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사랑방>사랑방이야기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세요.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2007년 5월 26일 (토) 00:03   연합뉴스



<'인연' 남기고 간 '국민 수필가' 피천득>



서정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사랑받은 5월의 금아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인연' 중)

25일 타계한 금아(琴兒) 피천득은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서정적이고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풀어낸 한국 수필문학계의 대표 작가다.

대표작 '인연'은 자신이 열일곱 되던 해부터 세 차례 접한 일본 여성 아사코와의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한 것으로,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이 작품을 읽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설렘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첫 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2002년에는 수필의 실제 주인공인 아사코를 소개하는 내용이 국내에서 방송됐을 정도였다.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의 삶을 산 그는 1910년 5월29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上海) 공보국 중학을 나와 호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광복 직후에는 경성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고 1954년에는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하버드대에서 1년 간 영문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수필가로 유명한 그의 문학 입문은 시가 먼저였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으로 등단한 뒤 잡지 '동광'에 시 '소곡'(小曲)(1932), 수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1933) 등을 발표했다.

1947년 첫 시집 '서정시집'(1947)을 출간한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 수필가'로 불릴 정도로 수필을 통해 문학적 진수를 드러냈다.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 맵시 날렵한 여인"이라며 은유법을 구가한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 '수필'은 '인연'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세기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의 단편 '큰바위 얼굴'을 번역한 글을 포함 4편의 글로 1999년 2학기 국정 교과서 '국어' 과목 수록작 저작권자 가운데 저작권료 수입 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춘원 이광수가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닮았다고 붙여준 호 금아(琴兒)처럼 그는 딸 서영씨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인형을 목욕시키고 머리를 묶어주는 등 인형놀이를 하는가하면 흠모하는 작가인 바이런, 예이츠의 사진과, 자신이 '마지막 애인'이라 불렀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을 가까이 두는 소년의 모습을 간직했다.

어린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발표작 가운데 어린이가 읽기 적당한 시와 수필 등을 엮어 '어린 벗에게'(2002년)를 냈다.

지난해에는 대표작 '인연' 등 16편의 수필작품이 수록된 '피천득 수필집'이 처음으로 일본에서 출간돼 화제가 됐다.

그의 딸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다. 수필작품을 통해 여러번 딸의 이름을 부르며 부정(父情)을 나타냈다.

"서영이는 내 책상 위에 '아빠 몸조심'이라고 먹글씨로 예쁘게 써 붙였다. 하루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아빠 몸조심'이 '아빠 마음조심'으로 바뀌었다. 어떤 여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랬다는 것이다. (중략) 아무려나 서영이는 나의 방파제이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 하더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으며, 나의 마음 속에 안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다."('서영이' 중)

미국에서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는 그가 그토록 사랑한 딸 서영씨와 남편 로먼 재키(MIT 물리학 교수)씨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외손자에 대한 그의 사랑도 매우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3년 10월부터 글을 싣기 시작한 월간 교양지 '샘터'와 인연을 이어갔으며 2002년 8월에는 월드컵의 감동을 쓴 시 '붉은 악마'와 'Be the Reds!'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환호하는 사진이 '샘터'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서초구 반포본동 자택에 있는 본인의 서재를 그대로 샘터 사옥으로 옮겨 달라고 샘터 측에 부탁했다.

서재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소 보던 책, 안경, 메모 노트, 좋아하는 작가와 배우 사진 등으로 채워진 단촐한 공간이다.

'피천득의 방'은 향후 파주출판단지에 세워질 샘터 새 사옥 설계도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샘터 측은 "작은 아파트에서 책과 음악과 조용하게 살다 간 선생은 다작(多作)을 경계했다"며 "문단에 나온 뒤 그가 쓴 책 가운데 대표작을 꼽으라면 대표 수필을 엮은 수필집 '인연'과 시집 '생명', 번역서 '내가 사랑하는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등을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의 문학관은 자신의 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인생의 "아름다움" "인간 본연의 의지와 온정"의 문학이었다.

국내 원로ㆍ중진 문인이 문학에 입문한 과정을 들려준 책 '내 문학의 뿌리'(2005)에서 그는 "문학의 내용이 주로 아름다움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며 "슬픔이나 고통도 얼마든지 문학의 내용이 될 수 있지만 비운에 좌절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의지와 온정이 반드시 그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작가의 문체처럼 소탈하고 검소했다. 술과 담배는 평생 하지 않았고 산책과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으며 화려한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소박한 인생관을 가진 그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후에 대해 작은 바람을 말한 적이 있다.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억울한 것도 없고 딱히 남의 가슴 아프게 한 일도 없고…….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그것도 참 염치없는 짓이지만…."

생일을 며칠 앞두고 떠난 그의 마지막 길은 가족과 평소 친하게 지낸 문학계 지인들이 함께 했다.

김정선 기자 jsk@yna.co.kr

(끝)

기사 원문 주소 : http://news.media.daum.net/culture/book/200705/26/yonhap/v16868457.html




인연   피천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연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로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시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쉘부르의 우산 주제곡 - Naori Uchida 하프 연주
I Will Wait For You - The Umbrellas of Cherbourg


  • ?
    산이 2007.05.26 17:05
    순수하셨던 분 같습니다.
    학교때 읽고 오랬만에 다시 읽으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야생마 2007.05.26 17:5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교과서에서 작품을 접했었는데...
    저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하고 간 사람이 되고 싶네요.
  • ?
    섬호정 2007.05.27 14:39
    고 피천득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인연, 그리고 첫사랑의 대명사 같던 님의 수필들을 떠올리며
    서정속에 담긴 일생! 삶의 향기를 못내 그립니다
    고맙습니다
  • ?
    선경 2007.05.28 09:49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생의 아름다움과 진솔한사랑을 들려주시던 수필들을
    떠올려봅니다
    여기 토론토에 아드님 피세영님이 계셔서
    가끔 피천득님의 수필을 문학란에서 읽곤했답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오 해 봉 2007.05.28 12:33
    삼가 피천득님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십시요.
  • ?
    이안 2007.05.30 21:09
    쉽게 쓰는 글로서 사랑을 받은 금아선생이십니다.
    금아선생님의 글에서 특히 기억나는 글은..
    대화자가 있다면 밤을 새워 걸어가도 좋을 즐거운 일이라고
    하신 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특별히 종교를 갖지 않으셨다해도 천국과 극락의 문턱을
    무사통과하셨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우담바라 2010.05.13 19:44
    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글 입니다.
    이안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사진 업로드 2 하해 2016.07.01
공지 변경된 사이트 이용 안내입니다. 하해 2016.05.20
공지 해연님의『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출간! 9 하해 2009.07.01
공지 이 곳을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께--필독 17 운영자 2008.07.19
6230 '대한민국 산장지기 1호' 하산하시다 5 file 如山 2009.04.19
6229 '두레네집'의 '이레' 미국 유학 장도에...! 6 如山 2010.01.27
6228 '목은집'의 한시 한수 5 산유화 2003.09.04
6227 '박용희 갤러리'가 아주 풍성해졌네요! 7 최화수 2002.05.28
6226 '봄 밤' 2 차산 2004.02.17
6225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남은 고모 1 방랑하는 늑대 2006.12.10
6224 '비목'그 숨은 이야기 7 섬호정 2007.06.25
6223 '사공의 뱃노래 감을거리며'.... 4 file 청솔지기 2011.03.23
6222 '산행기'에 대하여.. 5 이안 2008.09.18
6221 '소소선방'에선 '솔메거사 야그'가 화제...! 1 최화수 2002.05.22
6220 '아나벨 리' 7 김현거사 2004.08.04
6219 '아버지와 딸' 2 사자산 2008.02.28
6218 '어버이날'에 당장 찾아가 보아야 할 곳! 1 최화수 2002.05.08
6217 '엄마야 누나야' 작곡가 안성현 사망 8 방랑하는 늑대 2006.05.28
6216 '여씨춘추' 5 김현거사 2005.06.05
» '인연' 남기고 간 '국민 수필가' 피천득 7 방랑하는 늑대 2007.05.26
6214 '자이언트' 님, 지리산 200차 종주! 3 file 如山 2008.06.03
6213 '중봉'님, 카페 '내사랑 지리산' 개설! 최화수 2002.09.04
6212 '지리산 두레네집', 부산청소년수련원으로... 1 file 如山 2009.12.10
6211 '지리산 둘레길'(5구간)...! 4 file 如山 2010.10.3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6 Next
/ 31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