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보았던 얼어 있는 불일 폭포 하단에서 . . .
산에 오를때에는 가능한한 모든것에 대한 다이어트가 필수 였습니다.
뭐든지 가볍게 ,
뭐든지 적게
뭐든지 뭐든지 뭐든지.. . . 최소의 형태로. . .
소리까지. .말입니다.
그러다,
어떤 극적인 경험으로 인해, 조용한 코스를 갈때에는 오히려 자연의 소리를
방해할 수 있는 카셋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답니다.
부득히 골 깊은 지리산의 속내를 찾을 때 만 특히 말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의 긴장이 가끔 사람을 혼을 빼놓기도 하기 때문
입니다.
1. 국골에서
국골로 해서 천왕봉을 오를때 입니다.
초입부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은 거미줄이 어쩌면 그리도 많았던지 길 오르기
보다 거미줄 걷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드는 순간 어디선가 없어도 될 소리가 들려와서 멈칫 반사적
으로 고개를 돌렸을때. .
남자 한사람이 움막 안의 여자를 제지하고 혼자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다리에 힘이 저절로 빠졌습니다.
반가움의 기운이 아니라 배척하는 기운을 역력히 그 눈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미움을 받는 그 모호한 느낌이 으슥한 숲길에서 느껴지는 것은 공포
같은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웠습니다.
들리는 소리가 이제는 바람 한 자락까지 가슴을 누르고 , 늦가을 황량한 바스락
거림은 괴기 스럽기 까지 했답니다.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밀려 왔습니다.
그 때 생각해낸 것이 카셋 플레이어 였는데 정상에서 잠을 청할때 불면을 해소
하려고 수면제 대신 지녔던 것입니다.
제가 들은 음악이" 슈베르트"의 가곡들이었습니다.
"캐서린 배틀"이라는 가수의 고운 소프라노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
사람의 소리, 인공의 소리가 자연의 소리 보다 더 사람을 안정 시키는 효과가 있다
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슴에 시냇물이 흐르고,
주변이 다시 초록으로 물드는 듯 하는 착각으로 내내 그 길이 평화로웠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푸욱 푸욱 빠지는 낙엽길도 ,
먼지 내음까지 모두모두 나를 감싸는 도시의 어느 공기 같아 졌으니까요.
아마 트로트 였다면 신이나서 걸음이 더 빨라 졌을 까요?[웃음]
2.장터목의 태풍을 잠재우다.
태풍 커--크라는 거대한 괴물이 지리산을 온통 그 영향권안에 몰아 넣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가능하면 오르지 말라는 경고를 하면
서도 무슨 일에선지 입산을 허락 했었습니다.
장터목 산장이 새로 지어진다는 소문이 있고 그 진행이 이루어지기 위해 여러
가지 자재들이 준비되는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텐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미 세석쪽에서도 오는 사람이 없었고, 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상태 였습
니다.
곧 들이 닥칠 태풍 때문에 모든 움직임이 통제된 상태였으니까요.
"태풍전야" 그 표현의 절묘함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너무나 고요해서 숨소리가 몹시 클 정도였으니까요.
그 나른함에 사람들은 오히려 질식 할듯이 보이더군요.
"차라리 불어닥쳐라. 뭐든지 . . 그게 낫겠다." 하는 표정들로 모두 굳어있었
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심 때 즈음이 되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대피소쪽 스피커에서 산을 뒤흔드는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후다닥 텐트 밖으로, 혹은 대피소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 길고 숨막히는 고요를 깬 것은 파가니니의 바이얼린 곡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곡은 바이얼린곡 중에서도 어려운 기교로 인해 곡 자체가 몹시
난해하면 서도 파장과 굴곡이 심한 곡입니다.
저는 박장 대소 하였지요.
귀에 익은 그 음악이 실수로 틀어 놓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음악을 틀어
놓은 사람의 재치를 담박에 알았으니까요.
가슴의 체증이 확내려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라는 것이 얼마나 극적이었던지 조용하던 장터목은 순식간에
활기가 살아 났습니다.
쫒아가서 혹시 실수로 그런 것은 아닌지 물어 보았습니다.
대피소 주인 왈
"누군가 버리고 간 테잎이 있어서 한번 틀어 보았어요. 무슨 음악인지도 궁금하고
지루한 기분에 죽을 것 같아서. . . "
성능이 아주 좋은 오디오로 들어도 몹시 껄끄러운 소리의 그 음악이 성능 최하위
의 "알림방송용"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는데도 그 음악은 이 세상 최고의 연주장소
에서 최고의 솜씨로 연주되던 최고의 음악 이 되었었습니다.
그 이후로 '커크'는 힘을 잃은 상태로 흐지부지 흘러갔고, 장터목은 공연이 끝난
무대 처럼 술렁이면서 불규칙적이고 자연스러운 술렁임으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산장지기의 재치,
그리고 절묘한 시간의 음악소리.
태풍을 잠재운 인간의 능력[?]
정말 특이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3.불일 산장의 베에토벤
겨울 불일 폭포를 향해 가다가 보면 반드시 국사암을 들립니다.
돌 계단 주변에 눈을 포근히 맞고 서있는 작은 부처님들이 유난히 앙증 스러웠던 기억이
나는 군요. 부지런하지 않아도 되는 산책 [?]길이라서 여유를 갖고 오릅니다.
불일 산장은 너무 조용해서 따근한 차 한잔을 주문하려고 해도 오히려 미안해서 멈칫
거리고 있어야 할 정도 였습니다.
그 조용함 아시죠?
지리산의겨울. . .
사람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가 하는 조바심이 생길 때였습니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었어요.
너무나 익숙해서
" 내가 기억속의 음악을 듣는 것일까? 이곳 분위기가 그 음악을 연상케 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하!!!
그게 아니라 변규화님이 사람의기척을 느끼고 흘려 보내 주시는 거 였습니다.
"전원 교향곡" 이었습니다.
차 마시면서 내내 들었던 그 음악 덕분에 꽁공 얼은 불일 폭포로 가는 나머지 길이
매우 달랐습니다.
자연의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일까요?
침묵의 소리가 멋진 말이긴 합니다만. . .저는 가끔 지리산의 세석이나, 노고단의
너른 들판에서는 가까이 다가서는 천상의 공기와 함께 絃의 화려한 펼침이 있는
음악을 듣기도 한답니다. 뭐 할 수 없지요. . . 문명사회의 일원인게 아직은 확실
하니 말입니다.[웃음]
아!!물론 이어폰을 꽂고 듣습니다. 다른사람들에게 방해 되지 않게. .
曲:Pastorale
자연의 소리만 있어야 좋은 것은 아닐 겁니다. 그 분위기에 맞춰서 조화로운 음악을 만드는 게 사람의 몫인 거 같네요. 가끔은 산길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자연과 어울리는 한 방법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