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얻어들인 아름다운 풍광들 입니다.
이 나른하고 조용한 가을 들머리의 지리의 품속.
두번째 몸살을 앓을 지리산의 잠깐 휴식시간을 같이 느껴요.
9월이 가기전에 보여드리고 싶은 9월의 느낌입니다.
그림:주신분
▶뜨락--느릿한 초가을 "상선암"
관련글: 33번 노고단에서 온 편지 中
▶속삭임 --"종석대"의 가을 전령사 억새
관련글:8번--몽수경 한갈피
▶노릿한 벼-- 섬진강변
▶들익는 마을--문수골
▶문수사--반달곰이 있는 왕시루봉 능선 산행로의 들머리
▶古宅--운조루
지리산 왕시루봉 아래의 토지면에 있는 조선시대 호남 가옥의
좋은 예로 99칸이었 다고 전해 진다.
세계 고 건축 대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건물.
관련 그림: 사랑방 사진방 55번,56번 이영진님 그림
▶수로가 흐르는 마을--지리산 왕시루봉 아래의 마을 오미리
여담으로
*운조루 이야기
벌써10년 이상이 넘은 이야기가 되겠군요.
운조루의 전주인은 지금의 모습처럼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운조루
가 변하는 것을 정말 싫어 하셔서 관리국 직원들의 여러차례 시도
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집을 팔아서 살아가는 거미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싫다."
매우 단호한 의지였다고 생각 되어 졌습니다.
어쩌다 한 두 사람 멀리서 듣고 찾아든 사람들에게 찾아주어 오히려
감사의 표정이 역력했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농사꾼으로 힘들게 살아가시면서도 편안하게 돈이 되는 일을 거부하고
쓰러져 가려고 하는 헛간이며, 뒷간등 모습들과 윗대 할아버지들의
유물들을 줄줄이 보여 주실때,
그 자존심 속에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유추되어질 다른 사실들을
두려워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벽장안에 그득한 선조의 유물들. . .
오래된 임금님에게 올리는 상소문이며,하사받은 선물이며. . . .
한두평 될까 말까한 운조루 본채의 사랑채 방에 들어 앉아 한참을
시간을 보내면서 그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미 고 건축 사전에 올라 있던 운조루를 자랑하시는
구슬땀 흐르는 소박한 언변 속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옛 선비의
기개 같은 것을 유전자처럼 지니고 계신다고 느꼈던 기억이 뚜렷합
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견해가 달랐겠지요.
결국은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문화재 관리국에서 손을 대기
시작하고 지금의 운조루로 복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하였을 때에는 그 아드님 되시는 분의 뒤틀리고 퉁명한
대접을 받으며 겨우 옛 모습에서 단장되고 덧붙여지는 운조루를 볼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들러본 운조루에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더군요.
할머님손에 들려진 천원짜리들이 무척 슬프게 여겨 졌습니다.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다시 한번 그 어른의 스스로 지녔던
자존심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추신:시간이 나면 보수하기전의 운조루 사랑채 사진 올려 볼게요.
음악:Peace -S.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