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벨 리'
지금 남해 미조리는 맑은 바닷가 돌담 둘러친 집 몇채만 있던 그런 한가한 옛날 어촌이 아니다.
2층자리 빌딍들과 다방 식당이 있으며,주차장 넓직한 수협 공판장 앞 물결 위에 멸치나 도미 우럭을 잡아온 배가 가득하고,버스 타고와서 생선을 사가는 관관객 밀려다닌다.
그러나 1966년 6월,제대 후에 영문성경 한권과 원고지만 들고 찾아갔던 미조리는 흰구름 아래 파도만 밀려오는 저 먼 남쪽 바닷가 한 외로운 어촌이었다.
외로운 곳에 피는 꽃이라 더욱 아름다웠던지 모른다.
말동무 귀한 어촌 아이라 그랬던지 모른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 달고와 도시 아저씨가 자기집에 있는 것을 자랑하던 꼬마 숙녀는 하숙집 외동딸 금순이었다.
남편을 바다에 빼앗긴 젊은 과수댁은 내외하느라 밥상과 물그릇 들이는 심부럼을 초등학교 일학년 금순이를 시켰는데,금순이는 그일 뿐 아니라 항상 내 산책길에 자랑스럽게 따라나서곤 했다.
등대 우측에 가면 해풍에 잘 자란 푸른 풀밭이 있고.반월형 아담한 만(灣)이 있다.물가에 그럴싸한 바위들이 있어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고,흰구름 아래 비취빛 파도는 끝없이 백사장에 밀려오는 곳이다.
인적 드문 그곳에서 금순이와 바위 사이로 잽싸게 도망가는 게를 잡기도 하고,모래 속에서 우툴두툴한 껍질이 보석처럼 색깔 신비로운 조개를 잡기도 했다.
금순이는 허연 광목 저고리에 아래는 까만 홑치마 입은 시골 아이지만,들어난 통통한 팔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윤끼있고 부드럽다.하느님은 소녀에게 가난과 함께 충분한 건강미를 동시에 부여한 것이다.
게나 조개를 잡다가 수영도 했다.섬에 수영복이 없는지라,속 빤스가 수영복이다.섬아이들은 걷기 전에 수영부터 할 줄 안다.금순이는 시원하게 나가는 크롤 헤엄이고 나는 두팔로 헤우는 개구리 헤엄이다.
두 사람은 파도 속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았다.물속의 가리비조개와 조약돌도 주웠다.아버지가 없어서 그랬을까?수줍어하면서도 금순이는 나를 몹시 따랐다.푸른 파도 속에서 예쁜 인어와 논 셈이었다.물에서 나오면 우리는 발을 통통 굴러 귀에 들어간 물을 털고,바위 뒤로 가서 빤스를 벗어 물을 짜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초등학생 금순이는 지금 어디 갔는가?
40년 뒤에 미조리 가서 그곳에서 제일 오래된 갈치횟집에서 금순이 소식을 물었지만,이름도 기억 못한다.
에드가 알란 포우의 '아나벨 리'처럼,금순이는 추억 속 바닷가 왕국으로 가버린 것 같다.
바닷가 한 왕국에
애나밸리라는 한 소녀가 살았답니다]
젊은 시절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명시지요.
김현거사님 사모님 두 분 건강한 여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