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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진원의 지리산이야기

정진원 프로필 [moveon 프로필]
이야기
2006.11.17 14:24

나무위의 남작

조회 수 163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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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세계*
이제 우리 고장도 다른 지방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프랑스인들이 내려 왔을 때 숲의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마치 매년
낫으로 베어주면 또 자라나는 목초지의 풀이라도 되는 양 나무를 베었다.
나무들은 자라나지 않았다.

그 때는 어디를 가든 언제나 우리와 하늘 사이에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있었다.
유일하게 키 작은 식물들이 자라던 곳이 레몬나무 과수원 이었지만 그 한가운데
에도 무거운 잎으로 둥근 지붕을 만들어 산 쪽을 향해 펼쳐진 레몬 나무 과수원의
하늘을 모두 덮어 버리는 뒤틀린 무화과나무가 서 있었고,무화과나무가 없는 곳
에는 갈색 이파리를 가진 벚나무나 아주 부드러운 마르멜로나무,  복숭아 나무 ,
아몬드 나무, 어린 배나무, 커다란 자두나무 ,그리고 뽕나무나 마디가 많은 호두
나무가  있었으며 이런나무가 없는 곳에는 마가목나무와 쥐엄나무가 있었다.
과수원이 끝나는 곳에서 은회색의 올리브 밭이 시작되었고,구름은 산 중턱에 걸려
있었다.
올리브 밭 위쪽으로는 숲이 시작되었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아직도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예전엔 우리 고장 어디에서나 소나무가 자랐던 게 틀림
없는데 이는 낙엽송도 마찬가지였다. 떡갈나무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자주 눈에
띄었고 울창했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가치 있는 희생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옴부로사는 수액의 세계였지만 그 안에 사는 우리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최초의 전투*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채 생전 처음 승리한 사람 그리고 이제 승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 사람,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 갈 수 밖에
없으며 실패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도피처를 자신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 사람의
절망에 사로잡혀 나뭇가지와 단검과 고양이의 시체를 꽉 붙들고 있었다.
긴장감 할퀸 상처의 아픔, 자기 모험을 자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절망 등의 감정이 코지모 형의 내부에 모두 함께 쌓였다.
형은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 울음 속에는 절규와 흐느낌과 잔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괴리*
형의 세상은 이제 좁고 구불구불하게 허공에 놓인 다리들, 나무 마디나 껍질들,
이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유충들, 꽃자루를 흔드는 약한 바람에 떨리거나 나무 전체
가 바람 앞의 돛처럼 휘어 질 때 같이 흔들리는 울창하거나 성근 나뭇잎들,그리고
그 나뭇잎의 초록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햇빛으로 이루어 졌다.
반면 그 밑에 있는 우리들의 세상은 평평했으며 우리는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이 나무 위에서 알게 된 것들과 나무가 몸통 내부에 나이테를 나타내는 원을
만들기 위해 세포조직을 응축시키는 소리, 곰팡이가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함께 실려온 먼지와 섞여 점점 커지는 소리, 둥지 안에서 잠자던 새들이 몸을 떨며
제일 부드러운 날갯죽지에 머리를 쑤셔 넣는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나비 유충이
깨어나는 소리와 때까지 알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밤을 보내는 형에 관해
우리는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나무위의 삶*
형은 가지 치는 법을 배웠다.
겨울이 되어 뒤엉킨 미궁처럼 뻗은 가지들을 좀 정리해서꽃과 나뭇잎과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과일나무를 키우는 농부들을 도왔다. 코지모형은 가지
치기를 썩 잘했고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다.그래서 소작농이나 소지주들은 모두
형에게 자기 집에 들러 달라고 청했다.그러고 나면 수정처럼 맑은 아침에 나뭇잎
이 다 딸어져 버린 키 작은 나뭇가지에서 목도리를 둘러 귀가지 감싼 채 다리를
벌리고 서서 큰 가위를 들어 싹둑싹둑 정확한 가위질로 쓸모없고 날카로운 가지를
잘라내고 있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소년 피오바스코 디 론도는 그렇게 해서 이웃과 자기 자신의 품위를 지키면서
문명화된 생활을 했다.

사람들은 형을 존경했고 그를 '남작나리"라고 불렀다. 그러면 형은 가끔씩 젊은이
들이 흉내내고 싶어하는 노인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거기 멈춰 서서 나무밑에
무리를 지어 모여든 옴브로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랑*
그녀에게 사랑이란 영웅적인 운동이었다.
그 쾌감속에는 대담함, 관대함,몰두 ,팽팽하게 긴장된 정신력, 이 모든 것을 시험
하려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복잡하게 얽히고 비틀려 통과 할 수 없는 나무들은
비올라와 형의 세계였다......그리고 그녀의 모든 불만과 변덕은, 금방 절정에 도달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서서히 절정에 이를 때까지 키워 나가려는 만족할
줄 모르는 강한 갈망일 뿐이었다. 형은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떠나는 순간까지 그녀를 괴롭혔던 것이었다.

*계몽주의적인 이성을 높이 평가 하는 코지모는 사랑에 있어서도 항상 감정보다는
이성을 우위에 둔다, 이 때문에 바로크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충동을 지닌 첫 사랑
비올라와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삶과 죽음의 실체*
땅위에서 젊음은 아주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니 나뭇잎이나 열매처럼 모든 것이 떨어질 운명을 타고난 나무위에서는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라,
코지모 형은 늙었다.
오랫동안 쓰러져 가는 허름한 피난처 하나 없이 주위에 아무것도 없고 공기에 둘러
싸여 집도 불도 따뜻한 음식도 없이 추위와 바람과 비 속에서 밤을 보낸 결과 였다.
휜 다리에 원숭이 처럼 긴 팔, 꼽추처럼 굽은 등, 신부복처럼 모자가 달린 털가죽
망토를 뒤집어 쓴 코지모 형은 이미 수족을 제대로움직일 수 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었고 밤송이 처럼 자글자글했는데 주름진 얼굴 사이로 맑고 둥근
눈이 빛났다.

*떠남*
코지모 형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남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나무 끝이 흔들렸고 우리는 준비했다. 그 때 하늘에서
氣球가 나타났다.영국인 비행사 몇명이 기구를 타고 해안에서 시험 비행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기구가 서쪽에서 불어오는 돌풍에 휘말렸다. 긴줄에 매달린 은색의 닻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했고 비스듬히 날아가는 기구를 따라 광장 위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호두나무 꼭대기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지나가고 있어서 우리는 그 닻이 코지모 형을
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그런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죽어가던 코지모 형이 자기 옆으로 닻이 달린 밧줄이 지나는 바로 그 순간 젊었을
때처럼 펄쩍 뛰어올라 끈을 붙잡고 두 발로 닻을 밟으면서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까스로 기구의 진행을 늦추면서 바람에 끌려 날아가고 있는
형의 모습과 바다 쪽으로  사라져 가는 형을 보았다.


코지모 형은 그렇게 사라졌고 죽어서 땅으로 돌아오는 그를 지켜보는 기쁨 마저도
우리에게 남겨 주지 않았다.
가족묘지에는 그를 기억하는 이런 비문이 적힌 비석밖에 없다.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나무 위에서 살았고 --땅을 사랑했으며 하늘로
  올라 갔노라."

형은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냉혹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 코지모 디 론도는 열두 살이 되던 1767년 6월 15일에 나무로 올라가
일생을 그 위에서 살기로 결정 한다. 코지모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는 누나가
만든 달팽이 요리였다. 자신이 원치 않는 달팽이 요리를 먹으라고 계속 강요하는
아버지에 반발해 나무 위로 올라가는데. . .

...다른 사람들 처럼 땅위를 걷는 것은 포기 했지만 그럼으로써 그는 오히려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를 좀 더 높은 곳에서 "거리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어 명확한 비전을
얻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땅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코지모는 말한다. . .
                                                       ..역자. . .


                                    
                                                                      




생각나는 멜로디:베에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작품 73  2악장
                        Adagio un poco mosso -attacca



  • ?
    부도옹 2006.11.17 18:36
    코지모남작의 명복을 빕니다....
  • ?
    중봉 2006.11.18 09:45
    독서대 위에 책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불과 1년전 이지만 갇혀지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네요...
    나무위의 남작이 기다리던 애인인가 봅니다.
    생각나는 멜로디는 찾아보고 올려두겠습니다.
  • ?
    야생마 2006.11.20 22:11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책 한권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얍쌉하게 한 권 마음에 채워넣어야 겠습니다.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얘긴 자주 접했지만 아무리 소설이지만 참 엉뚱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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