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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산에서 발행되는 국제신문 6월6일자  7면
'살아가면서'에 실은 두레 아빠 안윤근님의 칼럼입니다]

'지리산의 6월'

이른 새벽, 어둠을 구분할 만한 빛이 들어왔을 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자주 접하지 못하던 시각인지라 무슨 일이 났는지 의문이 먼저 앞선다. 아내의 외조모께서 임종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입관의식 전에 당도하려 서둘러 새벽차로 길을 나섰다. 서울까지의 왕복 길을 당일로 다녀왔으니 거의 12시간 이상을 차안에서 보낸 셈이다. 도시에 살다 지리산 아래로 이사한 지 2년만에 무척이나 바쁜 문상 길이었다.

지난 주말에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이 지금 도시는 월드컵 전쟁중이라고 표현하셨다. 길을 나서니 정말 도시에서 부는 월드컵 바람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지난 2년간 언제나 아침 새소리에 일어나 안개 어린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 줄기를 바라보던 나에게 “고오올-”하며 길게 내뿜는 방송매체의 소리로 길을 뒤덮는 도시의 정열은 사실 그전에 내가 살아왔던 잊어버린 향수(鄕愁)였다.

문상을 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수도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를 관통하게 되었는데, 도로변에는 내 눈에만도 대형전광판이 7개나 보였다. 열차를 기다리면서도 서울역 대합실의 5대도 넘는 수상기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완벽한 인간통제를 월드컵 축구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진행시키는 것 같았다. 하루만에 먼 공간을 이동하면서 한 나라 안에서도 이리도 다른 정서가 느껴지는가 싶은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 관한 것이리라.

지난 주 피아골 골짜기의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도시락도 싸고 족구며 아이들 보물찾기로 오랜만에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점심 때쯤 어느 분이 찾아와 즐겁게 지내신다고 하며 음료수를 돌리길래 모두들 “이번 선거에 나오는 분이구먼” 하며 손 붙잡고 꾸벅 인사를 주고들 받았다. 사실 저번에도 집에서 일할 때나, 들판에 나섰을 때도 “수고하신다”며 박카스며, 인삼드링크를 얻어 마신 적이 있다.

도시와 시골의 선거철 풍속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시골분들은 남에게 괜한 신세를 지는 것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품앗이라는 정서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식사나 물품을 받으면 그래도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어찌 보면 순박한ㅡ영어로 나이브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마음이 있다. 지난 주만 해도 둘씩 짝을 지어 비공식적으로 다니더니 이번 주부터는 공식적인지 아예 어깨띠를 두르고 바삐들 다니고 있다. 읍내 봉고차며 트럭 위에는 확성기 매단 차가 심심찮게 움직이고 있다.

며칠째 집사람은 매실을 따러 오전 6시부터 나가 오후 6시에나 돌아왔다. 가시에 긁혀 팔뚝에 상처를 갖고 돌아와 매실 달린 자루를 허리춤에 매달기에 허리가 아프다고 주물러 달란다. 골짜기의 박씨 아저씨는 모내기철이라 하루종일 논바닥을 다니느라 발가락이 퉁퉁 불었다. 그 집 아주머니는 그래도 모내기라며 찰밥과 나물, 떡을 하시고 남은 것을 챙겨주셨다.

그리곤 산자락에 남은 녹차나무에 매달려 다시 돋는 새차 잎을 뜯으신다. 학교 돌담 위로 내려간 새벽 경운기의 딸딸거림이 저녁 어스름이 되니 다시 들려온다. 멀리 강 건너에 밭을 가지신 윗집 아저씨가 돌아오시는가 보다. 지금은 물이 적어 멀리까지 그물 놓으러 다니는 강변횟집 아저씨도 이러다 몇 년 지나면 자연산 구하기 힘들어 양식물고기 받아야 할 것만 같다고 푸념하신다.

사실 섬진강에 기대어 살던 어부는 이제 거의 없다. 진짜 섬진강 은어는 식당에 없다. 직접 낚는 낚시꾼의 망태에만 철따라 있을 뿐이다. 산과 들과 강에 사는 이들에게 월드컵과 선거는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월드컵은 엊그제 열려 모든 남정네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만 윗집 아주머니는 개막식 날 불끄고 일찍 주무신다. 내가 마실 삼아 찾아가니 ”지금 뭐 재밌는거 한다요”하시며 그제서야 TV를 켜셨다. 풀과 나무에 매달린 농촌의 일상이 소중한 삶이시리라.

우리 모두는 각자의 관심사에 기대어 삶을 살아갈 뿐이다. 월드컵으로 삶의 활력소를 찾고 이런 국가적 행사로 경제생활에 밀접한 관련을 지은 자가 있을 것이며, 선거에 뛰어들어 자신의 포부와 국민 봉사에 삶의 의욕을 지피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는 이웃들의 자연적인 삶을 더 좋아한다. 나도 그와 같은 생업에 종사하고 싶고, 이 모습이 산업화된 한국사회에 지속된 삶의 유형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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