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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주변산행기

2004.03.19 14:40

산은 리허설 중

조회 수 137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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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리허설 중 (산행시)

                     글. 강희창

경칩이 지난 3월 중순, 휴일 아침에 아들을 데리고 야트막한 불곡산을 오릅니다
얼핏보면 겨울산 같지만 이미 봄은 산과 산을 밟으며 성큼성큼 오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숨이 차오르네요.
그루터기에 앉아 쉬며 나무에게 묻습니다. 겨우내 어떻게 지냈느냐고,
까칠한 피부에 싹을 틔우느라 피멍이 든 현사시나무는 지금 한참 바쁘니
하던 산행이나 하라는 듯 말이 없네요. 조금더 올라서서
산수유 꽃망울이 살짝 벌었기에 코를 댔더니 전혀 딴청입니다
마치 공연장에서 보자고 하는 분장실의 인기 배우처럼 말이죠
굴참나무는 제일로 게으릅니다. 작년 의상을 아직도 반쯤 걸치고
반은 바닥에 깔고 늑장을 부립니다. 하지만 겨드랑이 사이로 한풍 대신
훈풍이 간지럼치니 지가 견딜 수가 있을까요? 곧 호들갑을 떨겠죠
지나간 옛 것은 자리를 내어주고 새 것을 위해 길을 예비해줍니다
오래된 나뭇잎은 아래로 내려가서 새 잎을 밀어올려 키워줍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에게 말이 많아집니다
죽은 나무와 죽지 않은 나무에 대해서,
또 쓰러진 나무와 꼿꼿이 서있는 나무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기어이 아들한테 운동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막하 나무들은 모두 리허설 중입니다. 공연 날짜를 받아 놨으니까요
산 새들도 군 제대특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목소리가 들떠있습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쯤 더 오르니, 가까이 정상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꽤 많네요
별 관심거리가 없다 싶었는데 한적한 곳에, 고무다라에 막걸리 그득 담아놓고  
파는 아저씨가 빤히 보입니다. 슬그머니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나서
뒤에 쳐졌다가, 툭툭 노리끼리한 좁쌀 막걸리 한사발을 후딱 찌끄립니다
마늘종 안주를 먹으려는데 이내 아들놈이 눈치채고 뜯어말리러 달려옵니다
이미 늦었지요. " 야 무슨 맛인가 쪼끔 얻어먹었다, 인마 "
아들이 짧게 한마디 충고 합니다. " 술보고 못 참으면 그거 중독이래요"
단숨에 정상입니다. 팔만 쳐들면 슬쩍 날아오를 것처럼 몸이 가벼워집니다
가슴 한복판에 화롯불을 담은 듯 기운이 위로 위로 밀려 올라오네요
아마 나무들도 지금 이런 기분이겠지요.
잠깐 비라도 온다면 물 한 모금 마신 나무들이 한층 힘을 낼 텐데.....
아무튼, 이번 공연은 어느해 보다도 한층 더 기대가 됩니다
높아만 보이는 도시로 다시 내려오며 마음 속에 공연 티켓을 예매합니다
아들도 세시간 남짓한 봄 산행에 만족스러워 하고요.
내가 그 동안 준비해온 일도 아주 잘 될 것 같습니다.


                                              ( 2004. 3. 14 )



* 불곡산 : 분당 신도시 뒷산, 속칭 불정산 이라고도 함
* 그림 : NATE 이미지 검색후 편집 ( 홈 www.qqpp.com )


* 음악-속삭이는 바람
  • ?
    허허바다 2004.03.23 20:06
    저도 그 공연 티켓 방금 예매하였습니다. 같이 갈 사람들도 구했습니다. 4월 연휴 사람들 북적대도 가야지요. 당연히 좋은 공연엔 사람들 많겠지요. 그렇다고 그 아름다운 공연 아니 볼 순 없지요. 이렇게 아름답고 아름다운 산행시, 한 구절 한구절 보석 같은 산행시를 아니 읽을 도리 없듯이 말입니다...
  • ?
    섬호정 2004.08.04 21:21
    나무도 곧게 크기에 대한 의지가 좌절되어 쓰러져 버리나 봅니다
    인생고갯길에 허덕이다 쓰러진 사람처럼,..
    게으른 굴참나무 작년옷 못 벗어 반쯤 걸치고도 겨드랑 간지러움 못견뎌 팔 벌리고 움을 틔운 모습 , 어쩜 쉰둥이 하나 낳으려는 몸짓 푸는 듯 한 느낌이 듭니다 호 ㅎㅎ (여름에 읽어도 그 햇봄 기분에 잠기네요)
    음악도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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