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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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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19:57

황선생 입산기(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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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해서 한 3일 집에서 쉬니 체력도 회복되고, 살만 하니 점점 바깥을 기웃거리게 된다. 애들은 학교 가고 마누라도 없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 혼자 있으려니 너무나 무료해 오늘은 아침부터 거실을 왔다갔다 했다.
'그래! 가서 보자! 까짓 것!'
아직은 온 근육이 부드럽지 못해 뻑뻑하지만 그는 부지런을 떨어 옷을 챙겨입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독일제 허리 보호대를 꽁꽁 여며맨다. 주변의 부축없이 혼자서 집밖을 나오니 아무리 실내에서 연습을 했어도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인도의 울퉁불퉁한 곳을 아슬아슬 하게 피해가며 그는 한발 한발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높낮이가 틀린 부분을 모르고 털썰 내리밟자 충격이 다리를 타고 허리로 전해지고 결국 뇌에서는 마치 한 10m에서 떨어진 것과도 같은 충격으로 쿵하는 울림을 느낀다. 그는 악!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비틀거린다. 얼굴은 온갖 고통이 뒤범벅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다.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른다. 겁이 난다. 포기할까 라고도 생각한다.

지하철역을 내려가면서 난간을 꽉 진다.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내려가는데 4월의 쌀쌀한 기운에도 땀이 뻘뻘 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해서 그를 쳐다본다. 측은한 생각과 함께 도와주어야 하는지 망설이고들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와서 부축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잘못되면 골치가 아프고 시간 날리고 그래서 주저하는 사람도 있다.

"계십니까?"
"예~ 어떻게 오셨는데요?"
"자전거 하나 보러 왔는데.."
"어떤 용도로 쓰실 건데요?"
"출퇴근용으로.."
"어디서부터 어디?"
"목동에서 방배동, 한 28km 되죠 아마?"
"한강 고수부지로 타실려구요?"
"예.."
"음~ 출퇴근시간을 한 몇분 잡고 계시는데요?"
"예?"
"언제 일어나실 거냐구요.."
"글세.."
"한 한시간 반이면 되겠네.. 그러면.."
"무슨 소리죠?"
"근무하셔야 하는데 적당한 시간을 타셔야 하니.."
"아~ 글세.. 얼마나 걸리죠?"
"저는 한 40분이면 주파하는데.."
"전 3일전에 허리 수술받고 퇴원했거든요"
"예? 아이쿠! 그런 몸으로 어떻게.."

허긴 그가 생각해도 그 점원이 놀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부터는 출근을 해야 하는데 여차저차한 이야기를 해가며 방법이 없냐고 하면서 그는 점원의 눈치를 본다. 점원은 자신도 MTB 시합을 하다 허리를 다친 경력이 있다고 하면서 점점 그의 진지함 속으로 빨려들어 오고 있었다.

세월은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그는 3년을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 하면서 토요일, 일요일에는 목동에서 미사리까지 장거리도 뛴다. 그렇다, 준 프로가 된 것이다. 온갖 장비가 다 동원된다. 가볍고, 땀 발산이 탁월한 것이라 하면 그는 돈을 안가리고 수집을 한다. 가벼우면서 방풍이 확실히 되는 겨울용 옷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서 요모조모 따져 본다. 매니어가 된 것이다. 목동에서 미사리 왕복 88km를 4시간에 주파한다. 자전거도 무척 가볍고 누가 봐도 귀티가 난다. 한 여름이든 한 겨울이든 아랑곳 하지 않는다. 눈이 오거나 홍수가 졌을 때는 집안에 자전거 연습대를 마련해 땀이 뻘뻘 날 때까지 죽어라 탔다.

그의 다리 근육은 마치 숏트랙 스케이트 선수들처럼 울퉁불퉁해졌다. 상체도 근육이 붙고 허리는 언제 수술을 4번이나 했냐는 듯이 부드럽고 강해졌다.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금 담당시 하루 3갑을 피던 담배도 끊고, 술도 끊었다. 피부 호흡을 하기 위해, 자전거 탈 때의 속도와 온도와 땀을 견뎌 내기 위해 피부보호를 철저히 했다. 목욕탕에도 가지 않고, 비누를 사용하여 몸을 씻지도 않았다. 흐르는 물에만 몸을 씼었다. 몸을 말릴 때에도 자연 건조를 시켰다. 그러면서 명상 습관도 익혔다. 땀 냄새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육식도 멀리했다. 육수가 나오면 안되니깐.. 이젠 땀이 흘러도 진득거리지 않는다. 생수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매일 녹차를 10잔씩 마셔 감기를 예방했다. 그래서 무려 3년간을 감기에 걸린 적도 없고, 하물며 피곤함에 의한 두통도 한번 없었다.

그리고 정형외과 의사인 친구의 혜택으로 프롤로세라피를 무려 13방이나 맞고 허리 근육의 힘줄도 4배나 강하게 해놨다. 그 힘줄에 근육을 붙였으니 아무리 부실한 허리 디스크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너무 허리 근육을 강화시킬려는 과도한 욕심에 일년에 한번씩 허리 경련이 일어나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을 받기도 한다.

끊어진 다리 신경도 50%쯤 돌아왔다. 그 이유 때문에라도 자전거를 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전거는 발바닥에만 의지하면 되니깐. 엄지발가락에 신경이 없어 뛰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걸을 때도 픽픽 쓰러지던 그도 이젠 그 부분에 신경이 일부분이지만 돌아오고 어느 정도 근육이 생기면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지며 넘어지지는 않는다. 그래! 된 것이다.... 그래! 된 것이다!!!

2001.05.01 근로자의 날.. 그가 자전거를 탄지 정확히 만3년이던 날.. 그는 3달전부터 준비한 등산 전문 옷과 신발, 양말, 가방 등을 챙겨 집을 나왔다. 자전거 매니아가 되면서 기능성 섬유에 대해서는 도가 텄고 2년간을 인터넷을 뒤져서 등산장비를 자신의 분신을 구하 듯 검색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는 구기동 입구에 내려 하늘을 본다. 황사가 걷히고 하늘은 더 없이 푸르다. 신록은 아우성치며 등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공기도 신선하다. 이북5도청~비봉매표소~향로봉 왕복코스를 선택했다. 가장 짧은 코스다. 그는 아무 말이 없다. 크게 심호흡만 하며 밑만 쳐다보며 걷는다. 걷는다... 왠지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은 땀과 섞여 연신 그의 얼굴은 남보다 많은 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모자를 더 깊숙히 눌러 쓴다.

그는 향로봉 정상에서 몇십분째 한 없이 서울시내와 멀리 한강을 내려보고 있다. 바람도 멈춘 듯하다. 사방의 새들도 조용히 그를 쳐다 보고 있는 듯하다. 조금 후에 그의 눈에선 맑은 이슬이 하나씩 둘씩 떨어진다. 해낸 것이다. 등산은 꿈도 꾸지 마라던 레지던트 진선생의 코가 납작해 진 것이다. 가장 짧은 코스이지만 그래서 상당히 가파른 이 코스를 무려 28분만에 올라 온 것이다. 전혀 숨도 차지 않는다.

그는 다짐을 한다. 다음 주부터는 구기매표소~비봉~사모바위~승가봉~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대성문~평창동 코스를 간다. 그리고 그 코스를 100번 넘길 때까지 그 곳만을 간다. 쉬는 날은 무조건 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 15도나 영상 37도나 무조건 간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겨내왔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걱정이 호기심으로, 이제는 감탄에서 그 자체에 대한 존경으로 그를 보는 태도가 바뀌었다.

황선생은 이리하여 입산을 하게 되었다.

그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그는 그곳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그곳이다! 난 안다. 그것은 바로..

지리산! 지리산을 종주하리라! (끝)

후기: 이글은 거의 반신불구가 되어야 했을 사람이 철저한 계획과 자기 절제를 통해 꿈을 키워가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그 과정상에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건강에 대한 기초지식,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터득한 황선생의 노하우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하는 면도 있음을 알려드린다.


music: Kitaro-Theme from silk road

  • ?
    moveon 2003.09.09 09:30
    생생한 투병기 로군요. 감동적입니다. 귀감으로 삼겠습니다.
  • ?
    산유화 2003.09.09 12:50
    긴글 올려주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철저한 자기 계획과 절제, 강인한 정신력에서 나오는 힘은 무한한가 봅니다. 지리산 종주의 꿈도 반드시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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