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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산행기에 쓰야 되는줄 알면서 이곳에 쓰는 이유는
그냥 이곳이 좋아서 입니다



<프로로그>
지난해 신입사원이 하루는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선생님은 희망도 비전도 없는 직장에서 왜 이리 오래도 있었어요"
그렇다
난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이젠 중늙은이가 된 나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던가 보다....

직장에서 불혹을 맞은 사람들의 모습은
아마도 원숙미 보다는
이젠 무능한 퇴출 대상이다.
그렇다.....
난 아무래도 이 직장에서 너무 오래 있었나보다




<불혹>
난 사십만 넘으면 더 이상 감정의 소모 따위는 없이
젊은 날의 파도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불혹.....
이제 사십 하고도 두 해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불혹인지 무엇에 대한 불혹인지 도무지 모르며
갈수록 내 안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그 물결 속에서 거친 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조그마한 유혹에도 흔들리는데 그래도 굳이 불혹을 믿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감정의 조절능력 때문일 것이다.




<만남 1>
새벽 2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 비는 내린다.
간간히 달리는 차량들은 모두들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난 지금....
이 빗속에 이 길을 왜 달려가는 것일까?

새벽 4시
월간"마운틴" 황소영 기자를 태운 버스는 진주 터미널에 도착하고,
한 달여 만에 그녀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인터넷의 위력은 이 비오는 새벽 진주터미널에서도 실감한다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가
"검은별님 아니십니까" 한다.

또 다른 일행 "레인보우"님을 만나
지리산 기슭의 털보 김문금님 댁으로 차를 몰았다.




<만남 2>
청곡 김문금님
그는 장승과 서각에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는 예술가이다.
젊은 어느 날
부인과 지리산 기슭에 스며들어 후덕하고 포근한 지리를 닮아 가는 사람이다.
요즘 그는
두 아들을 진주에 유학 보내고
염소를 기르며 부인과 알콩 달콩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를 만나러 간다
이 새벽 빗속을 뚫고서....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길게 기른 수염 때문이었을까?
아님, 그의 예술적인 품성 때문일까?
암튼 나보다 훨씬 연배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갑장이다

내가 하고 있는 사진 작업도 예술이랍시고
그와 앉으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교감하는 것 같아서 좋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
몇 해 동안 훌쩍 커버린 나무들로 가득한 털보농장으로 차는 들어서고
그는 이른 시간 방문하는 이들이 미안하지 않도록 일찍 일어나 우리를 반겨준다.




<해후>
여전히 비는 세차게 내리고
정성이 가득한 한잔의 차로 몸을 녹여보며 바깥날씨만 쳐다본다
"이러다 정말 산행을 못하는 것 아닌가"


먼길 오느라 피곤한 검은별은 청곡님 방안으로
레인보우님은 마루에서.....깊게 잠에 빠지고


(털보 김문금님 부부 -사진 검은별)

지금부터는 털보님과 나....그리고 사모님 셋의 오붓한 시간을 가진다
아쉽게도 전날 털보님이 눈을 조금 다쳐 곡차를 하지 못하신다
어디 꼭 곡차를 마셔야 좋으랴
오랜 벗을 만난 듯 우린 서로의 삶과 추구하는 예술의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신 사모님은 비오는 날 어울리는 찌짐과 감자를 내어오신다.

청곡 김문금님
반야 임대영
그들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비는 그치고 여전히 검은별과 레인보우는 꿈속을 헤메고 있다.
그 사람들 어지간히 피곤하였던 모양이다.....
별기자는 취재는 어떻하려고 서리.....
거참~~!

단잠을 자는 검은별은 5번이나 깨워서야 눈을 비비며
"비 그쳤어요 한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안주 삼아 먹던 감자를 7개나 먹는다
나도 2개밖에 먹지 못했는데....




<15년 직장생활 첫 결근>
이번 "마운틴" 취재산행은 산에서의 비박이다.
산행코스는 대원사 - 치밭목산장 - 중봉 - 천왕봉(1박) - 중산리 코스다.
그러나 이미 한나절을 비로 소비했으니 역으로 가기로 하고 중산리로 향한다.
중산리 매표소
멀리 낮 익은 얼굴이 있다
그러나 검은별에게 관리실에 가서 순두류 까지 차로 올라가게 교섭하러 보냈다.
내가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도 산 잡지사 기자로서의 생활을 하려면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이다.
암튼 이런 저런 일을 시켜서 미안함을 이 지면으로 빌어서 전한다.
검은별이 교섭을 마친 뒤 난 관리공단 친구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순두류까지 차를 태워 주는 것으로 나의 임무는 다하는 것으로 하였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순두류에 차를 주차할 즈음
하늘은 파랗게 개이고
난 내일 출근해야 하니 여기서 내려가겠노라고 하니
옆에 있던 검은별이
"로타리 산장까지만 같이 가죠"
털보님. 숙이님, 레인보우님....모두가 합세하여
"날씨보니 일몰이 죽이겠네"
"내일 아침 일출은 정말 환상적이겠네"
아~~!
이론~~!
갈등....갈등....또 갈등....
난 내일 출근해야하고
이 사람들이 합세하여 사람잡네....그려!

난 주섬 주섬 짐을 싸고
"에라 모르것다"

이렇게 하여
15년 직장생활 첫 결근은 이루어졌다.




<쉬엄 쉬엄 가는 길>
예정에도 없었던 산행이었기에
개나리 봇짐 같은 배낭으로 쉬엄 쉬엄 간다.


(사진-검은별)

커다란 배낭을 메고가는 검은별이 힘들어 보이지만,
20일전 살점하나 떼어낸 후유증이 어떠할지도 몰라서 애써 모른 체 한다.
한번씩 휠끔 쳐다 보는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재발하면 정말 힘들어질지도 모르기에......

취재 산행이라는게 원래 사진을 촬영하며 가야하기에 그야 말로 널널하다.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는 산행내내
이제 사진에 취미를 붙이신 털보님이
"숙아 거기에 서서 포즈함 취해봐라"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하하
두분 모습이 하도 정겨워 난 취재사진 촬영해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 쳐다보기에 바쁘다.
아마도.....
검은별은 이 모습보고 얼매나 부러웠을 거나...


(사진-털보님)

온몸에 땀이 베어나올 즈음
최근 새롭게 수리를 마친 로타리 산장이다.
점심으로 라면은 끊이는데 산장직원이 한사코 커피한잔 하라고 권한다.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털보님과 죽이 잘 맞는다


(로타리 산장)


(로타리 산장의 재털이에 솟대)


(사진-털보님)

다음에 산장에 사진 한 점 귀증 하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우린  천천히 갈 길을 재촉하였다.




<이 아가씨 배낭이 왜 이리 무겁지...>
그래도 남자인데.....
검은별의 커다란 배낭과 나의 개나리봇짐 같은 배낭을 바꾸어 메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이다
지금까지의 길과 달리 경사도 심해지고
온몸에 땀은 비오 듯 하다.
잘만 가던 털보님도 속도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


(망바위에서 털보님과 반야)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인보우님은
노털들하고 못다니겠네 하듯이 보이질 않는다
숙이님은 연신
"나이는 못속이겠네" 하시고
검은별은 그저 웃기만 한다
이거 반야와 털보는 완전히 스타일 구기고 있는 것 아닌가....


(사진-검은별)

그래도 속으로는
이 정도 배낭에 이렇게 땀을 흘릴 수 있는 것 일까?
아마도....몰라도.....수술 후유증일거야....
산행이 끝난 지금도 그게 수술 후유증이라고 믿고 싶다.

지난 6월초 연휴 때
발디딜 틈조차 없이 붐비던 등산로는 궂은 날씨와 평일로 인해
아무도 없이 우리들만의 길이다.




<일출은 중봉, 일몰은 천왕봉>


(사진-털보님)





천왕봉밑 빨찌산 아지트에 비박지를 마련하고 올라선 천왕봉,
비온 뒤 구름 같은 운해는 없지만 그림 같은 주능선의 선경에 우린 어린아이가 되고 있었다
조금씩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자 각자 맘으로 무엇을 비는지 말이 없어진다.

난 과연 그 순간 무엇을 빌었던가?
사진.....가족.....사랑......
그리고
난 왜 15년동안 지각 한번 하지 않았던 범생이 결근을 하면서
여기 천왕봉을 올라왔단 말인가?

이 모든 의문을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속에 묻어버렸다.







<별아 내 가슴속으로>
보고싶은 이....
같이 하고싶었던 이.....
가고싶었던 곳....
한잔 한잔 돌아가는 곡차속에 내가 이곳에 오고자 했던 것이 녹아 나고 있었다.

쏟아지는 별들....
저 수많은 별들속에 나의 별은 어디란 말인가?
어린시절 품었던 수많은 꿈들....
이젠 그 꿈들을 하나씩 버려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니....
이젠 그 꿈들중에 얼마나 남아 있단 말인가....

별이여 청춘이여 사진....
나의 사랑이여......

천왕봉에서의 밤은 그렇게 별을 세면서 깊어만 갔다.




<천왕일출>
3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
난 언제나 중봉에서 보아온 일출을 천왕에서 맞이한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들이 준비도 없이 올라와서 추위에 떨고 있다.
나도 저러했지.....
20년 전...
이곳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지....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속에 모두들 각자의 소원들을 빌어본다.
이젠....언제인가부터....
떠오르는 태양보다
지는 태양이 아름다워 보인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일까?

어제 올라오면서 혹시나....
운이 있다면.....나의 조상들이 3대에 걸쳐 덕을 쌓았다면.....
구름 바다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으리라....기대했건만
역시 쉽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니...
얼마나 더 올라야 한단 말인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짐을 패킹하고
보고싶었던 이....
만나고 싶었던 이와의 작별을 고하고 하산 길을 서둘렀다




<에필로그>
난.....
15년 동안 모범생이었던 내가 왜 결근을 하면서 천왕봉을 올랐을까?
산행이 다 끝난 지금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 리날도 중 울게하소서


  • ?
    오 해 봉 2003.07.07 13:31
    젊은날의 파도를 잠재울수 있으리라 믿었다는 반야님. 사진만 잘찍으시는줄 았았더니 글또한 프로이심니다. 좋은 산행기 좋은 사진 잘보았습니다. 산행에 곁들인 사진이 정말로 좋고 이것이 디지털시대의 산행기인것 가요?
  • ?
    오 해 봉 2003.07.07 13:32
    60이 가까워지는 저도 이제부터라도 배워야 될것 같네요.
  • ?
    솔메 2003.07.07 15:32
    사랑방이 좋아서 사랑에 올린 '결근산행기'가 이채롭네요..아름다운 음률과 영상, 그리고 秀麗한 글귀...
  • ?
    반야 2003.07.07 15:34
    나이도 어린놈이 어르신들 앞에서 넉두리를 늘어 놓은듯 합니다....그냥...젊은놈의 객기로 봐주십시요
  • ?
    끼득이 2003.07.07 15:43
    일몰의 지리능선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하루 결근하실만 합니다. ㅎㅎ
  • ?
    하품 2003.07.07 18:15
    결과론~~하루의 결근이 글,사진으로 말미암아 만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네요^^
  • ?
    조니굿보이 2003.07.13 21:42
    선생님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아직 많은 부분을 더 쌓아야 하실나이인데요..뭘 저희 같은 후배들을 선배님 경험에 빗대어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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