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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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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7 10:27

함양의 산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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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지리산 정기로 빚은 ‘으뜸 藥酒’

경남 함양 산삼주

경남 함양은 묘한 곳이다. 전통술을 빚는 술도가가 유난히 많다. 다른 동네는 하나 있기도 어려운데, 함양에는 지리산 솔송주, 지리산 국화주, 지리산 산머루와인, 지리산 팔선주 해서 모두 4군데나 된다.
포천은 막걸리로 고창은 복분자가 유명해서 술도가가 많다고 하지만, 함양은 어찌하여 술도가가 많단 말인가.

그렇다고 함양 사람들이 술이 세거나 술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함양 사람들에게 물어도, 왜 술도가가 많은지 특별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모든 술도가들이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두르고 있는 것이, 미심쩍다.

함양은 지리산 천왕봉의 정북쪽에 있다. 지리산 정기를 받고 있어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동네다.
신라인 최치원이 1100년 전에 조성한 인공숲이 있고, 문묘에 배향된 동국 18현 정여창이 나고 자랐고, 죽염과 유황오리를 대중화시킨 김일훈이 정착한 곳이다.
기도 세지만 기인도 많은 땅이다. 그 기세에 맞서기 위해 술도가도 많은 것일까.

함양 땅에 갔다가, 내게는 기인으로 여겨지는 심마니 한 사람을 만났다.
할아버지 대부터 삼을 캤다는 양진필(44)씨다.
그는 10년 전에 더덕 한 뿌리를 캐어먹고 산을 타도 땀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 약발이 떨어질 즈음이 되었다지만, 산비탈을 평지처럼 거침없이 걸어간다.
그는 장뇌삼도 재배하는데, 함양에서 바라다보이는 지리산 북사면을 산삼 씨앗으로 덮어버리겠다고 했다.

양씨의 소개로 산삼과 인연을 맺은 술도가가 있다.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에 있는 지리산 팔선주로, 그곳에서는 산삼주를 출시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발효 약주 중에서 가장 비싼 술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주교동법주 900ml로 3만원인데, 산삼주는 그보다 더 비싼 출고가격 4만3210원이었다.
소비자 가격은 5만5000원 안팎이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비싼 약주인 셈이다.

이렇게 도도한 술을 만들고 있는 이는 지리산 팔선주의 하영빈(42)씨였다.
그는 아버지의 업을 이어서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천석꾼 집안에서 자란 그의 아버지 하대진(65)씨는 혼인하고 분가하면서 1970년에 막걸리도가를 인수했다.
하대진씨는 이제 몸이 약해 술도가 일은 손을 뗐지만, 그래도 밑술에 쓰이는 물만은 산에서 손수 떠온다.

그런데 그 물이 특별하다.
술도가 뒤편의 임천강을 건너면 산청군이다. 그 산청군 쪽으로 바라다보이는 산이 왕산이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묻혔다고 전해오는 돌무덤이 거기에 있다. 그 돌무덤에서 1.5㎞쯤 올라간 산중에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으로 나오는 류의태의 약수터가 있다.
일명 약물통으로 불리는데, 류의태가 한약제조를 할 때 이 약수를 사용했다고 한다.

하대진씨는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밑술용 물을 하루 두통씩 떠오는데, “그 물로 해야 술이 안심하고 잘 돼”라고 했다.

하영빈씨는 아버지가 빚던 막걸리에, 약주 팔선주와 대통술 소춘(小春)을 만들면서 올해 초에 산삼주 6000병을 한정 출시하게 됐다.
하씨는 처음 양진필씨로부터 산삼주를 만들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턱도 없는 소리, 그기 무슨 사기꾼 짓인가” 싶었다.
맛은커녕 구경하기도 어려운 산삼으로 술을 만들다니,
만들면 몇 병이나 만들고 팔면 또 얼마를 받을 것인지 가늠되지 않아서였다.
산삼을 술에 잠깐 적셨다가 꺼내놓고 산삼주라고 속여 팔기 전에는 가능한 일 같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하씨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산삼배양근 제조장을 다녀오고서 마음이 바뀌었다.
**** 에서는 산삼의 조직을 떼어내서 인공 배양근을 만드는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중국·북한·남한 등 전세계 산삼 표본을 3000개 넘게 확보하고, 염색체(DNA) 분석으로 진짜 산삼을 판별하는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산삼 전문기관이었다.

**** 대표는 구입한 산삼 3000 뿌리 중에서 순수하게 야생 산삼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은 32 뿌리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둔갑이 잦고 판정이 어려운 게 산삼이었다.

산삼 배양근을 만드는 기술은 이러했다.
산삼 세포에서 생장점을 분리해내서, 이를 뿌리내리게 한다.
뿌리를 토막내서 20ℓ액체 생물반응기 안에서 한달 이상 배양한다.
그러면 잔털 뿌리가 무수하게 뻗어나온다.
이를 다시 대형 용기에 넣고 대량 배양시켜, 배양근을 완성시킨다.
세포에서 배양근이 되기까지는 50일 가량 걸린다.
120년 산삼 성분을 복제하는데 50일밖에 안 걸린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하씨에게 의문이 남았다.
산삼 배양근이 산삼과 동일한 성분이냐는 것이다.
그러자  DNA분석 결과를 보여줬다.

“산삼과 산삼으로부터 재분화된 산삼 배양근이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재배 인삼과는 유전적으로 차별된다”는 것이 분석표에 나타나 있었다.
이미 이 결과를 놓고 광동제약, 종근당, 보령식품, 조선무약에서 산삼 배양근을 사용한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에서는 함양군과 산삼 1000만 뿌리를 군유지에 재배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장차 함양은 산삼의 메카가 될 판이다.
그래서 하씨는 팔선주를 바탕으로 삼아 산삼주를 만들게 됐다.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급 약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술 재료도 찹쌀을 쓴다.
재료를 세 번으로 나눠 담근 뒤에, 마지막으로 알코올에서 추출한 산삼 배양근 농축액을 넣는다.
넣는 양이 전체 술 양의 2.8%다. 상상외로 많은 양이다.

산삼주는 인삼 향보다 훨씬 강렬한 향이 났다.
산삼을 먹어보지 못했으니, 나로서는 그게 산삼 향인가보다 여길 뿐이다.
그래서 심마니 양진필씨에게 술병을 들고가 맛을 봐달라고 했다.
내게는 진하게 느껴지는 그 맛을 두고, 그는 “미세하게 온다”고 신중하고 진지하게 평했다.
“그래 미세하게 온다는 말이지”,
나는 심마니의 말을 되새기며 야금야금 산삼주를 마셔댔다.
얼마를 마셨을까.
산삼을 먹으면 명현 현상이 온다는데, 내 몸이 후끈후끈하고 앞산자락이 출렁출렁했다.
산삼에 취한 것일까,
술에 취한 것일까.


  • ?
    허허바다 2004.07.27 12:02
    거사님 유용한 정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번 만나 뵈어야 할 터인데...
    이 더위에 건강은 어떠신지...
  • ?
    솔메 2004.07.27 13:08
    산삼의 세포를 배양하여 자연 산삼의 효능에 가까워진다니
    산삼의 희귀성에 의한 신비로운 가치가
    적잖히 위협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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