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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섬진나루>야생마의 세계통신

2005.05.09 19:46

4월 랑탕트레킹(2)

조회 수 208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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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순박하고 넉넉한 산골아가씨 Buti.

새와 닭의 울음소리, 아저씨의 장작 패는 소리, 계곡 흐르는 물소리...
상쾌한 아침이다. 숲속의 아침은 고즈넉 하면서도 싱그런 움직임이 생명력이 넘친다.
아주 밝고 경쾌한 햇살이 더욱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주인아저씨는 나보고 하루 더 묵고 가란다.
어제 저녁부터 아주 넉넉하게 먹는 내가 요즘처럼 어려운 날엔 귀한 손님인가 보다.
가이드, 포터를 쓰지 않는대신 거치는 롯지마다 들러 차 한잔이라도 마시고
식사도 아주 넉넉하게 먹어서 현지에 더 도움이 되도록 계획했다.

샤워시설도 없고...아주머니는 돈이 많이 든단다.
태양열을 이용해서 물을 데피고 불 밝히는데 그 시설이 우리돈 10만원정도라 한다.
지리산의 대피소에 설치하면 참 좋을듯 하단 생각을 잠시 해본다.
자녀는 다 컸는데 돈이 없어 학교도 보내지 못하고...
오늘 아주머니 일하러 가는 산위 전망이 아주 좋다고 하는걸 미안하게 뿌리치고
모두와 인사하고 돌아올때 다시 들르기로 하고 랑탕마을로 향한다.







급격한 오르막인데도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컨디션도 매우 좋고...
어젠 첫날이라서 적응하느라 그렇게 갑작스런 오르막에 맥을 못추었나....
해발 3000미터쯤 될까 나무위에 꽃들이 피어있다. 빨강,분홍,하양...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 드디어 내가 너를 만나는구나. 반가워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가만히 보니 작은 꽃송이가 여럿이 모여있는 모습이다.
혹독한 히말라야의 거칠고 변화무쌍함을 견디려 그렇게 모여있나 보다 생각이 든다.









랑탕계곡 주변으로 산위로도 랄리구라스가 빼곡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 랑탕의 하얀이마가 보이고 눈부신 햇살과 계곡의 물결. 그와 어울리는 랄리구라스.
랄리구라스와 함께 있는 야크, 말, 양, 사람들 모두 평온하고 아름답다.
힘들다 싶으면 곧 나오는 롯지에서 차도 마시고 다음롯지에선 야크젖 요구르트도 먹고...
이미 히말라야에 취한 나는 만나는 티벳티안들마다 "따시딸레!" 인사한다.

이 길가로 나오는 마을마다 티벳티안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부모들이 1953년쯤 중국군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이곳으로 피신왔고
히말라야 깊은 산중에 마을에 이렇게 군데군데 자리잡았다.
집을 짓고, 땅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고...조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들의 아픈역사를 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괜히 마음이 저린다.
일제침략때 우리네 부모들도 얼어붙은 압록강,두만강을 목숨걸고 넘지 않았는가...

또, 그당시 역사가 우리의 6.25 한국전쟁과 같은시기인데...
유엔연합군이 우리를 지원하지 않고 티벳을 지원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티벳이 전쟁을 잘 싸워 선전하고 있었다면, 쉽사리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중공군이 우리의 전쟁에 개입할 여력이 없을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그렇다면...우리의 역사는 지금과는 한참이나 달라져 있을텐데.
정말 그렇다면...티벳이 우리와 멀리 있진 않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근데 지금 달라이라마의 방한조차 중국의 눈치를 보고있다. 아이러니하다.







마을의 파릇파릇한 대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 안에서 일하시는 모습도...수줍게 인사나누는 여인의 모습또한...

멀리 랑탕마을이 보이는데 더이상 갈 수가 없다. 배도 무척 고프고...
보이는 롯지에서 뚝바한그릇 먹기로 한다. 난 배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근데 뚝바(티벳의 칼국수 비슷한 음식)가 너무 맛이 없었다.
그동안 먹어본 뚝바맛이 아니었다. 익살맞게 투덜댔더니 아주머니 많이 미안해 하신다.

그때...
밭에서 일을 마친 아가씨가 들어와 참견을 하고 오늘 자기집에 묵으라 한다.
척 봐도 티벳아가씨답게 촌스럽고 투박하고 아주 순박한 착해보이는 아가씨였다.
결혼을 안했고...나도 결혼 안했다고 했더니...아주머니왈 둘이 결혼하랜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도 아가씨한테 나하고 결혼할거냐 물으니 그렇게 한단다.
어쭈...이 아가씨가... "좋습니다. 오늘밤 신방 차립시다!" 콩글리시를 다 알아들었다.

그녀의 집에서 운영하는 롯지로 가서 방에 여장을 푼다. 투숙객은 당연 나혼자이다.
이게 오늘밤 우리 신혼방이냐 물으니 고개 끄덕인다. 이 아가씨도 장난기가 많다.
샤워실도 없고 전기도 안들어오고...하긴 신혼방에 전기가 필요할까.
근데 나무판자로 된 방에 침대만 두개 달랑 놓여있어서 삐걱대는 소리가 걱정이다.^^
그녀는 부엌 화로에 불을 지핀다. 아주 능숙하다. 밭일을 마친 흙묻은 옷 그대로 입은채...

쌀쌀해지는 저녁공기에 나는 여럿이 앉는 긴의자에 누워 이불까지 덮고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감자껍질을 벗기고 녹색채소도 다듬고...
그녀는 야채 씻으러 밖에 나가는중에도 나에게 허락을 맡는다.
내가 잠시라도 혼자 외로워 할까봐 그랬을까...자상함을 느낀다.
'오! 그대여...스스로 속박에 들려 하지마오.  난 저 거친 아래세상으로
  그대를 인도할 수 없다오...적어도 난...자신이 없다오...'

그녀는 작년에 한국인 커플이 이곳에 이틀이나 머물렀는데 아주 좋았다고
그들이 노래도 잘했고 좋았고 그래서 한국이 좋고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두 곡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그녀는 짧은 티벳노래와 레쌈삐리리를 불러주었다.
"레쌈삐리리~ 레쌈삐리리~ 우레라짜우키~ 레쌈삐리리 ~~"
태어난지 18년이 되도록 카트만두에 조차 가보지 못한 그녀는
노래말처럼 훨훨 날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은 제법 세어지고 해는 저물고 랑탕리룽의 꼭대기에 황금색이 걷혀간다.
밭일마친 아가를 광주리에 맨 젊은아줌마가 밖에서 자꾸 걱정되는듯 기웃거린다.
무슨일이 일어날까봐. 혹시 나때문에 이 아가씨 나중에 시집 못가는거 아냐...
들어오게 해서 같이 레몬티를 나눠 마시고 그녀가 만든 아주 맛있는...
그동안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달밧을 별장의 벽난로 앞에 셋이 나란히 먹는다.

밤이 깊어가고 얘기들이 오간다. 그녀들은 영어회화를 잘했다.
콩글리시를 잘 알아듣는다. 생업을 위해 배웠으리라.
난 고리타분한 여러 얘기들을 해주었다.

...넓은 아래세상이 진기한 물건도 많고 멋진것도 암튼 훌륭한것들도 많지만
시끄럽고 복잡하고 때론 위험하다. 사람들도 좋은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이곳이 더 좋지 않느냐...평화롭고 안전하고(마오이스트 때문에 좀 걱정이지만)
설산들도 멋지고... 봐라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오지 않느냐...

그래도 그녀는 가고 싶단다. 넓은세상으로 어쩌면 날마다 꿈꾸었을 곳으로...
매정하게 얘기했다. 낮에 보니까 멋지고 말도 잘 모는 티벳티안 청년들이 보이던데
좋은사람과 결혼해서 평온하고 가족들이 가까이 있는 이곳에서 사는게 좋을거다.
우린 오늘밤 결혼할 수 없다. 고 말하고 힐끗 옆의 아줌마를 쳐다봤다.
아줌마는 그러면 큰일난다고 Buti는 아빠한테 엄청 맞고 혼날거라고...

Buti는 어느새 가볍게 몸이 흔들리며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그녀도 알것이다. 그렇게 간단히 자신의 간절함이 이루어 질거라곤 생각치 않으리라.
슬그머니 일어나 별장 벽난로같은 불길을 뒤돌아서서 밖으로 나온다.
바람이 세차게 식당문앞의 타르쵸를 흔들고 별들이 총총히 내려보고 있다.
별빛에 희미하게 설산들의 윤곽만 눈에 슬며시 느껴진다.

내일이면 캉진곰파에 갈 수 있겠구나...늦게까지 뒤척이다 잠이 든다.

  • ?
    오 해 봉 2005.05.09 23:00
    그곳 사람들과 언어소통도 된다니 다행이네,
    "Buti는 어느새 가볍게 몸이 흔들리며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요딴짓은 절대로말고 잘해,
    우리는 야생마를 믿을께.
  • ?
    김수훈 2005.05.10 10:18
    여자 울리면 오뉴월에 서리 맞는다. 아니, 히말라야니까 눈보라? 눈사태?
  • ?
    야생마 2005.05.10 19:59
    그곳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더라구요.
    읽는건 잘 못해도 회화는 능통해요.
    장난치다가 눈물까지 흘리게 했으니 벌 받으려나요...
    그녀가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던지
    아님 정말 넓은 세상으로의 발걸음을 내딛던지
    마음의 평화를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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