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이야기를 쓰기전에 한편의 고려에 대하여 먼저 언급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에 올리는게 성격상 맞는지 또 여러분들께서 나무라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다행히 참고가 되신다면 더 없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KBS의 사극 “태조 왕건” 에서 왕건(王建 918∼943)은 우여곡절 끝에 통일국가를 이룬다. 그 통일국가가 고려(高麗)로 불교의 힘이 컸다. 통일신라의 불교는 왕즉불(王卽佛-왕이 곧 부처)의 엄격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王)은 곧 부처요, 귀족(貴族)은 보살(菩薩)이고, 대중(大衆)은 중생(衆生)이니 부처님 세계의 논리와 위계질서는 곧 사회 구성체의 지배와 피지배 논리와 절묘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깬 사람은 도의선사(道義禪師)이다. 도의의 성은 王씨이고 호는 원적(元寂)으로 784년 당(唐)나라에 건너가 35년간이나 유학하며 강서(江西). 홍주(洪州)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 불법을 이어 받고 도의(道義)라 개명하여 821년(현덕왕 13)에 귀국한다.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익힌 불법은 실천적 불교인 선종(禪宗-달마대사로부터 시작)으로 서라벌에 돌아온 그는 경전이나 해석하고(교종-敎宗) 염불을 외우는 일보다는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다녔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변혁사상이며,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의 고양을 부르짖는 진보적 세계관의 표현이었다.
왕이나 귀족들 편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위험하고 불온한, 즉 현 체제를 부정하는 사상이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도의선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은 서라벌의 귀족이 아니라 지방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부와 군사적 힘을 키워온 호족(豪族)들이었다.
호족의 입장에서 보면 도의선사가 주장한 자심즉불(自心卽佛)과 일문일가(一門一家)는 하나의 구원의 사상인 셈이었다. 그것은 왕즉불(王卽佛)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 호족들은 지배층으로 상승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卽佛)로 깨침의 능력이 중요하고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다(一門一家)는 사상은 곧 호족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하고 역사의 진행은 호족중의 한 사람인 왕건(王建)이 918년 고려(高麗)를 세움 으로써 그의 사상은 승리하게 된다.
불교가 흥하면서, 불교가 사치하고, 정치에 개입하고, 세금도 없이 땅을 소유하고 타락하였다. 또한 권문세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한편, 원의 세력과 결탁하여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수탈을 자행하여 전제를 문란하게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반원정치(원나라에 반대하는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의 세력과 싸워야했고, 안으로는 권문 세가를 눌러야 했는데, 원의 압력으로 왕권 기반이 약화되고 또 개혁 추진 세력이 성립되지 못하여 혼란만 거듭하였다.
공민왕때에는 중국의 농민반란군이었던 홍건적이 자주 침입하여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난을 간적도 있었다. 또, 왜구가 대마도를 근거지로 하여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백성들을 괴롭혀 백성들의 생활은 어려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졌다.
1392년 7월 고려는 이성계 등 신흥사대부 들에 의한 역성혁명으로 망하고 새 나라가 건국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통일신라와 고려는 불교로 흥하고 불교 때문에 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 당(唐 618~907 : 20대 289년 만에 주전충에게 망함.
○ 고려(高麗 918-1392 34대 474년)
여기에 올리는게 성격상 맞는지 또 여러분들께서 나무라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다행히 참고가 되신다면 더 없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KBS의 사극 “태조 왕건” 에서 왕건(王建 918∼943)은 우여곡절 끝에 통일국가를 이룬다. 그 통일국가가 고려(高麗)로 불교의 힘이 컸다. 통일신라의 불교는 왕즉불(王卽佛-왕이 곧 부처)의 엄격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王)은 곧 부처요, 귀족(貴族)은 보살(菩薩)이고, 대중(大衆)은 중생(衆生)이니 부처님 세계의 논리와 위계질서는 곧 사회 구성체의 지배와 피지배 논리와 절묘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깬 사람은 도의선사(道義禪師)이다. 도의의 성은 王씨이고 호는 원적(元寂)으로 784년 당(唐)나라에 건너가 35년간이나 유학하며 강서(江西). 홍주(洪州)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 불법을 이어 받고 도의(道義)라 개명하여 821년(현덕왕 13)에 귀국한다.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익힌 불법은 실천적 불교인 선종(禪宗-달마대사로부터 시작)으로 서라벌에 돌아온 그는 경전이나 해석하고(교종-敎宗) 염불을 외우는 일보다는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다녔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변혁사상이며,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의 고양을 부르짖는 진보적 세계관의 표현이었다.
왕이나 귀족들 편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위험하고 불온한, 즉 현 체제를 부정하는 사상이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도의선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은 서라벌의 귀족이 아니라 지방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부와 군사적 힘을 키워온 호족(豪族)들이었다.
호족의 입장에서 보면 도의선사가 주장한 자심즉불(自心卽佛)과 일문일가(一門一家)는 하나의 구원의 사상인 셈이었다. 그것은 왕즉불(王卽佛)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 호족들은 지배층으로 상승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卽佛)로 깨침의 능력이 중요하고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다(一門一家)는 사상은 곧 호족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약하고 역사의 진행은 호족중의 한 사람인 왕건(王建)이 918년 고려(高麗)를 세움 으로써 그의 사상은 승리하게 된다.
불교가 흥하면서, 불교가 사치하고, 정치에 개입하고, 세금도 없이 땅을 소유하고 타락하였다. 또한 권문세가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한편, 원의 세력과 결탁하여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수탈을 자행하여 전제를 문란하게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반원정치(원나라에 반대하는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의 세력과 싸워야했고, 안으로는 권문 세가를 눌러야 했는데, 원의 압력으로 왕권 기반이 약화되고 또 개혁 추진 세력이 성립되지 못하여 혼란만 거듭하였다.
공민왕때에는 중국의 농민반란군이었던 홍건적이 자주 침입하여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난을 간적도 있었다. 또, 왜구가 대마도를 근거지로 하여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백성들을 괴롭혀 백성들의 생활은 어려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졌다.
1392년 7월 고려는 이성계 등 신흥사대부 들에 의한 역성혁명으로 망하고 새 나라가 건국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통일신라와 고려는 불교로 흥하고 불교 때문에 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 당(唐 618~907 : 20대 289년 만에 주전충에게 망함.
○ 고려(高麗 918-1392 34대 474년)
역사공부와 더불어 해학적인 글도
자주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하해 성주님도 야호님 모셔온것을
아주 반가워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