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는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다.
맑은 날은 멀리 불쪽 히말라야 연봉이 보이기도 하고 반대 방향으로는
끝없는 테라이 평원이 펼쳐져 있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히말라야의 척박한 땅과 높은 고산 지대만을 걸어 본 우리들은 이런
평야지대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던져진 상태여서 처음엔 그저 시야를
가리는 산 봉우리가 없는 널따란 공간에 던져진 느낌을 받을 뿐 감동을
누리기 쉽지 않았다. 그 공간에 적응이 될때까지는. . .
룸비니는 현재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면 주변에 16개 나라
사찰이 사이좋게 곳곳에 공존하며 세계각국의 민간 불교 단체가 들어서
있는 매우 특별한 장소이다. 오히려 석가가 탄생한 룸비니 동산의 의미
보다 모든 불교를 사랑하는 단체들이 사이좋게 모여 사는 평화로움의
의미가 더 깊다 할 수 있었다.
바이와라에서 룸비니로 달려가던 버스가 덜렁 우리를 평야 한가운데
떨구어 놓고 가버렸다.
먼지 자욱한 평지에 룸비니라고 간단히 적힌 표시기는 너무 단순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국절에 간다는 릭샤꾼의 호객이 이곳이 어떤 곳
일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룸비니 동산과 사찰들이 모여 있는 테라이 평원과는 정 반대에 있다.
그래서 먼저 룸비니 동산을 둘러 보고 한국절 대성석가사를 찾는 것이
좋다.
룸비니가 평화의 성지임을 상징하는 평화의 등불--어떠한 경우에도 꺼지
지 않는다. 저 불꽃은 아쇼카 석주와 북쪽의 설산과 일직선상에 있도록
설계되어 피워져 있다.
★옛날 엣날에 룸비니 동산에
룸비니 동산 유적지--흰건물이 마하데비 사원
마하데비 부인의 목욕한 못--멀리 보이는 고목이 보리수 나무. .
유적지에서 한컷--선그라스 없는 사진이죠?
입구에 들어서면 너른 초원지대에 빨간 벽돌의 유적지 모습과 마하데비
사원이 현대식 건물로 눈에 들어 온다.또한 마야 부인이 싯다르타를 낳기
전에 목욕을 했다는 못이 있고 ,부처님 입별후 300년이 되어서 그곳을
방문한 아쇼카 왕의 탄생지 방문 기념 석주가 있으며 사라수 나무와 보리수
나무 등이 있다.
2500년전 히말라야 발치의 작은 공국 카필라바스투의 샤카족 왕의 부인인
이웃나라 데오다와의 마야 데비는 친정인 데오다와를 방문하기 위해 만삭
의 몸으로 길을 떠났다.
그 때 룸비니에는 사라수 나무들이 활짝 피어난 오월이었으며 마야 데비
는 경치를 감상하고 목욕도 하기 위해 길을 멈추었다.
목욕을 마치고 물에서 나올때 그녀는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길게 늘어져 있는 보리수 나무를 잡았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이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었다.
그러나 이 룸비니유적지는15세기 무갈 제국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지금
같은 황량한 야생의 들판으로 변해 버렸다.
룸비니가 다시 살아난 것은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의 아쇼카왕 석주
를 발견 함으로써 였다.
아쇼카 석주는 불교의 수호자 였던 인도의 왕 아쇼카가 세운 돌 기둥이다.
아쇼카는 석가모니 입멸 300년후에 이곳에 와서 그의 감회를 적은 글을
새긴 아쇼카 석주를 세웠다.
아쇼카 석주
룸비니에는 2500년전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리수 나무과 아쇼카석주
마하부인을 기념하는 마하데비 사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불교 최대의
성지이다.
★대성석가사는
각국 사찰들의 위치를 알리는 표시
대성석가사---멀리 보이는 테라이 평원은 평화롭기만 하다.
친절한 스님 덕분에 며칠이고 쉬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뜨거운 물이 철철철 흐르고, 비록 냄새가 나긴 하지만 한국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고, 오랜 여정으로 피곤해진 몸을 쉬어 가기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든 다 이용하는 좋은 휴식처였다.
다만,
다른 나라의 사찰에 비해 그 특징이 없는 것이 큰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
아마 새롭게 단장 되고 나면 그런대로 우리나라 사찰의 면모를 지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된다.
테라이 평원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들어 앉은 여러나라의 사찰들은 대개가
자기네 나라의 특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모습으로 지어졌다.
그런데 다만 자기 나라 순례객들만 숙식을 허용하는 이유때문에 언제나
평범한 여행자로서의 룸비니를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성석가사를
찾게 되어 있는 것 같다.그래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늘 대성석가사는
붐빈다.
대성석가사와 가장 가까운 중국 사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작은 건물들은
여러 나라의 사찰 모습들. . .
하루를 더 묵으면서 그곳의 여러 사찰을 둘러 보기로 하였는데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전기 장판으로 뜨뜻한 간이 침대에 누워서 여자 여행객들과의 이야기를
쏟아 내어 놓는다.
인도만 9개월째 여행중이라는 홀로인 여자분은 감기가 걸려서 일부러
이곳에서 몸을 추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세상에 9개월이라니 . . 그것도 인도만. . .
뭐가 그리 좋아서 다른 나라에는 가질 않느냐 물으니 '그냥"이라고 대답
한다.
비가 개일때를 기다리다 잠깐 비개인 상태에서 밖에 나갔다가 미얀마 사찰
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곧 비가 다시 내리는 바람에 줄기차게
달려야 했다.
평원의 자욱한 안개속에 펼쳐진 밀림위로 내리는 비는 뭔가 지금까지의
생활과 풍경들을 일순간에 생각속에서 지워버리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게 평화로구나. . .
두번째 룸비니의 밤에 예불시간에 참배했다.
조촐한 불당에 모인 사람들의 염원은 각각 무엇이었을까?
일본인이 우리의 예불문을 따라 예불하는 모습이 매우 특별하다.
새벽3시에는 우리 사찰 스님께서 가장 먼저 도량석을 하고 예불을 드린다.
그것은 테라이 평원의 모든 야생의 중생과 각국의 사찰의 스님들을 일순간
일깨우는 타종이 된다.
그리곤 잠시 한시간 후에 중국사찰에서의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꾸러기인 내가 그것들을 즐기게 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멀리서 "워~~워"하는 야생 여우의 울음이 퍼져 나온다.
산이 막히지 않는 곳에서의 예불소리들은 각각의 것이라기 보다 시간차의
하나인 듯 여겨진다.
작은 소리 하나도 저 멀리까지 퍼져 가서 다른 소리를 유도하는. . . .
이것도 평화일테지. . .
여기서 여행을 접어도 좋겠다.. . .
info
대성석가사에서는 음식을 부페식으로 배급해 준다.
숙식을 하고 나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종무소의 모금함에 넣으면 된다.
이곳에서 가져간 미숫가루는 좋은 비상식량이 될 수 있다.
무료다.
인도 네팔 여행시 꼭 빠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지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모여사는 것과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는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각 나라의 사찰을 둘러 보는 일은 큰 일이 될 수 있다.
거리가 서로 너무 멀고, 햇살아래 그 너른 평원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찰들
을 찾아 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곳에 상당한 거리들을 가지고 지어져 있다.
이곳에서의 평원의 개념이란 넓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러 명상센터들이 들어서 있어서 명상을 하기 위해 머물러도 좋다.
그냥 걸어서 둘어보아야 하는데 힘이든다.
하루이상을 충분히 잡아 둘러 보길 바란다.
맑은 날은 멀리 불쪽 히말라야 연봉이 보이기도 하고 반대 방향으로는
끝없는 테라이 평원이 펼쳐져 있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히말라야의 척박한 땅과 높은 고산 지대만을 걸어 본 우리들은 이런
평야지대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던져진 상태여서 처음엔 그저 시야를
가리는 산 봉우리가 없는 널따란 공간에 던져진 느낌을 받을 뿐 감동을
누리기 쉽지 않았다. 그 공간에 적응이 될때까지는. . .
룸비니는 현재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면 주변에 16개 나라
사찰이 사이좋게 곳곳에 공존하며 세계각국의 민간 불교 단체가 들어서
있는 매우 특별한 장소이다. 오히려 석가가 탄생한 룸비니 동산의 의미
보다 모든 불교를 사랑하는 단체들이 사이좋게 모여 사는 평화로움의
의미가 더 깊다 할 수 있었다.
바이와라에서 룸비니로 달려가던 버스가 덜렁 우리를 평야 한가운데
떨구어 놓고 가버렸다.
먼지 자욱한 평지에 룸비니라고 간단히 적힌 표시기는 너무 단순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국절에 간다는 릭샤꾼의 호객이 이곳이 어떤 곳
일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룸비니 동산과 사찰들이 모여 있는 테라이 평원과는 정 반대에 있다.
그래서 먼저 룸비니 동산을 둘러 보고 한국절 대성석가사를 찾는 것이
좋다.
룸비니가 평화의 성지임을 상징하는 평화의 등불--어떠한 경우에도 꺼지
지 않는다. 저 불꽃은 아쇼카 석주와 북쪽의 설산과 일직선상에 있도록
설계되어 피워져 있다.
★옛날 엣날에 룸비니 동산에
룸비니 동산 유적지--흰건물이 마하데비 사원
마하데비 부인의 목욕한 못--멀리 보이는 고목이 보리수 나무. .
유적지에서 한컷--선그라스 없는 사진이죠?
입구에 들어서면 너른 초원지대에 빨간 벽돌의 유적지 모습과 마하데비
사원이 현대식 건물로 눈에 들어 온다.또한 마야 부인이 싯다르타를 낳기
전에 목욕을 했다는 못이 있고 ,부처님 입별후 300년이 되어서 그곳을
방문한 아쇼카 왕의 탄생지 방문 기념 석주가 있으며 사라수 나무와 보리수
나무 등이 있다.
2500년전 히말라야 발치의 작은 공국 카필라바스투의 샤카족 왕의 부인인
이웃나라 데오다와의 마야 데비는 친정인 데오다와를 방문하기 위해 만삭
의 몸으로 길을 떠났다.
그 때 룸비니에는 사라수 나무들이 활짝 피어난 오월이었으며 마야 데비
는 경치를 감상하고 목욕도 하기 위해 길을 멈추었다.
목욕을 마치고 물에서 나올때 그녀는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길게 늘어져 있는 보리수 나무를 잡았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이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었다.
그러나 이 룸비니유적지는15세기 무갈 제국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지금
같은 황량한 야생의 들판으로 변해 버렸다.
룸비니가 다시 살아난 것은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의 아쇼카왕 석주
를 발견 함으로써 였다.
아쇼카 석주는 불교의 수호자 였던 인도의 왕 아쇼카가 세운 돌 기둥이다.
아쇼카는 석가모니 입멸 300년후에 이곳에 와서 그의 감회를 적은 글을
새긴 아쇼카 석주를 세웠다.
아쇼카 석주
룸비니에는 2500년전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리수 나무과 아쇼카석주
마하부인을 기념하는 마하데비 사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불교 최대의
성지이다.
★대성석가사는
각국 사찰들의 위치를 알리는 표시
대성석가사---멀리 보이는 테라이 평원은 평화롭기만 하다.
친절한 스님 덕분에 며칠이고 쉬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뜨거운 물이 철철철 흐르고, 비록 냄새가 나긴 하지만 한국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고, 오랜 여정으로 피곤해진 몸을 쉬어 가기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이든 다 이용하는 좋은 휴식처였다.
다만,
다른 나라의 사찰에 비해 그 특징이 없는 것이 큰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
아마 새롭게 단장 되고 나면 그런대로 우리나라 사찰의 면모를 지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된다.
테라이 평원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들어 앉은 여러나라의 사찰들은 대개가
자기네 나라의 특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모습으로 지어졌다.
그런데 다만 자기 나라 순례객들만 숙식을 허용하는 이유때문에 언제나
평범한 여행자로서의 룸비니를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성석가사를
찾게 되어 있는 것 같다.그래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늘 대성석가사는
붐빈다.
대성석가사와 가장 가까운 중국 사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작은 건물들은
여러 나라의 사찰 모습들. . .
하루를 더 묵으면서 그곳의 여러 사찰을 둘러 보기로 하였는데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전기 장판으로 뜨뜻한 간이 침대에 누워서 여자 여행객들과의 이야기를
쏟아 내어 놓는다.
인도만 9개월째 여행중이라는 홀로인 여자분은 감기가 걸려서 일부러
이곳에서 몸을 추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세상에 9개월이라니 . . 그것도 인도만. . .
뭐가 그리 좋아서 다른 나라에는 가질 않느냐 물으니 '그냥"이라고 대답
한다.
비가 개일때를 기다리다 잠깐 비개인 상태에서 밖에 나갔다가 미얀마 사찰
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곧 비가 다시 내리는 바람에 줄기차게
달려야 했다.
평원의 자욱한 안개속에 펼쳐진 밀림위로 내리는 비는 뭔가 지금까지의
생활과 풍경들을 일순간에 생각속에서 지워버리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게 평화로구나. . .
두번째 룸비니의 밤에 예불시간에 참배했다.
조촐한 불당에 모인 사람들의 염원은 각각 무엇이었을까?
일본인이 우리의 예불문을 따라 예불하는 모습이 매우 특별하다.
새벽3시에는 우리 사찰 스님께서 가장 먼저 도량석을 하고 예불을 드린다.
그것은 테라이 평원의 모든 야생의 중생과 각국의 사찰의 스님들을 일순간
일깨우는 타종이 된다.
그리곤 잠시 한시간 후에 중국사찰에서의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꾸러기인 내가 그것들을 즐기게 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멀리서 "워~~워"하는 야생 여우의 울음이 퍼져 나온다.
산이 막히지 않는 곳에서의 예불소리들은 각각의 것이라기 보다 시간차의
하나인 듯 여겨진다.
작은 소리 하나도 저 멀리까지 퍼져 가서 다른 소리를 유도하는. . . .
이것도 평화일테지. . .
여기서 여행을 접어도 좋겠다.. . .
info
대성석가사에서는 음식을 부페식으로 배급해 준다.
숙식을 하고 나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종무소의 모금함에 넣으면 된다.
이곳에서 가져간 미숫가루는 좋은 비상식량이 될 수 있다.
무료다.
인도 네팔 여행시 꼭 빠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지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모여사는 것과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는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각 나라의 사찰을 둘러 보는 일은 큰 일이 될 수 있다.
거리가 서로 너무 멀고, 햇살아래 그 너른 평원 구석구석 숨어있는 사찰들
을 찾아 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곳에 상당한 거리들을 가지고 지어져 있다.
이곳에서의 평원의 개념이란 넓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러 명상센터들이 들어서 있어서 명상을 하기 위해 머물러도 좋다.
그냥 걸어서 둘어보아야 하는데 힘이든다.
하루이상을 충분히 잡아 둘러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