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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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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22:30

어느 산꾼의 하루

조회 수 132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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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함양 독바위 아래 운서리와 동강리에서의 휴일하루를 기록.^^

2008.6.1.일요일.날씨 ; 황사 약간

토요일 밤
월말이어서 수금하고 동료들 만나 한 잔 한다. 자정이 넘으니 마눌이 발발이 전화를 해 댄다.  일요일에 오봉계곡에 가야하니 그만하고 본부로 귀환 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오봉계곡을 열렬히 원한다나. 믿을 수 없다. 99% 마눌의 염원일 것이다. 오전엔 처가집의 마늘뽑는 일을 거들고 오후에 계곡물에  아이들을 담가놓고 그늘에 자리깔고 누워 자다가 오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잠자며 보내고 싶은 휴일에의 내 열망에 대비한 마눌의 고도의 술책이다. 하지만 최대한 못 이기는 척, 억지로 끌려가는 척, 어쩔 수 없이 낚인 척 처가집엘 가 보아야겠다. 산에 다닌다고 처가집앞을 자주 지나치기만 하고..... 처가집 가 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군. 나이 마흔들고 아이들이 크고 부터는 가족들과 따로 놀면 어쩐지 헛헛해지고 소외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으니.
10시 넘은 시각, 처가집에 도착하니 인적이 없고 마당가 빨랫줄에 하얀  행주만 나부끼고 있다.
뒷밭으로 가니 큰 처형과 장인 장모께서 골이랑을 하나씩 잡고 앉아 마늘을 뽑고 계신다.
자갈섞인 땅에 마늘이 어찌나 똑똑하게 박혔던지 손으로 뽑는 것은 어림이 없다. 삽질로 흙 째 떠 내어 마늘줄기를 잡고 뿌리부분을 삽등에 쳐서 흙을 털어낸다. 호미로 마늘을 캐던 마눌이 내하는 것을 보더니 수월해 보인다며 자기도 삽으로 하겠단다.
다른 식구들 한 뿌리 뽑을 때 대여섯뿌리씩 뽑는 내 삽을 차마 달라고 할 수 없었던 마눌은 창고로 가서 삽을 찾아 온다.
씩씩거리며 마눌의 삽질하는 양을 보아하니  삽이 잘도 빗나간다. 땅 속에 짱박힌 돌이 많은 까닭이다.
마늘 뽑기가 끝나 마늘의 굵기대로 선별작업을 하는데 연장에 찍힌 마늘이 많다. 가만 보자니까 마눌이 작업하던 골이랑이다. 체!
아이들이 계곡엔 언제 가냐며 들락날락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저 놈들은 의무는 게을리 하면서 권리만 주장한다."
처제가 발끈해서 아이들을 나무란다. 계곡에 빨리 갈 욕심으로 아이들이 마늘작업을 거들더니 십분도 안되어 밭에서 사라진다. 계곡의 미끼에 단단히 낚인 것들이다.
텃밭에서 자란 오만가지 쌈으로 삼겹살을 구워 점심을 먹는다.  아이들이 오돌개를 땄다. 후식으로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피곤하다. 오돌개를 먹던 아이들이 몰려와 또 오봉계곡 언제 가냐고 칭얼댄다.
"빨리 갔다오자. 몇 날을 별렀는데 안 가면 애들 스트레스받는다."
마눌이 강압적이다. 내 스트레스보다 아이들 스트레스 받을까 더 걱정인 마눌이다. 마눌앞에서 좀 더 튕긴다. 냉큼 들어주면 내 머리꼭대기에 둥지 틀까 봐. 계곡물은 차가울 것이라 아이들을 운서보로 데려 가야겠다.
차에 타라고 하니 아이들이 깃발날린다. 아이들의 부탁을 단번에 들어주는 것보다 진을 한 번 빼게 한 다음 들어주는 것이 아이들을 통솔하기에 좋다.
"아, 산천은 좋구나~"
강물에 풀어진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마눌 뱃속에 있을 때부터 들락거린 곳이라 그럴까. 무심하던 풍경이 아이들이 뛰놀아 찬란해 보인다. 강변을 기어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이다. 바람의 입김에 흐름의 반대쪽으로 떠 밀리는 물결을 물끄러미 보는 맏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사춘기에 접어 들고서부터 사색하는 끼가 배어나오는 아들이다. 이 나이땐 강물의 달콤함에 속아서 시간이 물결에 숨어 쏜살같이 흘러 가 버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개망초 피는 언덕배기 풀잎이 훈풍에 스러진다. 바람은 햇볕이 우려낸 풀내음을 쓸어올려 대기로 퍼뜨린다. 안겨오는 햇살의 애무가 바람의 포옹이 몸의 바깥으로부터 몸 속 가득히 차 오른다. 이 따스함은 내 것 같아서 황홀하다가도 붙잡을 수도 없이 아득히 비어버리는 것이어서 안타깝다. 바람은 시간은 사랑은 인생은 속절없이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같은 것이라 시리고 허망하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차고 넘치는 에너지로 위안이 된다. 혈연이라는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 시간은 차창너머 강 물결을 타고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간간히 들려오던, 아이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마눌의 소리가 멎은 것을 보니 아이들이 안전궤도에서 잘 노는 모양이다. 안전불감증이 의심되는 마눌이라서 한 번씩 눈을 흘겨줘야 하는데.... 잘하고 있나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마눌도 강둑에서 자리깔고 잤다두만, 흠.)
어린 모가 서쪽에서 비껴드는 햇살에 잠기는 무논을 따라 집으로 간다.
밭에서 집으로 마늘은 다 옮겨져 있었다. 다발로 묶인 마늘을 창고 처마 아래에 매단다. 이럴땐 죽죽 뻗은 내 팔다리가 자랑스럽다. 마늘작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오돌개를 딴다. 병든 것, 덜익은 것, 벌레먹은 것을 피하고 예쁘게 잘 익은 것만 골라딴다. 무릎이 아프고 어깨가 쑤셔도 정성을 다해서.... 입으로 들어갈 거니까.
붕붕거리는 벌을 조심해서...  꿀벌은 건드리지 않으면 쏘지 않으니까. 장모님께선 새로 탄생한 여왕벌의 분가를 쫓아갈 수 없을까 봐 전전긍긍하신다.
저쪽에서 아까부터 마눌이 식구들이랑 천막천을 뽕나무 아래로 펼쳐서 이동해가며 작대기로 뽕나무를 후려친다. 한 번 후려칠 때마다 오돌개가 후두둑 떨어진다. 급기야 나 있는 데까지 오더니 싹 훑고 지나간다.
양이 엄청나다. 봉지에 담으려고 보니 덜익은 것 벌레먹은 것들이 마구 섞여있다. 날벌레같은 벌레도 많이 기어다닌다.  그런데 내 곱게 딴 오돌개는 벌써 마눌이 벌레먹은 오돌개와 섞어 버렸단다. 마눌의 눈치를 보니 벌레는 고단백이니~ 하면서 오둘개주를 담글 때 함께 쓸어넣을 눈치다.
처형과 함께 오만가지 쌈을 다듬는다.

마늘과 오만가지 쌈과 오돌개를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몹시 피곤하다. 마눌이 소주를 사 온다. 똑똑한 오돌개만을 샅샅히 가려내어 유리단지에 곱게 안치고 소주를 부어 술을 담근다. 오돌개가 좀 남아서 엑기스도 만든다.   잘 우러나야 할텐데. 그나저나 몇 날을 풀넣은 비빔밥만 먹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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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s - Fantasia on Greensleeves

  • ?
    유키 2008.06.04 11:22
    제가 남편의 시선으로 하루를 기록해 보았습니다.
    함양독바위 아래에 위치한 고향엘 가게 되면
    산마을 일기 여러분께 들려 드릴게요 ^^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로군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
    둥지 2008.06.05 15:07
    자금자금 재밌게 쓰셨네요.
  • ?
    수국 2008.07.12 18:38
    일상을 즐겁게 잘 풀어놓으셨네요.
    담음편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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