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가을 여러가지 마음의 정리를 위해 고통 받는 벗을 위해 잠시
여행을 하는 도중에 내 추억의 장소에 가보고 싶어하는 벗을 위해
봉암사에 다시 들렀다.
좀더 변화된 모습일까? 그래서 이젠 감시하는 사람들이 없나?
차로 들어 갈 수 있도록 길이 잘 포장되어 있어서 그곳도 어쩔 수 없는
많은 변화를 맞았구나 생각했다.
초라하리만치 조용했던 절의 모습은 화려하면서도 그러나 역시 정갈
하게 변해있었다.
나를 그토록 아프게 했던 낙엽쌓였던 다리는 좀더 세련된어진 모습이
었고, 다행히 옛길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그곳에서 출가 하신 인연으로 다시 그곳에서 이젠 어른
스님이 되어 계시지는 않을까?
법명을 물었다.
그 때 그 스님 만큼 젊은 승려들이
"그런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어떻게 일반인이 들어 오셨습니까?"
입구에 전화를 해대느라 젊은 스님은 야단이 났다.
마치 도둑이라도 들어온 것 같이. .
그 기세가 어찌나 드세던지 추억속의 아름다운 눈빛의 스님들의 연상은
더욱 또렷이 떠올랐다.
이건 또 무슨 사건?
분명히 입구가 개방되어 있었는데 ?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이곳은 여전히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되고 있었단다.
그런데 내가 간 그날도 입구를 지키던 돈받고 일하시던 어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한 내가 그곳에 무상으로 들어가게 된 것 이었다.
그 오랜 시간 전에도 나는 지키는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그 찰나라는
시간을 빌어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산문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는데. .
벗이 먼저 내색을 했다.
"어째 네가 오는날은 사람들이 문을 지키다가 자리를 비우는지 모르겠다?"
봉암사와 나와의 인연은 그렇게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산승과의 대화가 아닌 전문 문지기와의 시끄러운
한판 싸움이 예상되는 인연이었지만. . [웃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사실은 무지 막지한 소란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데 나는 그 소리
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예전의 추억속으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봉암사는 그렇게 나와의 인연을 맺고 끊었다.
예전같이 슬프지도 않았고,
가슴시린 은행나무들도 아니었고,
"가은"이라는 소읍은 이제 驛舍마저 없는 잊혀진 곳이되었고,
더 이상 나도 애기 보살이 아니었다.
돌아나오는 길에 시골길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노인을
차에 태우고 읍까지 모셔다 드렸다. 일행은 노인은 절대로 태우는 법이
아니라고 우겼지만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또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일기 일념을 소중히 하던. . "
도석 스님의 그 목소리만이 가을 들판에 떠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