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옛 애인의 집 -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1984년 휴학 후 홍성광업소의 막장 광부로 일했다. 그 후 서울로 입성하여 '노동해방문학'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실무를 보거나 기자 생활을 했다.
1984년 '월간문예'에「유배지의 풀꽃」을,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빨치산 아내의 편지」「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돌아보면 그가 있다」가 있다.
산문집「벙어리 달빛」을 펴냈으며, 1998년 시집「돌아보면 그가 있다」로 제16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기도 했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1998년 초 서울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간 이후 그곳에서 독거하며 쓴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어지러운 세상과 자본주의의 질서를 떠나 산으로 찾아 든 지 6년째. 이번 시집에는 '결별'을 선언하고 떠났으나 여전히 세상을 향해 있는 시인의 단단한 시선과 지리산의 산과 물과 자연과의 만유합일을 지향하는 순수서정이 공명한다.
 
 

ㅣ 무련을 찾아 떠난 지리산의 행려

스스로의 이름을 뼈에 새긴 채 행려처럼 산에서 산으로 떠도는 시인은 <지리산생명연대>의 일을 돌보며 ‘무련(無蓮)’을 찾아 헤맨다. 무련은 “화살보다 빠르고 바람보다 투명한 이미 없는 연꽃”(「無蓮」)이며 “물구나무 선 삼층석탑”(「무련, 너를 찾아 나는 간다」)이다. 자서에서 시인은 시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밝혔다. 그가 홀로 산 속에 머물며 찾아 헤매는 무련, 그것은 시다.  (글/박남준)
 
 
ㅣ 無慾의 서정 깨끗히 담아

‘밤새 너무 많이 울어서 두 눈이 먼 사람이 있다’(‘부엉이’) 시인 이원규(41)씨가 지리산으로 들어간 지 6년째다. 서울 생활 10년을 접고 훌쩍 떠났다. 낙동강 1,300리, 지리산 850리를 걷고 또 걸었다. 백두대간과 새만금을 밟았다. “지리산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철 잘 놀았다.…6년 만에 남은 것은 이것 뿐이다.”(‘自序(자서)’에서) 6년 만에 남은 것이 네 번째 시집 ‘옛 애인의 집’이다.
지극한 현실 체험에 바탕을 두고 삶의 피로함과 고단함을 정직하게 시로 써온 이씨다. 그런 그가 새롭게 펴낸 시집은 산과 물에서 건진 서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獨居(독거)’에서) 출장가지 않고 야근하지 않고, 가끔 굶고 가끔 외로워하면서 시를 쓴다.
그랬더니 봄이 보인다. 산에서 피고 지는 봄꽃을 보니, 시인의 눈에 봄은 꽃들이 숨가쁘게 벌이는 속도전이다. ‘덧나는 상처도 없이/ 어찌 봄이랴// 섬진 마을의 매화가/ 지기도 전에/ 젊은 황어떼가 지리산에 오르고/ 잠시 산수유꽃이/ 잉잉거리는가 싶더니/ 화개 동천의 십리 벚꽃도 파장’(‘꽃의 속도’에서) 이씨는 지리산 곳곳의 버려진 빈집과 절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오토바이 한 대,노트북 한 대가 전재산이란다.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아서인지 산에서 쓰여지는 시도 가파르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의 표현처럼 시가 심심한 듯도 싶다. 그런데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순한 시어로 엮이어 힘세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시는 실은 넉넉하고 따뜻한 언어의 집이다. 그것은 시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에서 저절로 빚어진 때문이다. ‘라일락 푸른 잎을 씹으며/ 귀향하듯/ 옛 애인의 집을 찾아가’ 얻은 깨달음이 그렇다. ‘대문은 파란 대문/ 엽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도둑고양이처럼 지나가네// 세상의 모든 집/ 옛 애인의 집’
(글/김지영,한국일보 ,2003)
 
* 출간 2003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