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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섬진나루>야생마의 세계통신

2005.05.12 16:21

4월 랑탕트레킹(5)

조회 수 168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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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 9일째. 하늘 가까운 얼어붙은 호수 고사인쿤드.



대부분의 여느날처럼 히말라야 산중의 아침은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깨끗이 솟아있는 랑탕히말 주변에 잔구름들이 뭉실뭉실 산허리를 간지럽히고 있다.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사실 배낭을 메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족이 오늘 고사인쿤드에 갔다가 라우레비나 야크 고개를 넘지않고
다시 촐랑파디로 내려온다고 한다. 그러니 포터들도 할 일이 없다.
어젯밤 가이드가 우리 포터 하나 쓰라고...고사인쿤드 가는길이 아주 험하다나...
제작년에 프랑스여인이 하나 고소로 죽었다고 은근히 겁을 주면서
나도 무리하면 위험하다고...죽는다는 표현을 안쓰고 "finish!"라고 한다.
끝. 끝이라...왠지 더 허망하고 두려움이 들어서 300루피(우리돈 5000원정도) 주었다.
끝이 두렵다기보다 늦게까지 순수한 대화들 나누다보니 정이 들어서라고 해야 맞다.













레우라비나(해발3900미터)에 오르니 롯지마당이 전망대같은 멋진풍광을 보여준다.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저기 히말라야에 있고 나와 그 누구든 그의 품안에서 보호를 받는,
다정한 속삭임을 느끼는 연약한 한 존재임이 느껴진다.
지리산이 그냥 단순한 산만이 아니듯 히말라야는 온 우주의 정기를 가장 먼저받아서
무지몽매하고 집착과 아집에 허둥대는 한 방랑자를 꾸짖고 갱생의 빛을 쏟는듯 하다.
매맞는 아이의 심정일텐데도 왜이리 포근하고 든든할까...
적어도 당신의 넓은 품을 보았고 강인함과 엄숙함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의 기품을 느꼈다.

프랑스가족의 한 아이가 배가 아파서 길에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다.
용기를 북돋아주고 위로를 주는 아이엄마의 사랑속에 무난히 레우라비나 롯지에 들어온다.
대견한듯 아이에게 뽀뽀를 해대는 아이엄마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하긴 아빠없이 두 자녀를 데리고 히말라야를 찾기로 한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다. 멋지다.
어린나이에 히말라야를 찾은 그 소년이 많이 부럽고 대견하다.
서른이 되어서야 산을 사랑하게된 나 자신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초라해진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산을 찾고 기쁨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가...









이제 해발4000미터를 넘어서면서 눈을 밟아야 한다.
앞선 발자국따라 햇빛 반사되는 하얀길을 끝없이 걷는다.
차우타라의 초르텐을 지나고서부터는 사면의 길이 아슬아슬한 협곡길이다.
반지의제왕에 나오던 그런길이 이어지고 그 좁은 길에서 말과 실갱이를 하며
멀리 포터들인지 사람들 무리를 좇는다.







이윽고, 첫번째 호수(사라스와티-파괴의 신 쉬바의 아내이름)가 나타난다.
앞쪽으로는 얼음이 녹아있어서 옥빛물빛이 보인다. 티벳 암드룩초의 그것과 같은.
하늘 가까운 맑은 호수...너무도 사랑하는...추억의 호수들이 스쳐간다.
남쵸...암드룩쵸...틸리쵸...그리고, 고사인쿤드. 그밖에 이름없는 작은 히말라야의 호수들.

조금 더 올라 몇 개의 롯지가 나타나고 완전 얼어있는 큰 호수가 나타난다.(4380미터)
호수 가장자리는 밖에서 1미터정도 녹아있는데 역시 옥빛물빛이 참 아름답다.
레이크사이드 롯지에 앉아 한참을 호수를 바라보고 밀크티를 마시며
프랑스가족들과 잠깐 얘기나누다 야채모모와 치킨스프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그러고보니, 세 시간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호수주변을 둘러보다가
오늘 레우라비나 야크 고개를 넘기로 한다. 시간은 충분하고 체력도 포터덕에 비축되었고..
다만, 구름도 많고 이틀동안 오후늦게부터 항상 비가 와서 조금 걱정이다.
가이드에게 길을 잘 안내받고 최대한 빨리 길을 나서기로 한다.










해발 4610미터 레우라비나 야크 고개.

메인호수를 뒤로하고 왼쪽의 가느다란 길을 걸어 호수 뒷편으로 돌아 오른다.
아무도 뵈지않는 그 길은 적막감이 들고 그러면서도 왠지 풍요로움이 든다.
이 경이로운 곳에 오직 혼자만이 존재하다니...고독한 풍요가...

발자국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는데 제대로 된 길이 아닌듯 푹푹 빠진다.
미끄러지기도 하고 아이젠은 스틱이 있으니 꼭 필요친 않지만 스패츠는 잠깐 아쉽다.
눈이 들어가서 등산화 안에서 답답했던 발에 시원함이 느껴진다.
산정상에 다다른듯한 고원의 눈밭에 쭉 줄지어져 있는 발자국들이 정겹다.
많은 이들이 이 고개를 넘어갔구나...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최고점에 세워진 깃발앞에서 '히말라야' 영화에서처럼 두손 모으고 기도를 한다.
무사히 이곳을 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이곳의 신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깃발너머로 뭉게뭉게 푸짐한 솜사탕같은 구름이 피어있었다.









반대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황량함 그 자체다. 바위와 자갈같은 돌들...
그 삭막함을 무너뜨리려 아래쪽에서 구름이 피어 위쪽으로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이내 뺨을 싸하게 스치고는 세상을 운무속에 잠기게 해버린다.
가시나무 잎들이 발갛게 물들어가는 세석같은 느낌이 드는곳이 나타나고
주변에 예쁜 보라색 꽃들이 보인다. 그 꽃들이 아니었으면 참 적적한 길이 될뻔했다.
삭막하고 황량함속에 피는 꽃이라서인지 더욱 아름답다. 많이 고맙다.

세시간을 아주 힘들게 내려와서야 롯지 두군데 달랑 있는 페디(3630미터)에 도착한다.
아버지와 아들만 있던 헛간같은 정말 마굿간 같은 롯지에서 하루를 묵는다.
부자간에 정이 어찌나 깊은지 오가는 얘기도 정겹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바둥대는 아들의 뺨을 따가운 턱수염으로 마구 부벼대던 그 분이 잠시 떠오른다.

역시나...저녁이 되자 캄캄한 롯지주변을 순간적으로 밝히는 마른번개가 쳐대더니
어둔하늘 무거운 천둥소리와 함께 비와 우박이 번갈아가며 내리기 시작한다.
영화같은 장면이 계속되고 천둥소리 자장가 삼아 잠을 이룬다.


   트레킹 10일째.  오르락 내리락 숲속의 꽃길.





아침부터 줄곳 오르락 내리락 아주 힘든길이다. 체력이 떨어졌는지...
힘껏 오르면 쭉 내려가고 다시 힘겹게 오르고...산 잘타는 사람은 맛이 나겠지만.
그래도 등산로 옆 물기 머금은 청초하고 어여뿐 야생화들이 힘을 준다.
꽃 좋아하지 않는사람 어디 있겠냐만 그날처럼 꽃의 황홀함에 푹 빠져버린건 드문 것 같다.
완전히 첫눈에 반해버린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그런 기분이다. 감탄사가 연발된다.
작은 폭포같은 계곡 옆 바위틈의 아이보리 꽃들, 산길옆으로 무수히 많은 보라색 꽃들...







꽃향기 흠뻑 취해 얼마쯤 가다가 붉디붉은 랄리구라스를 만난다.
황홀경의 극치에 빠진다. 지난 며칠밤의 빗속에 꽃송이채 떨어져 길을 수놓았다.
지리산의 어느 숲속 등산로와 닮은 산길을 조그마한 보라색 야생화와
동백처럼 꽃송이채 떨어져 길을 물들인 모습이 동화속 나라의 착각을 일으킨다.
그 환상의 꽃길은 내가 외롭지 않도록 쭉 길게 계속 이어졌다.

정말 춤추듯 꿈꾸듯 그렇게 굽이굽이 힘든 하루길을 랄리구라스와 야생화덕에
아름다운 망겐고(3220)에서 잘 마칠 수 있었다.


    트레킹 11일째. 지리를 닮은 시원한 능선길.











이제부턴 멀리 계단식 논들과 멀리 흐릿하게 산등성이들이 춤추는게 보이는
땡볕 쏟아지는 능선길을 굽이굽이 가게된다.
계단식으로 일궈놓은 밭에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보며 순박함을 느낀다.
깊게 패인 골짜기들도 지리산과 닮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립구나 지리산아...진달래, 철쭉이 피어날 바래봉, 세석...'

물소 따라가는 아낙과 아이. 잠자리 무수히 날아다니는 공터.
귀따가운 매미소리 들리는 울창한 숲. 학교에서 귀가하는 코흘리개 아이들.
익숙해져버린 평화로움들을 하나둘 거치며
드디어 따뜻한 물로 샤워 가능한 치소파니(2215미터)에 도착한다.
밀린 빨래도 하고 고도가 낮아지면서 숨쉬기도 상쾌하고 좋다.
물가도 싸졌기에 이것저것 푸짐하게 먹고 콜라도 마시고...

밤에 여지없이 천둥번개와 비가 억수로 내렸다.
롯지가 능선위에 있어서 조망이 좋은곳이었는데 밤늦게까지 번개치는걸 지켜보았다.
번개가 왼쪽에서 가운데서 오른쪽에서 순서없이 뒤죽박죽 재밌게도 친다.
무슨 레이져쑈 하는듯이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환상적이다.
밤이고 낮이고 외로울 틈이 없다. 혼자였지만 혼자임을 느낄수도 없었다.


       트레킹 12일째. 마지막 날 카트만두로...











아침에 저 멀리 산골짜기에 아주 조금 운해가 펼쳐져 있다.
지리산의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지리생각을 유난히 많이 한다.
군부대를 우회하고 한시간 반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고
그 이후로 오랜 내리막을 걸어 길옆에 위치한 문 활짝열고 공부하는 학교가 있는
마을을 지나 세시간여만에 트레킹 마지막 마을 순다리잘(1460미터)에 도착한다.

아래마을은 따뜻해서인지 벌써 추수한 밀을 탈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밑동잘린 밀밭과 노랗게 기다리는 밀밭사이 빈터에 양들이 쉬고 있다.
한낮의 땡볕을 피해 모두 그늘로 피신해 있다. 맥이 풀려있는 조용함. 그것이다.

버스파크에 서 있는 미니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돌아와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으며
우리 음식에 대한 12일동안의 그리운 갈증을 달랜다.
몸과 마음이 한층 풍요로워지고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 ?
    오 해 봉 2005.05.13 01:14
    1-5까지 구경잘했네,
    나는 지난1월부터 목이가끔잠겨서 동네 이비인후과 에가서 주사맞고
    약먹고했는데 계속 그데로야,
    10일오후입원 11일오전수술 12일퇴원 오후에잠자고 일어났어,
    성대에 참께만큼 조고만게생겨서 떼어냈는데 한주일간 말을하지말고
    지내라고해서 필답과 문자멧세지를 쓰고있다네,
    수고많았네,
    메일 보낼께 건강히 잘있어.
  • ?
    야생마 2005.05.13 16:02
    수술까지 하실정도면 많이 안좋으셨나 봅니다.
    관리 잘하셔서 빨리 완치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노고단에 가셔서 멋진가락 한 곡조 뽑으셔야 하는데...
    뉴스에 어찌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현지에서 느끼는 바로는
    너무 평온해요. 무장군인들이 많이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요.
    많이 감사드립니다.
  • ?
    들꽃 2005.05.17 19:02
    멋진 집이 하나 생기셨군요. 축하 드립니다. 짝짝짝....
    네....사진을 보고 있자니 지리능선....장터목 산장..제석봉...
    다 그 길인듯 싶습니다.
    요즘 무척 시간을 아끼고 있는 저는, 길게 써내린 글과 사진을
    다 보기에 조금 벅차네요. 차차 읽어 내려가겠습니다.
    만약에...가능하다면 ...조금 짧게...대신에 자주 올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지금도 좋지만요. ^ ^
    너무나 행복해 보이십니다. ㅎㅎㅎ
    사진을 보고 있자니...야생마님께서 필름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으신게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는데...도전 함 해보심이 어떠실런지요? ^ ^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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