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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폭포의 장쾌한 모습

○ 8.6 (수)
어젯밤 저녁식사후 방에 들어가 이를 닦는데 전기불이 반짝거리며 희미해지더니
정전이 되어서 어리둥절했다.
호텔복도에는 아가씨들이 곳곳에 촛불을켜며 바쁘다.
이방저방에서 왜 정전이 되었느냐고 묻자 중국아가씨들이라 말도 안통하고
그저 미안한 표정에 미소띤얼굴로 절만 꾸벅꾸벅했다.
전기는 근한시간만에 들어왔다.

07:30분에 신달호텔을 출발하여 해란강과 일송정이 있는 용정으로 향했다.
어제는 그리 좋던 날씨가 오늘은 비가 내린다.
백두산 미인송 우거진 숲길을 지나고 민가들이 있는 마을앞을 지나면서 보니
만보루 목욕센타, 룡정음식점, 려인미용실, 동승불고기성, 성달약점등
무척 생소하면서도 애틋한 정이 가는 간판들이 보였다.

약1시간쯤 달려서 김좌진장군의 그유명한 청산리전투 격전지
입구근처에 설치된 "만경대 전시관" 앞에 차가섰다.
안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 조선족 처녀가 북한이 무척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며
멋진브리핑을 한후에 우황청심원을 조금씩  떼어주었다.
24000원짜리 두개를쪼개서 우리일행들에게 맛보도록 나누어 주었다.
맛을 보니 정말로 맛도좋고 입안이환하며 좋았다.

북한에서 외화를 벌기 위하여 약30평정도의 가건물 2동을멋있게 지어놓고
우황청심원, 사향, 개성홍삼,상황버섯. 담배, 술, 우표, 수제자수그림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북한물품전시대에는 "한국돈, 달러, 카드도 받습니다." 라고 쓰여있고,
북한아가씨는 10명정도가 있다는데 4명만 보였다.

이들은 똑같이 하얀저고리 남색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조신한 조선처녀 그대로였다.
날씬도 하고  참으로 예뻤다.
서울에서 온 어떤 약사라는 분은 달러와 카드를 북한처녀에게 주고 200몇십만원
짜리 대형수제풍경화를 사는걸 보았다.
우리 일행 2~3명도 카드로 우황청심원을 샀다.
값은 무척비싸 우황청심원 10개에 16만원과 24만원씩 했다.

만경대 전시관 전면에는 "고국에서 오신 동포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있고 우리가 차타고 떠날때는 계속 정겨운 손을 흔들었다.

만경대 전시관에서 10분쯤 오다가 백두산 갈때 쉬었던 휴게소에 들렸다.
만경대 전시관에서 용변도 보고 했지만 휴게소측과 가이드의 관계를 생각해서
들리는 것이니 물건을 사든 안사든 이해해달라는 가이드의 솔직한 양해다.
커피도 한잔하고 달걀보다 조금적은 능금도 사고 어떤사람은 송이버섯도 샀다.

휴게소를 지나며 아직도 갈길이  머니까 가이드 정군이 자기소개를 하란다.
부부끼리, 하J숙선생님은 70세의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정병은 (10세 초등3년)
네는 온가족이, 대전에서 혼자오신 최목사님, 전남대 이M란교수는 중학교여자
동창끼리, 춘천에서 온 조성희군(대학2학년)네는 막네이모와 이종간 4명이,
아들이 극기훈련가서 틈이나혼자 온 엄마, 딸과 친정조카를 데리고 온 엄마,
친구끼리 온 아주머니, 자매끼리 온 여대생수연이네, 일산에서 온 28세의
오영호, 마수영군등이 이번 우리팀 전부다.

대표로 1명씩 나가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도 한곡씩 불렀다.
참으로 순수하고 소박한 자리였다.
왜 우리는 진즉이 그 생각을 못하고 서로 자존심 그 잘난 혼자만의 품위같은것만
생각했던가가 부끄러웠다.
그래. 사람은 항상 어디가든 겸손해야 하고 언제까지나 배우며 사는것이구나 를  또 한번 느꼈다.
울산에서 온 김태수씨(56세, 현대중공업 근무, 울산동구 라이온스클럽회장)
같은 분은 정말로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하여서 참으로 고맙고 좋았다.

용정가는 길에는 사과 배나무라는 과일나무가 온통산과 밭을 뒤덮고 있었다.
보기에도 싱싱해 보이는 사과 배나무가 2000만그루가 넘고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과수단지라고 했다.
맛은 사과맛도 나고 배맛도 나는 맛있는 과일이라고 하며 용정지역에서 제일 잘
자라고 많이생산 된다고 했다.

일송정이 빤히 보이는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일송정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다시 해란강을 건너 용정대성중학교로 갔다.

(일송정은 100m정도의 조그만 봉우리가 좀 뾰족한 산에 우뚝서있었는데 일제 억압
시기에 용정의 우리동포들이 독립군 지원등 각종독립운동에 관한 모임을 그
큰 소나무밑에 모여 회합을 자주 가졌다고 한다.
시내에서 모이면 일본 고등계형사와 일본 앞잡이들이 밀고하기에 그곳에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소나무뿌리에 상채기를 내고 후추가루를 뿌려서 일송정이라고 부르던
그 유명한 꿈과 애수가서린 소나무를 고사시켰다고 한다.
지금있는 조그만 소나무는 몇년전 서울 중구청에서 심었다고 한다.
참고맙고 감사한 서울 중구청이다.
산꼭대기에는 조그만 정자가 세워져있는데 가이드 정군도 누가 언제 세운걸
모르기에 서운했다
그리고 지난날 해란강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는 간곳이없었다.)

저항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옛 학교 건물 전체를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고 2층교실 4칸에 각종사진과 자료를 잘정리해 진열해 놨다.
조선족 아가씨가 연변말로 브리핑을 기막히게 잘했다.
교실 한켠에 방명록을 5개를 비치해놨기에 부천송내동 오해봉 10,000원이라고 쓰고
봉투에 만원을 넣어서 관리하는 아가씨에게 줬더니 고마워했다.
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시인의 시비앞에서 사진도 촬영했다.

차는 북한과 접경을 이루는 도문이라는 곳을 향해가는데 주위경관이 그렇게도 좋았다.
해란강과 부르하통강을 건너 달리는 차창밖으로는 두만강으로 흐르는강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경춘가도 북한강이나 양평가는길 곡성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길보다
훨씬 좋았다.
나혼자 조고만소리로 일송정 푸른솔과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배사공 을
부르며 갔다.
집사람이 큰소리로 불러보라길래 둘이서로 불러보라며 웃으며 갔다.

기찻길도 보이고 논이며 밭이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정겨운 풍경,
두만강쪽으로는 담배밭도 많고  다른곳에서 못보던 비닐하우스도 꽤 보였다.
바람때문인지 비닐하우스를 날라가지 않도록 얼기설기 줄로 묶어놨다.

도문에 도착하여 말로만 듣던 두만강을 보고 강건너 북한땅 남양시라는 곳과
총메고 보초서는 북한군 병사들의 모습을 보니 뭔가 허전하기만 했다.

저 가까운 우리땅으로 올수도 있었는데... 비행기를 몇시간타고 또 차를 타고
와보는 구나 하는 아쉬움과 어떤 애국심이 솟구쳤다.

300m가 조금 넘어보이는 다리중 어떤 연유인지 1/4만 중국땅이고 3/4은 북한땅이라고 한다.
그 1/4을 밟아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또 한사람당 5,000원씩을 중국사람들에게 냈다.
집사람과 둘이 10,000원을 내고 조금더 가까이 가서 남양시쪽을 멍하니 바라봤다.
발밑으로는 두만강 물이 소리없이 흐르고.
비온후라 푸른물이 아닌 황토물은 아니지만 탁한 강물이 말없이 흘렀다.
엉성하게 만든 전망대 사다리를 5번인가 돌면서 올라가 북한쪽을 바라보고 내려왔다.

오면서 생각하니 왜 우리는 멀리까지 비행기타고 먼길 차타고 와서 5,000원씩
중국사람들에게 돈을 내고 우리땅을 쳐다봐야 할까 하는 아쉬움에 씁쓸했다.
(우리가 다리위에서 사진찍고 구경하는 10여분동안 북한쪽에서 중국사람 남자3명,
100m쯤 뒤에 남자1명, 여자1명이 중국말로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도문쪽으로 왔다.
조금있다가는 1t차량에 허름한 옷차람의 남자 3명이 타고 북쪽으로 가더니 북한
병사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통과하는걸 보았다.)

16:30분경 연길에 오니 햇볕이 쨍쨍나고 무척 더웠다.
연길 반달곰 사육장 구경을 끝으로 백두산쪽 2박3일 관광이 마무리 된다.
중국사람들이 한국관광객들한테 돈을 벌려고 작정을 하고 단체관광팀은
구경하는게 필수코스라고 한다.
가이드정군말은 중국 관광당국과 우리나라간에 체결된 하나의 조약이라고
했다.

곰은 5곳으로 나누어 기르고 관리하고 있었다.
귀여운 새끼곰 100여마리, 중간곰100여마리, 어미곰 100여마리,
웅담을 채취하고 있는 곰 100여마리등 이곳에 1,700마리와
백두산에 무지하게 넓게철조망을 쳐두고 방사시켜둔 800마리등 총2,500마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설명하는 예쁜여자(조선족같아보임. 처녀인지? 주부인지?) 말로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반달곰 사육장이라고 했다.
곰쓸개는 수의사가 마취시킨후 곰이 고개를 못돌릴 정도의 좁은철망안에 가둬두고
곰쓸개에 주사바늘을 꽂아두고 곰이 단것을 먹을때 1회에 50~80cc의 웅담을
채취한다고 한다.
액으로 된 쓸개는 영하60˚c에서 냉동건조한다고 했다.
그 철망에 갖힌 곰은 겨우 앉고 서고 먹는 것외에는 아무짓도 못하도록 해놨다.

웅담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설명하면서 웅담즙을 탄56˚짜리 빼갈을 한잔씩 주며
술먹고 얼큰한 김에 그러니까 술취한김에 많이 사라는 뜻이기에 웃음이 나왔다.

반달곰 새끼들은 정말로 귀엽게 생겼고 저희들끼리 서서 권투도 하고 씨름도
하며 잘도놀았다..
정말로 귀여웠다.
화장품 샘플만하게  냉동시킨 웅담을 또 몇사람이 카드를 긁고 샀다.

연길에서 중국식으로 저녁을 먹고 북경으로 가기위해 공항으로 갔다.
2박3일 정들었던 정군과 아쉬운 악수를 나누고 우리를 백두산까지 2박3일 안전하게
운전해준 중국인 기사와 악수하며 3,000원을 주었더니 절을 두번이나 하며 무척
좋아했다.

20:10분에 연길을 출발한 비행기는 22:20분에 북경에 도착하였다.
북경공항에서는 새로운 가이드 김영남군(28세. 조선족)이 안내하는  버스를 타고
우리가 3일 묵을 세기원양호텔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완전히 특급호텔이었다.

(우리부부는 신혼여행때 서울세종호텔에서 단하룻밤 자보고  햇수로
30년만에 처음으로 좋은 호텔에서 잠을자봤다.
당시 나는 전방에서 보병중대장을 했기에 결혼휴가가 5일뿐이었다.)
  • ?
    ㅇㅏ영호 2003.08.14 23:42
    다시한번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 하나하나 세심한 기록 감사할 따름입니다
  • ?
    김현거사 2003.08.18 01:22
    실감나는 여행기 입니다.그런데 오해봉 선생님 백두산 등반기는 어케 된 겁니까?빠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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