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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비를 흠뻑 맞은 대지에서 갑자기 생기가 느껴진다. 언 땅이 풀리면서 나무들도 기지개를 펴는 듯하다. 새 잎사귀들을 만들려고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이 수액이 되어 물관을 타고 가지끝으로 내달린다. 신록에 훨씬 앞서 나뭇가지 색깔의 미묘한 변화가 봄을 알린다.
하지만 점점 많은 이들이 봄 기운을 혀로 느끼려 한다. 남도에서는 고로쇠나무 물 채취가 한창이다. 경남 거제를 비롯해 지리산과 전남 광양 백운산의 고로쇠나무들은 마치 링거 주사를 맞는 것처럼 저마다 두른 기다란 고무관을 통해 수액을 흘려보내고 있다. 들척지근한 맛이지만 몸에 좋다는 풍문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비싼 돈을 치르며 고로쇠물을 마신다. 농민과 지방자치단체는 고로쇠 축제를 여는 등 반가운 새 소득원을 늘리려 안간힘이다.

수액 채취를 둘러싼 논쟁도 해마다 격화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나무에게 꼭 필요한 수액일진대 살아있는 곰한테서 쓸개즙을 받아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하지만 농민들은 나무에 별다른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갈수록 힘겨운 농촌살림에 보탬이 되는 소득원을 막으려 한다며 야속해한다. 마침내 지난해에는 환경단체인 국립공원시민연대가 환경부 장관과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올 들어 공단 쪽이 지리산 등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 안에서 관행으로 허용하던 고로쇠 수액 채취를 전면 금지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한겨레> 2월3일치 지역면 참조) 비단 고로쇠뿐 아니라 자연의 이용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고로쇠, 나아가 자연은 과연 어느 정도로,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옳은가.

한 가지 흥미로운 통찰을 지난주 서울대 환경대학원이 연 전통생태 세미나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정치영 박사는 지리산 비탈에 자리잡은 계단식 논의 기능과 가치를 발표했다. 18세기 이후 산속으로 겨온 가난한 농민들은 돌투성이의 가파른 비탈을 개간해 논으로 만들었다. 걷어낸 돌로 논둑을 쌓고 물이 쉬 빠져나가지 않도록 점토나 흙을 퍼날라 다졌다. 모든 일이 사람 손으로 이뤄졌다. 한 명이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해야 한 평 남짓의 논을 개간할 수 있었다. 손바닥만한 땅도 논으로 일궜다. 그런 논은 삿갓 하나로 논 한 배미를 다 덮을 수 있다고 해서 ‘삿갓다랑이’, 또는 죽이나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다 해서 ‘죽배미’나 ‘밥배미’라고 불린다.

이렇게 수백년 동안의 눈물겨운 노동으로 이룩한 계단식 논은 여러 가치를 지닌다. 토양침식을 막고 물을 머금어 홍수를 줄이며, 산속에 습지를 조성해 생물 다양성을 높인다. 다랑이 논은 소중한 문화유산일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새로운 자연이다. 정 박사는 이런 계단식 논이 버려져 황폐화하고 있는 것이 최근 잇따른 지리산 홍수피해의 한 원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리산 다랑이논은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연에 미치면 자연이 풍성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고로쇠 수액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수액을 채취하는 행위 자체보다는 그 방법과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고로쇠 채취는 계절의 별미이자 특정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산촌 주민들은 오랜 경험으로 고로쇠나무에 해를 주지 않고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요즘처럼 건강을 일거에 되찾거나 목돈을 만지기 위해 전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수액을 받아내지는 않았다.

자연이 지탱할 만큼만 이용하려면 자연을 잘 알아야 한다. 이때 전문가들의 과학적 지식이 만능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섣부른 자연이용에 ‘환경 친화적’이란 면죄부를 주는 데 이용되곤 한다. 그런 점에선 자연을 오랜 세월 이용하며 살아온 주민들의 토착지식이 나을 수 있다. 미국 요세미테 국립공원은 1890년 지정됐다. 그곳의 명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나이 많은 나무의 하나인 자이언트 세쿼이어이지만, 이 나무의 번식을 위해선 산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1964년에야 밝혀졌다. 토착 원주민은 국립공원이 들어서기 전부터 알던 사실이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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