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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07-02-24(토)

장소 : 삼각산

인원 : 산행대장 포함 7명




설날 분위기가 주중 내내 어수선한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어른노릇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형제들에게  소홀했던 일을 섭섭하다고 항의도 받다 보니..

새해 계획은 건강하자.. 또는 복 많이 받아라.. 보다는

가족에게 할애할 시간을 많이 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산행을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주말에 더 바쁜 회사를 다니는 다흰님이 주말에 휴일을 얻었다는

말에 주저없이 결정한 산행..



다흰님과는 지난 해 삼각산 야간산행을 매주 실행하여 얼굴을 익히고

잠시 인연이 끊어진듯 하다가 다시 이어진..

그래서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할 만큼의 귀한 사람입니다.

퇴행성 관절염을 앓아 무리한 산행을 만류하면서도  굳이

산행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은 내가 말리면 혼자라도 산에 갈 것이기에..

새해들어 격조한 산행에 동참하기로 한 것입니다.



독립문역 1번 출구에서 10시 정각에 만난 우리는 성냥곽 같이 꽉꽉 채우는

시내버스를 타고 관세농장까지 갑니다.

당연히 참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나비님이 결장을 하고 대신 지난 해

생일파티의 인연이 되어 알게된 화사한 정혜님이 오셨습니다.

그 뿐아니라 기억이 날듯말듯한 명산님과..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커피향기님과..

그간 끝말잇기로 얼굴은 모르면서 친숙해진 제이씨님이 오셨습니다.



원효봉 가는 길...

원효암에서 흘러 나오는 염불 소리가 귀에 익숙한 것이 아닌지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불교인인 내가 이런데 타인들은 어떨까 싶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변명을 늘어 놓고

맙니다.

예불 시간이 거의 끝나갈 시간임에도 신도들의 축문을 읽는 스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원효암을 넘어 쩌렁쩌렁.. 삼각산을 뒤흔들고 있기에.. 불경을 따라하기는 커녕

마음이 불편 합니다.

낭낭한 목탁소리와 함께 조용한 예불진행이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힘겹게

원효봉을 오릅니다.

근사한 바위가 경사 각도가 70도를 넘는 듯하고..

비가 오면 폭포가 되지 않을까  상상을 하며.. 원효암을 오르니 이제 원효암에서

들리는 소리는 작아진듯 하고.. 다행이 예불시간이 끝났습니다.



이러저러.. 대화가 아닌 수다를 떨며 오른 곳은 염초봉이라는 릿지 구간입니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라는 인쇄가 찍힌 모자를 쓴 두 사람이 지나가는 산님들을

점검하고 제지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애 쓰시는데도 제지 당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은데..

바위를 오르느라 맡긴 나의 스틱을 쥔 제이씨님께 질문이 던져집니다.

- 스틱 줏었어요?

연배는 지긋하신데.. 위트가 멋진 관리소 직원들께 미소로 답합니다.



나는 삼각산을 아무리 올라도 소백산 보다 또, 지리산 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를 아직 모릅니다.

다만 까칠한(원만하지 못한의 속된 표현) 나의 성품 탓으로 산님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불편하고.. 돌릴 뿐...



제이씨님은 경상도 포항이 고향이라는데.. 이 삼각산을 떠나 산에 올라본 적이

없는 분이라고 합니다.

나는 서울에 거주한 시간에 비해 서울 산에 오른 적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나와는 대조적인 산행습관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런 제이씨님은 삼각산의 봉우리를 짚어 가며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위치한 건너편 넘어 어딘가에 유일하게 아는 능선인 탕춘대와.. 비봉우회 능선..

문수봉 가기전에 사모바위등을 가르쳐 주십니다.



날씨는 청명까지는 아니어도 포근하여 추울까봐 입고 간 내의가 부담스럽고..

결국 원효암 어디서 옷을 갈아 입은 후에야 좀더 가볍게 산행에 임할 수 있었음이

오늘 산행의 에피소드입니다.



이쪽 염초봉을 우회하며 가야할 산봉우리들을 가르쳐 주어도 기억력이 많이 없어진

요즘이라 아예 외우기를 포기합니다.

한 100번 오면 삼각산을 외운다고 하니..  100번을 채우던지, 삼각산 지도를 놓고

몇날이고 걸어가며 지리를 익히면 가능할지..



놀며 놀며 걷는 나와 달리 다리가 불편한 다흰님조차 내 앞을 훌쩍 앞질러 갑니다.

넉넉한 산행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커피향기님과 정혜님과 명산님이 진행이 더디니

답답해 하실 것이기에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지만..

이번 주 산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탓에 나의 컨디션으로는 최선이 이것 뿐이라고

뱃장을 내밀어 봅니다.



가다가 배가 고프니..선인산장에 점심상을 차립니다.

선인산장이란 비슷듬하게 떠서 누운 집채만한 바위 아래에 편편한 자리를 마련하고

그 아래 돌맹이를 쌓아 축대를 세운 선인산악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니..

이렇게 역사는 새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주중 내내 친정집과 언니집을 오가며 출퇴근 한 탓에 집에 먹을거리가 없습니다.

행동식으로 넣어 온 누룽지컵 한개 뿐..

그나마 뜨거운 물도 없습니다.

그냥 배낭안에는 초콜릿 몇 알과 물만 부으면 되는 옥수수 스프와..

행동식바뿐..



제이씨님의 배낭에서 흘러 나온 식품이 어마어마 합니다.

집에서 직접 구웠다는 빵과 설날을 지내고 남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약밥..

과일등..

정혜님과 다흰님.. 그리고 명산님의 음식도 정성들인.. 음식들...

음식솜씨 없는 나는 산에만 가면 더욱 기가 죽습니다.

썰렁한 누룽지컵에 다흰님이 가져온 뜨거운 물을 붓고..

넉넉히 가져오신 음식들로 점심 만찬을 즐깁니다.



커피까지 잘 챙겨 주신 산우님들과 다시 삼각산의 노적봉을 향해 걷습니다.

서른채가 넘는 암자가 산재한다는 삼각산..

만경대, 인수봉, 백둔동을 이어서 삼각이 만들어져 삼각산이라고 불린다는 법정명으로는

북한산국립공원...



어느만큼에서 뫼비우스띠처럼 생긴 보조자일에 의해 가파른 바위 한개를 오르고..

다시 질문과 답을 주고 받으며 걸어서 도착한 곳은 노적봉입니다.

바위의 고리에 비너를 끼워서 자일을 내려 준 명선님의 익숙한 솜씨가 멋져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올라 가려니 무섭고 떨리고..

올라가다 꼭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한 번의 실패를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겨우 겨우 올라선 노적봉...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본 노적봉과는 다르게 위엄과 함께 만경대와 인수봉등이 환하게 보여집니다.



노적봉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보일듯말듯 펄럭인다고 생각드는 백운대.. 그리고 만경대..

소인국 사람들이 꼬물꼬물 올라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냥 멋진 봉우리라는 생각 뿐..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노적봉을 처음 올라갔으니..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기쁜 마음도 잠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이기고 겨우 오른  이 곳 노적봉을 자일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 놀라움..

다시 내려온다고 했으면 그 큰 무서움을 이기고 오르지 않았을 것인데..

눈을 흘기며 내려오는 그 잠깐의 시간이 천년의 시간만큼 깁니다.



명산님의 냉정한 판단과.. 산타나님의 따뜻한 배려.. 감사함은 말하지 않고

무서움과 두려움 때문에 놀라 뾰죡한 내 마음을 들키고 말았으니..

이 후기로 사과드립니다.



지난 번 7문 순회를 할 때 통과했던 중성문을 넘어 하산을 완료한 시간은 해가 넉넉히 남은

저녁 무렵입니다.

말로만 듣던 염초봉..

삼각산의 이름을 짓게 한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올려다 본 이번 산행은

처음으로 걸어본 산길이었습니다.



함께 하신 산우님.. 감사드립니다.

또, 언니라며 믿고 따라와준 다흰님..  어색하지 않은 산행으로 즐거워하니 기뻤습니다.

그리고 바쁜 업무 때문에 산행에 오지 못한 나비님..

산행후에  와 주셔서 반가웠습니다.

함께 한 저녁시간까지 감사합니다.



나는 가끔 내가 생사의 기로에 섰던 찰라의 시간을 기억하며 몸을 떨곤 합니다.

유년시절.. 냇물을 건너다 벗겨진 고무신을 찾으려다 하염없이 떠내려가다가

마을에서 쳐 놓은 게 그물에 걸려 살아났던 일..



초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뺑뺑이를 타다가 떨어진 후유증으로

스피드와 고소공포증이 생겨버린...



서른넘어 고층아파트의 1층에서 15층까지 초고속으로 철컥거리며 올라가다가

정전으로 멈춰버린 깜깜한 승강기 안에서의 죽음에 대한 공포.. 30 여분...

한 줄 와이어에 걸린 15층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손목에  끼어진 단주를 만지는 일...



마흔넘은 어느 날 출근 길..

돌진하는 폭주족의 오토바이에 비명을 질러 준 어느 부인덕에 생명을 부지한  

추운 겨울날 아침..



지난 해 2월초

소백산, 영하 20도의 혹독한 추위에서 연하봉의 일출 후 주목대피소까지 죽음의 유혹을

견뎌낸 산행...



이 모든 기억들은  잊혀진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의 기억장치를

가동시켜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두려움으로 몰아 넣는 원흉입니다.

단 한 번뿐인 상처일지라도 윤회의 굴레처럼 나를 지배하여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만들지 않는 삶이 되기를.. 소원하는 까닭입니다.





*

서울은 하나의 행복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종로나 을지로는 물론 그 어디서도

가각(街角)의 한 모퉁이에서 많은 건물 사이로 북한산이 보이는 행복이 그것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더라도 서울사람이 서울을 떠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서울에서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행복은 그렇다고 감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 삼각 영봉을

바라보며 눈물겨워하기도 한다.



- 고은의 '나의 방랑, 나의 산하'에서 인용합니다.
  • ?
    오 해 봉 2007.02.28 14:39
    혼자하는 산행보다 절친한 여러친지들과 하시는 산행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저는 누구랑 함께다니고 싶어도 나이든 사람들이고
    여의치가 않답니다,
    혼자이기에 지금은 항상 안전산행을 하지요,
    모임이있어 월요일 부천에 갔다가 뜻밖의 소식을듣고 놀랐드랍니다,
    저보다 6살더먹은 절친했던 직장선배 L님이 작년11월 천마산에서
    사망했는데 소지품이 없었기에 경찰에서 지문을 체취해서
    몇일 지나서야 가족들에게 연락이 되었다고 하데요,
    건강했고 심성도고운 분이었는데 몰랐기에 조문도 못한거지요,
    그이야기를 듣고 우리집사람이 혼자서는 절대로 산에가지 말라네요.
  • ?
    쉴만한 물가 2007.03.01 21:39
    이안님의 산행기는 언제나 쉼을 주는 듯 합니다.
    천천히 읽으며 가셨던 길을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저도 오늘 오후 늕은 시간에 두시간 걸려서 산성매표소에서 백운대까지 휭하게 다녀왔습니다.
  • ?
    이안 2007.03.02 15:48
    쉴만한 물가님..
    오랫만입니다. 근황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리며
    좋은 봄맞이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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