으로 마늘을 찧는 소리는
진즉부터 귀를 파고 들었지만 나는 자장가이겠거니 하고 버티고 누웠던 것이 문제였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나무살문에 발려서 겨울을 버텨낸 누런 한지 사이로 들이치는 햇살을 따라
들려오는 참새 우짖는 소리는 또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모른다.
머리맡에 밥이 들어와서야 더 버티지 못하고 일어난다.
어머니가 빨리 식으라고 커다란 양푼에 떠서 디밀어준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혀를 굴리고 달래가며  먹고 있는데 골목에서 작은 언니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야아~ 저기 한남에 차 온다 차,  뛰어!"
아래채 잠실의 추땀위에서 멀리 강너머 다리위로 망을 보던 언니는
냅다 골목길을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하, 오늘도 뛰어야 하는구나.
나는 입으로 가져가던 밥숟갈을 놓고 책가방을 들고 뛰었다.
동네골목을 벗어나 당성개울가에 닿았을 때
한남마을을 지나서 구불구불 신작로를 타고 넘어오는 버스가 보인다.
나는  다리를 건너야 하고 버스는 운서보 옆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은 뒤
원기에서 한 번 정차를 해야한다.
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려간다.
당성개울이 엄천강물과 합쳐지는 동구밖을 지나고 다리에 막 들어서는데
버스가 원기 아이들을 태우고 다리의 끝, 당산나무있는 데까지 왔다.
내가 다리의 중간쯤을 지날 때 버스는 당산나무 정류소에서
안땀(동강), 바깥땀(기염터), 운서아이들을 다 태웠다.
이제 오라잇~ 할 일만 남은 버스는 나를 기다린다.
버스 안에 있는 아이들이 일제히 나만 보고 있다.
엄천강은 왜 협곡으로 잘 흐르다가 한남의 곰소만 휘돌고 나면 갑자기 광활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다릿발도 당연 길어지고 무어하나 걸리는 데가 없이 시야가 넓어지고 마는 거다..
버스에는 운서사는 잘 생긴 돌표도 있고 기상이, 수필이, 내영이도 있다.
문정, 한남, 원기에도 잘 생긴 애들이 얼마나 많나. 썬규, 동영이 강일이... 아, 선규는 공부도 잘한다.
'아이씨이~ 쪽팔려~~'
갑자기 잘 달리던 두 발이 허공에서 꼬일지경이다.
'내가 내일부터 라디오를 들으면 사람이 아이다. 어이구 쪽이야.......'
헐레벌떡 버스안으로 뛰어들자 버스는 출발한다.
꺼억꺼억 숨을 몰아쉬느라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겠다.
버스는 절터에서 아이들을 한 번 더 태우고 벼리고개를 넘는다.
화남국민학교 앞에서 버스는 모실마을 애들을 태운다.
모실은 신작로에서 보이지 않는다. 신작로는 매봉산 벼리고개와 같은 고도에 있고
모실마을은 신작로로부터 흘러내린 작은 동산과 엄천강물로 퇴적된 들판자락 사이에
돋은 마을이었다.
모실은 신작로로부터 수줍게 돌아앉아 들판건너 강물을 물끄러미 볼 뿐이다.
모실애들은 복받은 거다. 이 곳 지형은 버스를 놓칠까 봐 헐레벌떡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 감추어 주니까.
"저기 기사아저씨 조금만요... 저 뒤에 뛰 오고 있거덩예."
앞 서 온 아이들이 뒤늦은 아이들을 챙겨주기 때문에 모습이 안 보인다고 해서 차를 놓치는 일도 없다.
나는 쪽은 팔렸지만 7시 첫차를 놓치지 않았다.
첫차를 놓친 아이들은 지각을 해서 선도부 선배들께 토끼뜀 백 번을 당하겠지.
첫차를 탓다는 뿌듯함으로 버스는 오늘 하룻동안 펼쳐질 내 미래의 핑크빛 꽃밭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알겠다. 움하하~~~
그런데....
아뿔싸! 오늘 과목시간표를 하나도 안 챙겼네.
오늘은 제일 무서운 물리선생의 물리와 과학이 든 날인데...
가만 보자 오늘이 몇 일이더나... 20일 아, 다행이다. 난 43번이지.
날자의 아라비아 글자대로 학생들을 불러세워 문제를 풀리는 선생님의 버릇은 피해 갈 수 있을 것이고.
책이야 옆 반 순배한테 빌리면 되는 거고.



영화, [남과 여]의 타이틀곡 / 프란시스 레이 곡
.
  • ?
    이게아닌데 2010.05.02 20:42
    날랜girl님 날랜 이유가 있었네요.
    젊은시절 자연스런 지리산 둘레길 뜀박질이 탄탄한 기초를 깔았군요.
    몇년전 중산리 법계사 셔틀버스 생기고 얼마지나지 않아 천왕봉 돌아오는 산행기가 생각나 아하 그 날랜girl님이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우쾌하고 매끄러운글, 반갑습니다.
  • ?
    선경 2010.05.27 23:35
    유년의 아름다운추억들이 멋진음악과 함께 흘러가네요~~
    황순원님의 소나기소설속에 나오는 한장면이 연상케하는 유키님의
    추억의 길로 함께 떠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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