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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조회 수 157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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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봉 너머 부터는 소백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발걸음은 국망봉에서 그치고 그 너머는 건너서는 안되는 금지구역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 언제 : 2004. 6. 26
*누구와 : 남편과 나
*어디를 : 구인사~적멸보궁~뒤시랭이문봉~1244봉~민봉~신선봉~늦은맥이제~
              상월봉~국망봉~비로봉 직전~어의곡리(휴식 포함 13시간 산행)


아침 5시.
날씨는 흐리지만 비는 다행히 오지 않는다.
구인사는 몇번 가봤지만 그 규모에 매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5리터 생수통 2개에 식수를 담고 적멸보궁을 향해 오른다.
산에 들 때면 아침을 안먹고 가는 게 편해 오늘도 빈속에 오르는데 마침 아침 공양을
짓는 중인지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배는 고프지 않는데 냄새 때문인지
배에서 꾸루륵 요동을 친다.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적멸보궁을 향해 오른다.

인터넷에서 등산로에 대해 검색을 많이 해봤는데 구인사에서 오르는 산행기를 볼 수가
없다. 지도에는 임도를 따라 계곡으로 오르게 표시가 되어 있지만 "임도"라는 말에
혹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니 딱 하나 우리가 원하던 코스의
산행기를 찾을 수 있었다. 구인사를 통과해서 뒤시랭이문봉으로 치고 오르는 길인
것이다. 지도상에는 표시가 없었지만 그 산행기에 등산로가 뚜렷하다고 되어 있어
믿고 가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두배의 시간이 더 드는 힘든 산행이 되었지만...

적멸보궁까지 올라가는 것도 꽤 힘이 든다. 신자들에게는 신성시 되는 곳이지만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잘 가꿔놓은 묘지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을 지나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봉우리가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매우 심해 몇번의 오르고 내리는 동안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정도 후에 임도를 만나는데 아마 지도상에 표시된 그 길인 것 같다. 임도를 건너면
희미하지만 등산로가 연결이 되어있다.
묘지 한 기가 바로 나오고 얼마 후에 또 한 기가 나온다. 두번째 묘지를 지나면서는
바위지대가 나온다. 이리저리 돌아 바위지대를 한참 가다보니 경사가 점점 더 심해
지면서 앞에 절벽이 가로막고 서있다.
왼쪽에 바위에 튀어나온 부분으로 올라야 하는 지, 오른쪽의 바위를 디디고 올라야
하는 지... 워낙에 바위를 타는 거에 소질도 없고 겁도 많은지라 둘 다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른쪽이 조금 만만해(?) 보이는 것 같다.
남편이 먼저 올라 계속 길이 이어졌는지 확인을 한 후에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왼쪽 발을 홈에 넣고 왼손도 왼편의 바위쯤을
잡았는데 오른발을 디디는 게 문제다. 바위가 경사가 진데다가 바위에 틈이 안보여
경사진 바위에 발을 딛고 순간적으로 올라야 하는 데, 바위가 넓어 힘을 받기가 힘들고
자칫 미끄러지면 밑으로 떨어져 꽤 큰 부상을 당할 것만 같았다.
순간 공포감이 엄습한다.(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도 손에 땀이...^^;)
그때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왼손과 왼발은 잡고, 디디고... 오른발은 경사 바위에
엉거주춤하게, 그리고 오른손은 남편의 손을 잡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런 자세로 몇분을 있다가는 힘이 빠질 것 같아 몇번 심호흡을 한 후 왼발을 뗘서
바위에 무릎을 대고 겨우 오른손으로 위쪽의 바위를 잡고 올랐다. 후휴~~
남들은 별 어려움 없이 가는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지금것 이렇게 무서움을 느끼며
산을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몇번의 바위지대를 지나니 뒤시랭이문봉이다.
잠시 간식으로 가져간 사과를 먹으며 심신을 안정시킨 후 떠난다.
1244봉으로 한참을 가다보니 앞에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지만 오른쪽으로 조금 가보면
계속 나아가는 길이 있고, 처음으로 표지판을 만나게 되는데 임도를 따라 계곡으로
올라오는 길이 여기서 만나게 된다.
그나마 표지판을 만난 것이 반가워 기운을 차리고 민봉으로 향한다.

10시 30분.
구인사에서 떠난 지 5시간이 넘어 민봉에 도착한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수없이 많은 급경사의 오르내림길을 지난 것이며, 한사람 겨우 지날 수 있는 산길이
그나마 수풀이라도 우거져 있어 헤치고 나오자면 이름모를 벌레들이 머리와 옷과
배낭에 함께 묻어나고, 바닥에는 혹시 뱀이나 나오지 않나 두리번, 스틱으로는 연신
거미줄을 헤치고...
그 모든 어려움을 민봉에서 보상받으리라 했건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봉팔문도.. 소백 능선도... 아무것도...없다...
너무나 허탈했지만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니 다행이지 않나 위로를 한다.
비가왔더라면 절대 그 길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고 힘은 빠지고...
이곳에서 늦은맥이제까지가 제일 힘들었다. 시야라도 트였으면 답답함이라도 덜 수
있으련만... 아무리 가도 그 길이 그 길이고, 마치 같은 장소를 뺑뺑 도는 느낌이었다.
늦은맥이제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컨디션이 말이 아니어서 탈출로를 찾고 있었다.
지도에 보니 어의곡리로 떨어지는 등산로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관리사무소에
전화로 물어보니 그곳은 왕래가 거의 없어 폐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럼 결국 원래의 예정대로 비로봉 까지 가야 한다.

백두대간으로 갈라지는 늦은맥이제.
누군가 이정표를 바닥에 팽개쳐 놓았다. 이렇게 이정표를 바닥에 팽개쳐 놓은 곳이
몇군데 더 나온다. 왜그랬을까...
이제 도저히 더 걸을 기운이 없다.
아무곳이나 판초를 깔고 앉는다.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이니 밥이나 먹어야지.
하지만 심신이 피곤하고 불안정한 상태여서인지 밥맛도 없다.
그래도 천천히 먹다보니 먹어지네... 그리고 다 먹을때쯤에는 마음도 많이 가라앉고
기운이 조금 난다. 모든게 마음먹기 나름인가 보다. 날씨도 꾸물거리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나무에 매달린 표시리본들을 보며
누군가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었지 하는 생각을 하면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고, 내 동행자는 항상 침착하게 어려울 때 마다 나를
이끌어주지 않던가. 나혼자 오를 수 없을 때 손도 잡아주고,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할 때 발도 빌려주어 그 발을 밟고 가지 않았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있자니 사람소리가 들린다.
우왕! 이거 분명 사람소리지?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우리앞을 지나간다.
무려 8명씩이나! 대간을 타는 사람들인 것이다.

도시락을 먹고 일어서 상월봉으로 향한다.
언제쯤 이 답답한 숲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30여분이 지났을까 약간 힘들게 바위지대를 돌아 오르니 여기가 상월봉인가 보다.
날씨가 좋았으면 국망봉 쪽으로 멋지게 펼쳐져 있을 초원을 볼 수 있을텐데...
그래도 어슴푸레하게나마 능선길이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신 난 다!!

여기서부터 국망봉 까지의 짧은 시간이 오늘 산행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갑자기 힘이 솟고 기분도 업!
지금까지의 고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가스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금만 하늘이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망봉 지나 초암사 갈림길 까지 만난 사람 9명.
국망봉에서 비로봉 까지 생각보다 많은 굴곡을 힘겹게 지나 비로봉 직전 안부에 다다른다.
가스층은 더욱 두꺼워져 바로 지천의 비로봉은 물론이고 비로봉 오르는 나무계단
끝부분만이 보일 뿐이다. 햇살이 비춰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기다려 볼까 했지만 버스 시간을 놓칠 것 같아,(힘도 들고) 그냥 하산하기로 한다.

어의곡리로 내려오는 길은 아주 편하고 정비도 잘 되어 있어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밑으로 내려올 수록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더니 점점 뜨거워진다.

주차장에 이르니 5시 45분.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에 구름이 둥실... 아 쉽 다...
6시 20분 차를 타고 중간에 내려 다시 구인사 가는 버스에 오른다.

재미없는 산행기 끝까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
    진로 2004.06.28 10:37
    정돈된 초암사가 기억나는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그 길 함 오르려 합니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갈 수있겠군요.
  • ?
    허허바다 2004.06.30 14:03
    생소한 길은 여유를 가질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심적인 압박이 큰 것 같습니다.
    든든한 보호자(?)에 대한 은근한 자랑에 그냥 흐뭇해집니다 ^^*
    좋으셨겠습니다~~~ ㅎㅎㅎ
  • ?
    산유화 2004.07.05 14:09
    용희님 남편분과 함께 한 소백산행 너무 부럽네요.
    홀로 산행, 끼니 때만 되면 옆 사람 생각 많이 납니다.
    다른건 몰라도 먹는건 열심히 챙겨 주는 편이라.ㅋ
    소백산 함께 가보자 말 나온지가 벌써 언제인지...^^
    여름 휴가가 기다려 지네요.
  • ?
    솔메 2004.07.06 09:26
    워메 ! 부러운거~
  • ?
    박용희 2004.07.06 17:43
    산유화님, 하나도 부러울 거 없어요~
    산에서만 그렇고 배낭 꾸리는 거 하며, 식사 준비, 등등..
    다른 모든 거는 제가 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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