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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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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해돋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생애 처음 접한 것이 두어 해 전, 간절곶에서의 체험으로

그때 쓴 글이 “간절곶에서”란 시이다.




     펼쳐진 너른 치맛자락 사이로

     포효하는 해룡의 이빨을 보다.




     금강산 일만이천봉같은 운무가

     시위하듯 병풍 둘러치고




     온 하늘을 수놓은 붉은 빛

     시시각각 스러져눕는 몸부림




     새싹이 움을 돋듯

     아가가 새 이 나듯




     부끄러운 듯 소롯이 얼굴내민

     겸손한 빛의 왕이시여!




     오르라, 떠오르라

     해산하는 어머니, 노른자위여!




어느 님의 지리 천왕에서의 일출에 대한 글을 감동으로 읽고선

산에서의 해돋이를 내심 꿈꾸어 온 터......

그리고 그 감흥을 글로써 남기자란 작은 소망도 있었다.

주변여건이 마땅치 않아서 홀로이 새해 일출산행을 감행키로 작심하고선

산악회의 단체산행에 신청을 하였다.

산선생님격인 知人의 충고대로 결국은 지리 천왕에서

무난하단 태백으로 코스를 겸허히(?) 변경한 채.

이제 겨우 산을 찾은 지  7개월 남짓의 초보인데다

추운겨울... 눈속의 야간산행은 난생 처음인 처지였다.

여기저기 정보를 찾으며 착실히 준비를 하였다.

스패츠, 아이젠, 배낭, 헤드랜턴, 우의, 방한복에 이르기까지......

가장 무게가 나가는 것이 보온병이었다.

산위에서 나눔을 실천하란 조언을 받아들여 넉넉한 용량으로 구입을 하고

산행식등 먹거리를 챙기면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짐을 꾸리는데 슬슬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으니

화장품을 같이 넣어야 하나라는 극히 여자다운(?) 고심과 함께

과연 달리는 차안에서 내가 숙면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여자란 존재는 집을 떠나기 전, 또 출타이후 귀가해서

더더욱 바쁜 게 엄연한 현실이다.

대청소와 함께 주방일, 빨래등 잡다한 가사로 분주히 움직인 이후

느긋한 맘으로 1시간여 단잠을 이루며 미리 몸을 추스렸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집결장소로 나가니 많은 차량들이 도열해 있다.

거의가 지리천왕, 태백산 일출코스이다.

차량을 확인하고 탑승하려니 총무님이 반겨 주시는데

차분하고 단아한 미인형이셨다.

빈 자리가 제법 있어 나는 두 좌석을 느긋이 점령(?)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고!

예정시간을 조금 넘겨 서서히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여(PM10:12)

군위휴게소에 도착하기까지(AM12:10), 차안은 너무도 조용하였고

TV를 통해 재야의 종소리를 접하였다.

소등이 되고 모두가 잠을 청하는 동안 나도 자다깨다 반복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그런대로 편안한 잠을 이룬 것 같다.

목적지 유일사 매표소앞 주차장에 도착한 게 03시 15분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이 이미 빼곡히 주차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차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노라며 식사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여

4시쯤 산행을 시작하란 대장님의 맨트가 있었다.

나도 뜨끈뜨끈한 오뎅 국물로 속을 달래고선 옷을 챙겨입고,

모자를 귀밑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장갑을 속장갑까지 이중으로 꼈으며

마스크까지 완벽하게 갈무리를 하고선 전장에 나가는 군인마냥 늠름히(?)

등산화끈을 졸라 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의 새로운 고심은 바로 이것!...스패츠를 지금 착용해야 하나라는 거였다.

주변분들이 아무도 안했길래 나도 그냥 차에서 내려

보무도 당당히 태백산행의 첫 발을 떼어 놓았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인지라, 우리 팀이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는

아예 파악조차 힘든 가운데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며

렌턴 불빛에 의지하여 한 발 또 한 발, 발걸음을 옮기는데

심한 정체가 일어나 절로 쉬엄쉬엄형이 되는 것이었다.

어느 지점부터인가 눈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의외로 운동화차림이라든지, 아이젠을 준비치않은 경우가 다반사라

오르막 눈길에서 쩔쩔매는 모습들이 안타까왔다.

이어지는 오르막에 금새 숨이 차오르고 등에선 땀이 배어나와

지레 겁을 먹고 이중으로 덧쒸운 모자를 벗어 버리고

마스크도 턱밑으로 내려 버리니 한결 오르기가 수월하였다.

한편으론 이 이른 시간에 고생을 스스로 사서 하는 사람들의 심사를 헤아리며

홀로 허허로이... 밤하늘을 향해 웃었다.


너희가 산을 아느냐??!!





주목군락지라곤 하지만 칠흑같은 어둠에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렌턴 불빛에 의지하여 새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묵묵히 버티고 선

덩치 큰 녀석에게 다가가나 나도 더불어 침묵할 뿐!......

일출 예정시간을 맞추느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누거나 담소를 나누고 또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는 모습들이었다.

그야말로 쉬엄쉬엄 올라갔는데도 최고봉인 장군봉(1,567m)에 도착한 것이

6시 30분이었다.

일출 예정시간이 7시 32분이니 아직도 꼬박 1시간이나 남은 셈이다.

추위와 옅은 눈보라, 그리고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기다릴 일이 꿈만 같았다.

더더욱 황당하고 힘이 든 건 난데없이 졸음이 밀려오는게 아닌가!

아, 눕고 싶어라...곤히 잠들고 싶어라...

준비가 부실한 사람들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완전무장한 나도

발이 약간 시려옴을 느끼며 참자, 기다리자, 조금만 더를

맘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내 옆에는 4가족을 동반한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털귀가리개만 달랑 하고선 목을 허옇게 드러내놓고

또 머리엔 눈을 하얗게 이고 있었다.

어린 두 딸은 발을 동동 구르며 칭얼대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스러웠고

모두가 아이젠도 차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가 보온병의 꿀물을 한 컵 가득 부어 권하며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오셨어요?...추워 보여요--

--녜! 고마워요...인천서 왔어요--

그들은 가족 동반으로 산을 자주 찾는데 겨울산은 처음이라 했다.

몇 해 전, 우리 4가족이 준비를 소홀히 한 채로 겨울 월출산을 찾았다가

추위와 눈보라속에 엄청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미래의 사진작가를 꿈꾼다는 그 젊은 아버지께 부탁하여

나도 처음으로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찰칵 찍었다.

눈만 내놓은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건 뻔하지만

그래도 이 경이로운 대사건(?)을 기록은 남겨야겠기에 말이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운집하여 제발 해가 떠올라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어둠속을 힘들게 오르고, 또 추위와 강풍, 눈보라속에서 인내했건만

태백일출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서히 어둠이 물러나고 주변은 훤히 밝았지만

여전히 짙은 안개와 구름이 기세도 등등하게

자연앞에서 나약하기만한 우리네 인간 군상들을 조롱하듯......

아쉬움을 가슴에 묻은 채 도리없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천제단에 도착하니

“태백산”이란 돌팻말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서는

기념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이다.

나도 겨우겨우 한 판을 찍긴 했지만 과연 글자나 제대로 나올런지 모를 일이다.

문수봉을 거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않을 것 같아

당골 방향으로 바로 하산키로 하고 내려서니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아이젠을 착용치않은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들이다.

난 튼실한 조언자를 둔 덕분에 준비는 완벽하여 별로 고생은 안했지만

화장실이 가장 아쉬웠다.

龍井이란 곳에서 유일히 화장실이 있었는데 너무도 대기자가 많아서

줄 설 엄두가 아예 나질 않았다.

간이 화장실은 어인 일인지 굳게 문이 잠겨있고 그 곁에서 여러 남자분들이

급한 볼 일을 해결하는 모습이 쉬이 눈에 띄었다.

곁에서 걷던 여자분 왈,

--우리 여자들은 저럴때 남자가 참 부럽죠?

   벌써 5시간째 참고 있어요...

   눈속에서 어찌하지도 못하겠고--라며 하소연을 한다.

당골광장 가까운 곳에서도 간이 화장실이 눈에 띄었지만 굳게 문이 잠겨있는 통에

**고원레저스포츠의도시 태백**이란 거창한 표어를 무색케 한다.

2시간여 산행끝에 당골광장에 도착하니 곧 열릴 눈꽃축제준비에 여념이 없고

님맞듯 달려간 화장실앞엔 역시나 동병상련의 동지들이

길게 줄지어 선 낯익은 풍경이었다.





우리 차를 찾아 탑승을 하니 대장님과 총무님이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맞아 주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잠이 들어있다.

출발 시간 11시가 지났지만 유일히 한 분의 남자분이 도착치를 않아

제때에 출발도 못하고 집행부에선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12시가 되면 별 수 없이 출발하리란 맨트가 있고 나서

또다시 초조히 시간이 흐르는데 차안에선 누구 한 사람 역정내는 자 없이

조용하기만 하였다.

산이 언제나 덤덤하듯이...묵묵히 제 자릴 지키듯이!

정확히 12시에 그 남자분은 불쑥 나타났다.

출발 시간을 파악치 못하고 있었던 데서 비롯된 헤프닝이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를 그 분은 연발하고......





다시또 차는 씽씽 달리는데 산행에 지쳤는지 다들 숙면에 빠져있고

나도 단잠에 젖어 들어 얼마간을 지났나 보다.

새삼 또 한 가지를 절감하고 있었으니!

평소 나는 단체관광내지 단체산행은 으례히 차 안이

딩까딩까~~니나노~~ 장단에 몹시도 소란스러운 줄로만 알았었다.

나의 無知와 선입감, 그리고 기우를 철저히(?) 반성하였다.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고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반가왔다.

옆 자리의 두 분 남자들이 소줏잔을 기울이길래 안주하시라며

오징어포를 건넸더니 내게도 한 잔을 권하는 걸

정중히 사양을 하니 캔맥주를 주신다.

맨 앞에 자리한 집행부에도 오징어포를 건넸더니

엄청 순해보이는(?) 대장님이 물으셨다.

--생일이 오월이세요?--

--아, 아뇨...산행을 첨 시작한 게 오월이에요.--

오월의 심오한(?) 그 뜻을 내 어찌 다 아뢸 수 있으리요? ㅋㅎㅋㅎ





결국 2004년의 해돋이는 귀가후 TV속 뉴스에서 접하였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처음 원했던 코스인 지리에서는

장엄하고도 멋진 일출을 감상했다지 않는가!

준비해간 썬크림은 손도 못댄 채 지나쳤는데

거울속의 내 얼굴이 그을은건지...추위에 얼었는지

가을 홍시마냥 붉으레  익었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한 치 앞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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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1.04 11:00
    섬세한 일출 산행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태백산 일출은 그리 되었군요.. 아쉽네요.. 뭐 멋있는 광경 보단 그 시간에 그곳에 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죠? ㅎㅎ 정말 잔잔한 분위기에 한번 흠뻑 빠져봤습니다. 사랑방에도 자주 오시어 글도 올려주시고 하세요 ^^*
  • ?
    해연 2004.01.04 20:10
    솔직담백한 님의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보온병에 꿀물가득 건네주시는 모습을 상상해봤어요. 얼마나 고마웠을까. 저두 올해엔 나눔을 듬뿍 실천해야겠네요.
  • ?
    오 해 봉 2004.01.05 00:44
    소박하고 편안한 산행기입니다.살아1000년 죽어1000년 한다는주목나무 반쪽껍데기만 남은꼬부랑 나무에서도 푸르고 싱싱하게 서있는모습을 보셨지요.저곳에서 어떻게 잎이피고 살아가는가 궁금했으리라 생각도셨지요. 태백산에 갈때마다 한참을서서 바라보곤 한답니다. 새벽추위에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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