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중략
시인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내용처럼 나의 잔인한 4월이 흘러간다.
더디게 오던 봄의 소리가 문득 4월에 다다르며 나는 심한 홍역을
앓듯 모든 것으로 부터 소외되어져 갔으며,...
쏟아 오르던 이름모름 새싹들과 허정가 마당앞 목련의 애처로운
몸짓을 뒤로한채 나는 긴 방랑에 놓이고 말았다.
이번 봄 나는 참으로 긴 욕심 앞에 놓인 내 자신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허정가의 전면적인 보수였다.
지붕을 비롯해 사용하고 있지 않은 방두칸 그리고 기존 방들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였다.
보수생각에 거의 다른 일들을 제쳐놓고 긴 망상에 빠지듯
허둥대기 시작한 나는 이 괜한 욕심앞에 결국 리듬을 잃고 말았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집수리후 변모할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와 망상에 빠져, 이른 새벽 물안개 피는 계곡을 거닐고,....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신성한 일과를 놓쳐버렸다.
이 생각 저생각에 빠져 체하듯 숟가락질을 해되는 고락서니 앞에
천천히 정성껏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즐거움도 사라졌으며,...
깔끔히 방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도 뒤로 미루어졌다.
뭐 어차피 수리에 들어가면 이 같은 일은 몇 개월 동안 의미가
없을테니깐, 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장작과 잔가지들을 하기위해
지게를 지고 뒤편 산을 오르는 일은 더욱더 있을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황토 업체에 전화하고 담배 한대 물고,
지붕관련 강판 업체에 전화하고 담배 한대 물고
이것저것 계획잡다 담배한대 물고, 급기야 채마밭도 시간에 쫒겨
겨우 하루 시간을 내어 땅을 억지로 뒤엎으며 땀을 흘리다,...
문득 빨갛게 물들은 함양 독바위를 쳐다보며 지는 노을 앞에
서는 일순간 나는 문득 한달여 동안 꼬박 잃어버린 내 자신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아! 내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어쩜 이런 바보같은 짓을,...쯧쯧쯧
회한의 땀 방울을 훔치며, 들고있던 쟁기를 털썩 놓으며
긴 상념에 잠기고 말았다.
원래 가진것도 없었지만,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며 무소유 삶을 살고자
맹세하고 결심해던 나 자신이였는데....쯧쯧쯧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뭔가를 이루고 만들려는 순간, 좀더 나아질려고 노력하는 순간
나는 이미 긴 고통속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밭가는 장비를 가지런히 놓고 툇마루에 앉자 주위를 돌아보니,
나는 지금도 너무나 벅차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주방엔 넘쳐난 그릇과 먹을거리들, 창고에 쌓아놓은 잡다한 물품들,
냉장고에 세탁기에 찻상에 비싼 찻잔까지,
그리고 너무 많은 등산용품들, 아울러 수많은 인연들까지,...
.
.
.
어제는 갈아놓은 텃밭에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나니 징그러울 만큼 잔인한 4월이 조금씩 비켜가는 것 같았고,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작은것과 적은 것에 만족하고,
그리고 단순하고 간소한 것에 빠져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내 자신을 제한하고 한계 지우는 물질의 비좁은 공간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정신과 맞딱뜨리고 싶다.
먹을 갈아 허정가 벽면에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자> 라는
문귀를 써야겠다.
그것도 빨리,...
그리고 창고에 들어가 배낭을 손질하고 등산물품을 정리해 5월1일
산방기간이 해제 되는날 우리집 앞산인 지리산을 올라야 겠다.
모두가 무의미할것 같습니다...새로운 정신세계과 만나고 싶으신
허정님의 소망 이루시기를 바라봅니다
저도 공간이 세월을 따라 점점 단순하고 간결한것이
좋아집니다
역마살이 많은 이방랑자는 길이 언제나 내앞에 있다는
그자체만으로도 행복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