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조회 수 1724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수가 지났는데도 한겨울을 능가하는 강추위는 먼 길을 나서는 나그네를 주춤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게다가 일기예보를 통해서 들려오는 태백산의 눈 소식은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이미 한 달 전에 예약된 태백행 주말열차는 애초부터 그런 자연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태백산이라는 상징성과 누구나 한번쯤은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야간열차라는 추억의 낭만성, 그리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산우들이 있기에 산을 약속하기 이전부터도 우리의 마음은 그곳에 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태백으로 가는 길은 함께한 산우들의 잠시도 그칠줄 모르는 즐거움의 향연으로 새벽녘 찬기운처럼 아쉬움 속에 도착하고, 우리마음을 알리 없는 열차는 무심한 어둠속에 기적을 울리며 북상한다.



태백선 열차

태백에 내린 새벽, 강추위에 당초 계획했던 새벽길 산책은 유아무야 사라지고, 그래도 사람온기라도 살아있는 역 구내에서 시간을 때우다 유일사로 향한다.

영하 16°, 살을 에는 듯한 살인적인 강추위가 새벽하늘을 서성이는데도 밀려드는 관광객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가고, 역에서 미쳐 산행을 준비를 마치지 못하여 총총거리는 일행에게 매서운 칼바람이 갈 길을 재촉한다.

눈은 한길이나 쌓여있지만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발길로 단단하게 다져져 있고, 너·나를 구분할 필요가 없이 재편이 된 행렬은 속도를 낼 요량도 없이 한데 섞여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오른다.
워낙 강한 추위로 중무장을 한 탓에 발아래서 들리는 눈 밟는 소리가 이 새벽의 유일한 친구이자 말동무요, 하얗게 질린 가로등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유일한 길동무다.

하늘엔 아직 금성이 반짝거리고 얼마남지 않은 신새벽을 아쉬워하는 별들이 여린 빛으로 우리를 쓰다듬는다.

주능에 붙으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으려 하지만 정상에 일찍 도착해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예서 쉬는 게 낫겠다 싶어 오르는 속도를 조절한다.

날등이 가까워지면서  관목은 난쟁이 키로 바뀌고, 서서히 여명이 터지면서 주위 사물이 또렷해지니 비로소 새로운 은세계가 우리를 반겨준다. 그런데도 이러한 풍광에서 더욱 신비한 것은 그 관목들 사이에 불쑥불쑥 솟은 주목이다.



태백산의 주목

살아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저 붉은 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지가 여럿 있지만 이곳에서 유독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저 죽은 가지가 죽어 천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아버지의 나무, 또 그 위의 할아버지 나무는 단군할아버지가 태어났을 때와 같지 않았을까?.

환웅이 인간세계를 내려올 때 그 맥을 이어준 신단수神檀樹가 오늘날 아무리 뛰어난 학자가 박달나무라  증명했다 할지라도 난 오늘 그 매개체의 주인공을 이 곳 산정을 차지하고 있는 붉은 나무 주목으로 정하고 싶다.

붉음이란 무엇인가? 태초에 지구는 흰색이었다. 인간이 자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도 우리에게 한정지어진 색은 흰색이었다.

그러나 붉음은 무엇인가? 태초의 붉음은 태양이요 그 태양이 있는 하늘이었다. 따라서 그 하늘에 존재하는 상재와 같은 색깔이었다. 하물며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도 붉음이란 임금이나 황실의 자리에서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그런데 그 붉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나무라면 그것이 곧 하늘과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아니었을까? 아니면 하늘이 지상의 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저 나무에게만 붉은색을 입혀 그런 임무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동쪽하늘은 붉으스레한 여명이 밝아 오지만 오늘 일출의 시간을 알기에 서두를 일은 없다.

이 상황에서도 저 나무를 소복하게 장식한 설화는 마냥 곱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조화가 아니라 자연이, 아니 신의 숨결이 만들어낸 조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곳이 태백의 준령이라면, 그래서 오늘같이 바람이 거세게 불고 분설이 일어 여명속의 하늘과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 날이라면 주위엔 태초에 처음 인간 땅에 강림하여 상재를 맞이하는 그때처럼 신성한 기운이 가득하니 더더욱 신비할 따름이다.

천제단에 이르러 해를 기다린다.

태초의 신이 만들어 내었던 그 모습과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은 그 빛을 기다린다.




태백산 일출


여명의 붉은 비단을 깔아 준비를 마치고 한걸음 한걸음 장중하게 솟아오르는 저 빛은 하늘님 환인이 태초에 인간세계에 내려주던 생명의 원천과 같이 신비하고, 그 붉음의 형상이 하나임을 상징하는 원으로 완성되면서 온 대지에 산란하면 비로소 인간세계에 찬란한 광명이 깃들게 된다. 마치 환웅이 이 땅에 내려와 우리 인간세계와 조우했던 그 시간처럼......

어디에서 이런 기운을 느껴본 단 말인가? 어디에서 이런 축복을 받아 본단 말인가? 난 왜 이런 신성함을 잊고 살았단 말인가? 난 도데체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자랐단 말인가? 우린 왜 아직도 싸우고 있단 말인가?

내 마음속엔 벅찬 감동이 북받쳐 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힌다. 아니 정체성을 잃은 부끄러움에 사죄의 눈물이 떨어진다.

지금 찬 기운은 우리의 흐트러진 정신을 일깨우는 청량한 새 기운이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은세계는 모든 허물을 벗어던지라는 새로운 멧세지이다.

이제는 저 찬란한 빛에 부끄러운 내 몸을 씻고, 저 청량한 기운으로 허기진 정신을 채워 나를 다시 만나자. 그리고 저 빛에 서린 신성한 영혼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저 은백의 메시지로 재무장하여 세상에 외쳐보자. 소리쳐 외쳐보자.

“난 배달민족이다.”


한배검의 땅 태백산은 유구하다.


- 구름모자 -

  • ?
    허허바다 2005.03.02 23:01
    숙연해지는 산행기입니다...
  • ?
    하해 2005.03.04 02:09
    일출에 깃든 신성이 느껴집니다.
    산행속에서도 다양한 사유를 담아내는 특유의 필치로 읽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곳은 . . moveon 2003.05.23 4360
202 어떨결 지리당일종주 이후 설악공룡능선을[7. 3(토)] 4 file 라기 2004.07.04 1733
201 공동경비구역(JSA) / 설악산 4 疊疊山中 2004.07.07 1724
200 카투만두 이야기 11 길없는여행 2004.07.22 1726
199 백두산 차일봉 1. 16 오 해 봉 2004.08.04 2353
198 백두산 차일봉 2 16 오 해 봉 2004.08.05 2420
197 1박2일 남덕유~북덕유산까지....둘 3 루시아 2004.08.06 1664
196 빛고을 무등산 추억 8 허허바다 2004.08.10 1705
195 [re] 빛고을 무등산 추억... 8 해연 2004.08.11 1631
194 쓰구냥 산행기 - 제1일 5 김수훈 2004.08.16 2043
193 쓰구냥 산행기 - 제 2일 8 김수훈 2004.08.17 1631
192 쓰구냥 산행기 - 제3일 6 김수훈 2004.08.17 1776
191 쓰구냥 산행기 - 제4일 9 김수훈 2004.08.18 1860
190 쓰구냥 산행기 - 후기 10 김수훈 2004.08.18 1688
189 사진이 있는...쓰잘데기없이 말만 많은 북한산 산행기 5 코부리 2004.08.30 1698
188 후지산 산행기 12 오 해 봉 2004.08.30 2865
187 백두산 참배기 7 file 김현거사 2004.09.02 1642
186 백두산 참배기 7 file 김현거사 2004.09.03 1587
185 아~백두산 ! 1 섬호정 2004.09.12 1321
184 우중 산행기-치악산 비로봉 당일산행 2 코부리 2004.09.13 2138
183 소백산 하늘엔 구멍이 뚫렸나.. 2 정해성 2004.09.17 154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8 Next
/ 1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