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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2001.11.07 15:13

우천회상

조회 수 260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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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상***







-산골나그네-





산을 오르면 바닥을 보지않는다



그건 언제부터인가 나의 습성이었다



돌뿌리에 채여 넘어질까 걱정따원 없었다



쉴새없이 고개를 돌려 산길을 따라 펼쳐지는 삶의 군상들을 본다



코를 킁킁거려 산에만 사는 것들이 뿜어내는 온갖 내음을 맡는다



귀를 쫑긋세워 잎들이 흔들림 작은 벌레들의 소리를 듣는다



지리산을 오르면 한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절친한 학우의 외삼촌인 그분은 가끔 진주장날을 골라 누이댁을 들리신다



그럴때면 몇몇 친구들이 주머니를 털어 그분이 좋아하시는 파적과 막걸리를 샀다



전깃불이 불그레한 어둑한 대청마루에 앉아 연신 술방울이 묻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 분은 무척이나 우리 젊은이들이 찾아온것을 흐뭇해 하셨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



선생님 축지법을 쓰신다는데 정말입니까?



선생님께선 "그건 잘몰라서 하는 말들이야. 허지만 눈쌓인 산을 장터목에서 중산리까지 1시간에 왔다가 갈수있는 건 사실이지."



선생님은 자신의 발이 크다시며 보여주신다. 눈길을 걸을때는 얼어붙은 그늘만 골라서 뛰어가신단다



선생님의 자랑은 지리산에 27년동안 계시면서 등산로를 개척하신 일,추락하거나 독초를



먹은 등산객을 업고 산을 내달아서 결국은 많은 생명을 구하신 이야기에선 힘이 주어졌다



그리고 천왕봉 빗돌을 짊어저 올린일과 냉대하던 구례사람들이 마음을 바꾼 일들을 말씀하시곤 했다



그땐 동아대에서 청학동 발견에 대한 기사로 떠들석할 때 진위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설레

설레 고개를 흔들며 들려주시던 청학동에 대한 님의 집착을 읽을 수 있었다





언젠가 하교길 시내버스에서 님을 만났는데 무슨 맘으로 이발을 하셨는지 단발정도로




짦아진 선생님의 머리결이 차창으로 스민 햇살에 은갈색으로 빛나 너무 좋았다.





말씀인즉 장발족으로 잡혀서 경찰에게 붙들렸는데 아무리 강변해도 속수무책으로



이발소에 끌려가서 머리를 자르고 입산후 처음으로 비누로 머릴 감으신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한달에 한번쯤은 선생님은 고산지대의 귀한 종자들을 따와 교우이시던 경상대학장님께 팔아서 돌아가시곤 했는데....





그전엔 당일에 진주까지 내려와서 장을 보고 해지기 전에 산장에 돌아가셨단다





세간에 축지법이라 하는 기술의 노하우는 산의 등성이를 따라 가장 짧은 코스를 밟는 것



선생님에겐 한가지 자랑이 있었다. 우린 그자랑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곤 했는데,





이미 예순이 넘어선 나이여서 비경의 장소에다 자신의 묘지를 꾸며 놓았단다





묘지는 돌아선 산봉우리에 다락같은 광장이 있고 암벽엔 자연동굴이 있단다





정원엔 지리산의 모든 나무와 꽃을 심었고 동굴밖엔 피라미드를 쌓았는데





아무도 찾을 수 없고 귀신조차 볼 수 없는 곳에





사후의 안식처를 오래전에 준비해 오셨단다





그런 후 언젠가 술을 많이 하시면서 현정권을 원망하시더니





지리산을 떠나야 할 지도 모르신다며





가까운 곤양 바닷가에 거처를 마련하고 배한척 몰아다가 고기나 잡으면서





노후를 보낼까 궁리도 하신다며 우신 적이 있습니다





그후론 선생님이 내려오신걸 본적이 없습니다





군생활중 친구를 통해 선생님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끔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선생님이 보여주시던 산생활사진들이 떠오릅니다





가끔은 산행을 할 때면 천왕봉 인근의 계곡을 따라





솟아있는 봉우리들을 유심히 쳐다봅니다





하지만 내심 당신의 영전을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나의 작은 소망으로 산과 젊은이를 유달리 좋아했던 당신께서





영원불멸의 지리산 신령으로 살아남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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