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마을>산마을 일기

이곳은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중략

시인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내용처럼 나의 잔인한 4월이 흘러간다.

더디게 오던 봄의 소리가 문득 4월에 다다르며 나는 심한 홍역을
앓듯 모든 것으로 부터 소외되어져 갔으며,...

쏟아 오르던 이름모름 새싹들과 허정가 마당앞 목련의 애처로운
몸짓을 뒤로한채 나는 긴 방랑에 놓이고 말았다.

이번 봄 나는 참으로 긴 욕심 앞에 놓인 내 자신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허정가의 전면적인 보수였다.

지붕을 비롯해 사용하고 있지 않은 방두칸 그리고 기존 방들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였다.

보수생각에 거의 다른 일들을 제쳐놓고 긴 망상에 빠지듯
허둥대기 시작한 나는 이 괜한 욕심앞에 결국 리듬을 잃고 말았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집수리후 변모할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와 망상에 빠져, 이른 새벽 물안개 피는 계곡을 거닐고,....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신성한 일과를 놓쳐버렸다.

이 생각 저생각에 빠져 체하듯 숟가락질을 해되는 고락서니 앞에
천천히 정성껏 밥을 짓고 찬을 만드는 즐거움도 사라졌으며,...
깔끔히 방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도 뒤로 미루어졌다.

뭐 어차피 수리에 들어가면 이 같은 일은 몇 개월 동안 의미가
없을테니깐, 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장작과 잔가지들을 하기위해
지게를 지고 뒤편 산을 오르는 일은 더욱더 있을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황토 업체에 전화하고 담배 한대 물고,
지붕관련 강판 업체에 전화하고 담배 한대 물고
이것저것 계획잡다 담배한대 물고, 급기야 채마밭도 시간에 쫒겨
겨우 하루 시간을 내어 땅을 억지로 뒤엎으며 땀을 흘리다,...

문득 빨갛게 물들은 함양 독바위를 쳐다보며 지는 노을 앞에
서는 일순간 나는 문득 한달여 동안 꼬박 잃어버린 내 자신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아! 내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어쩜 이런 바보같은 짓을,...쯧쯧쯧

회한의 땀 방울을 훔치며, 들고있던 쟁기를 털썩 놓으며
긴 상념에 잠기고 말았다.

원래 가진것도 없었지만,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며 무소유 삶을 살고자
맹세하고 결심해던 나 자신이였는데....쯧쯧쯧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뭔가를 이루고 만들려는 순간, 좀더 나아질려고 노력하는 순간
나는 이미 긴 고통속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밭가는 장비를 가지런히 놓고 툇마루에 앉자 주위를 돌아보니,
나는 지금도 너무나 벅차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주방엔 넘쳐난 그릇과 먹을거리들, 창고에 쌓아놓은 잡다한 물품들,
냉장고에 세탁기에 찻상에 비싼 찻잔까지,
그리고 너무 많은 등산용품들, 아울러 수많은 인연들까지,...
.
.
.
어제는 갈아놓은 텃밭에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나니 징그러울 만큼 잔인한 4월이 조금씩 비켜가는 것 같았고,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작은것과 적은 것에 만족하고,
그리고 단순하고 간소한 것에 빠져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내 자신을 제한하고 한계 지우는 물질의 비좁은 공간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정신과 맞딱뜨리고 싶다.

먹을 갈아 허정가 벽면에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자> 라는
문귀를 써야겠다.

그것도 빨리,...

그리고 창고에 들어가 배낭을 손질하고 등산물품을 정리해 5월1일
산방기간이 해제 되는날 우리집 앞산인 지리산을 올라야 겠다.
  • ?
    선경 2005.04.19 04:51
    앞산을 지리산을 가지신 허정님께서 더이상의 것은
    모두가 무의미할것 같습니다...새로운 정신세계과 만나고 싶으신
    허정님의 소망 이루시기를 바라봅니다

    저도 공간이 세월을 따라 점점 단순하고 간결한것이
    좋아집니다
    역마살이 많은 이방랑자는 길이 언제나 내앞에 있다는
    그자체만으로도 행복해봅니다

  • ?
    김용규 2005.04.19 12:56
    조금 있으면 앞산 뒷산에서 뻐꾸기가 많이 울겠지요. 칠선 계곡에는 수없이 많은 무명 폭포가 있는줄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칠선폭포까지 한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두지터는 지금부터 실낙원이 되겠네요. 시원함이 이루말할수 없을정도로 극치를 이룰테니까요.
  • ?
    김정규 2005.04.19 23:52
    언젠가 읽은 책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요. Simplify your life!! 좀 더 버리셔야 하겠는데요.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산마을일기 ㅣ 지리산 사람들의 생활일기 운영자 2005.01.17 2520
37 집 청소 3 끼득이 2005.05.16 1180
36 두지터 허정家 단상(斷想)[석가탄신 특집] - 여자의 일생 2 虛靜 2005.05.15 911
35 잔칫날^^ 3 끼득이 2005.05.13 925
34 두지터 허정家 단상(斷想)[8] - 3등급 3 虛靜 2005.05.05 1206
33 지붕 기와 입히기 7 끼득이 2005.04.28 1162
32 지붕완성 & 모판내기 4 끼득이 2005.04.21 1184
31 한빛 걷다^^ 4 끼득이 2005.04.19 840
30 신록! 아름다움 그리고 생명력... 6 공수 2005.04.19 749
» 두지터 허정家 단상(斷想)[7] - 단순하고 간소하게 3 虛靜 2005.04.18 774
28 서각 작업의 간단한 설명과 이해 9 file 털보 2005.04.13 1237
27 봄이로소이다~ 6 끼득이 2005.04.12 997
26 현관 지붕 7 끼득이 2005.04.06 1274
25 빨간 다라이에 담기어 온 봄.. 7 털보 2005.04.04 1164
24 봄의 가운데에 서서... 7 공수 2005.04.04 840
23 금낭화 6 공수 2005.03.29 841
22 제가 요새 공부하기에 바쁩니다. 6 공수 2005.03.28 1000
21 동남방을 조심하라! 6 공수 2005.03.20 1065
20 똥 푸다, 한이 유치원 가다^^ 7 끼득이 2005.03.15 1176
19 글쎄 봄인데요,아닙니까? 8 공수 2005.03.15 788
18 현관 달마상 10 file 끼득이 2005.03.11 117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