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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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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하동포구 팔십리는 하동읍을 지나면 악양(岳陽)을 통과하게 된다. 섬진강을 막은 제방 둑으로 직선도로가 나있어 차량으로는 금세 통과하지만, U자형의 드넓은 들판이 자리한다. 이 악양벌은 무려 180 정보로 악양천 청류가 적시는 비옥한 토지다.
하동읍에서 화개장터에 이르기까지 '만지배'로 유명한 배나무단지가 있기는 하지만, 악양벌과 같은 넓은 벌판이 자리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라 할만하다.

지난해 6월 중순 필자는 '천리안 지사동'의 형제봉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악양벌 앞의 섬진강변에서 일박한 일이 있었다.
악양벌과 섬진강을 가로막은 제방으로 이어진 일직선도로 바로 너머 강변에 시민휴식공원을 만들어놓았다. 간단한 체육시설과 주차장, 화장실, 간이급수시설 등을 갖추어놓았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아침 형제봉 산행에 나서는 일정이었다.
그 덕분에 악양에서 초여름 하룻밤의 강변 서정을 맛볼 수 있었다

비록 쉼없이 차량이 질주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섬진강변 야영이란 선입감이 마음을 들뜨게 해주었다. 또 다음날 이른아침의 강변 풍경도 아주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지나치기만 했을 뿐, 하룻밤 머물게 된 악양이라면 강변 풍정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또다른 서정세계에 침잠할 수 있어야 했다.
악양이 어떤 곳인가? 이곳에는 예부터 일명 '소상팔경(瀟湘八景)'이라 불리는 아주 유명한 '악양팔경'이 있기 때문이다.

소상팔경, 곧 '사오상팔경'이란 무엇인가? 중국 후난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남쪽의 사오수이(瀟水)강과 상장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대표적인 8가지 경치를 일컫는다.
소상야우(瀟湘夜雨), 동정추월(洞庭秋月),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雁), 연사만종(烟寺晩鐘), 어촌석조(漁村夕照), 강천모설(江天暮雪), 산시청람(山市晴嵐) 등이다.
석양빛, 가을달, 밤비, 해질 때의 눈 등 주로 저녁 무렵의 서정적인 풍정을 들고 있다

중국의 '소상(사오상)팔경'과 똑같은 것이 한국의 섬진강변 지리산 자락인 악양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소상팔경 또는 악양팔경으로 불리는 것 역시 거의 중국과 그대로다,
동정추월, 산시청람, 어촌낙조, 강천모설, 평사낙안, 소상야우, 원포귀범, 한산모종이 그것이다.
중국과 굳이 차이가 있다면 '연사(烟寺)와 한산사라는 사찰 이름 하나일 뿐이다.
중국에 동정호가 있듯이 악양벌에도 15정보의 동정호가 평사리 앞에 자리하고 있다.

악양팔경은 예부터 불려온 것으로 일부 경치는 지금은 달라졌다. 원포귀범 같은 경우는 섬진강 하상이 높아지면서 이미 사라진 풍경의 하나이다.
중국 동정호 남쪽 사오수이강과 상장강이 합류하는 곳의 소상팔경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지리산 악양에 똑같은 팔경이 형성된 것일까?
지리산을 방장산이라고 일컫는 것부터 중국에서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을 들먹이는 것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에 대한 사대사상에서 비롯된 것일까?

악양(岳陽)이란 지명은 중국의 악양을 그대로 사용했거나, 당나라군 장군 소정방의 고향이 중국 악양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악양이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악(岳')은 우리말에 '아가' 또는 '악아(岳兒)'로 쓴다. 그렇다면 '악(岳)'은 '작다'는 뜻의 '소'에 해당되고, 양(陽)은 '볕'을 뜻하므로 '다사롭다'이다.
'악'의 '소'와 '다사롭다'의 접미사 '롭다'를 뺀 '다사'를 합친 '소다사'가 악양의 원래 이름이다.

악양은 하동에서 가장 일찍 문화가 발달했다. 변한이 지배할 때 12국의 하나인 낙노국이 악양에서 도읍을 정했을 때가 BC 108년이다.
대가야 시대인 AD 200년경에 축성한 토성이 악양면 정서리 솔봉 밑에 있다.
신라가 하동을 '한다사군'이란 이름으로 지배할 때 악양은 '소다사현'이 됐다. AD 757년 '한다사군'이 하동군으로 개칭될 때 '소다사현'도 '악양성'으로 개칭된 것이다.
그러니까 악양이란 이름은 순우리말 '소다사'를 옮긴 말이다.

악양이 변한 시절에 낙노국의 도읍지였다는 사실은 이곳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를 능히 짐작하게 해준다.
지리산 자락이 흘러내리면서 섬진강 앞에서 불끈불끈 치솟은 형제봉, 신선봉, 시루봉, 칠성봉, 구재봉 등을 둘러싼 곳에 악양벌이 자리한다.
그 남쪽 영산 백운산을 사이에 두고 섬진강이 흘러내린다. 이처럼 명당의 요건이 두루 갖추어져 있으니 중국 소상팔경 못지 않은 악양팔경이 있을 법하다.
그 팔경을 어찌 음미해볼 건가?
(2002년 3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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