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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216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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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세의 신비로움을 그 어느 신선인들 감히 한 말로 이러하오?
하고 종지부를 찍겠소만, 4계의 변화, 비 오면 비 오는 되로, 흐리면
흐린 되로, 낮이면 낮 , 밤이면 밤 어느 하나 그 고유의 절경과 정취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산을 오르내리는 물(人) 또한 동네
뒷산과는 사뭇 다르다.

‘할아버지 혼자 오셨습니까?’

‘잉, 그래, 혼자다’

뱀사골에서 쳐 올려 노고단으로 하산 할 계획으로
이제 겨우 능선에 올라 돼지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60이 훨씬 넘어 보이는 행색도 등산 복장과는 전혀 거리가 먼
평상복에, 등에는 괴나리봇짐 같은 조그만 쌕 하나만 달랑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도 노고단으로 향하는 걸 보니 경제원칙에 미련한 힘든
역코스를 역부로 잡으신 것 같았다. 젊은 우리의 심정은 진심으로
염려도 되고, 무척 측은 한 듯 하였다.

‘할아버지, 이 지리산은 힘들고 기후의 변화도 많은데
달랑 쌕 하나만 메고 오셨어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어느 하나 소위 숨쉬는 무슨
기능성이라는 등산전용 제품 같은 것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저런 연세에, 저런 축소형 배낭으로도 거뜬히 우리와 같은
리듬으로 산행을 즐기시는 할아버지의 쌕 속이 궁금했다.

‘쌕 안에는 뭐 넣어 왔습니까?’ 나는 신기한 듯 다짜고짜 물었다.

‘잉, 여개? 도시락 통하고 물병하고 수건 하나들었다.’

할아버지는 도시락도 일회용이 아닌 양은 도시락에
밥을 싸 오신 것이었다.
이왕지사 할아버지도 행보를 멈추시고, 관심을 가져 주는 우리가
정겨우신지 잠시 휴식을 취할 자세를 갖추시더니 묻지도 않은
얘기들을 해 주셨다.

‘내가 말이다. 마산 사는데. 우리친구들은 지금쯤 공기도 안 좋은
다방에서 맨 날 몸에 좋지도 않는 커피나 세리 마시고, 잡담이나
하고 아가씨들하고 농담이나 하고 남 흉이나 보고 놀고 있다. 아이가.’

‘‘나는 그런기 싫어서 나 혼자라도 산에나 온다.’

‘녜~~~~, 잘 하셨습니다.

더 이상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50 리터 배낭이 터질 듯이 넣어, 메고 다니는
우리가 더 신기하고 염려스러웠는지 모른다.
이제 할아버지는 다시 떠날 채비를 하는데 우리 일행은
어느 누가 먼저 가자고 말하기 전에는 꼼짝도 안할 듯이
서로 눈치만 보며 궁시랑 거리고 퍼질렀다.

이놈의 “비상시”가 짐을 늘렸다고 투정을 해본다.
조난 시 비상식량, 산에는 해가 일찍 지니 비상등, 응급 시 비상약품,
갑자기 비를 만날 때를 대비한 비옷, 여불 양말, 옷, 칼, 줄 톱, 나침판,
기상예보를 수시로 청취 할 수 있는 라듸오, 버너, 코펠, 기본 양식,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과일이나 간식들, 지도, 또 더 있지만
생각하기도 지겹다. 그러나 이것들도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기차게
도움을 받을 때도 있긴 있다.

‘’도대체, 할아버지와 우리는 무슨 생각을 다르게 할까?’
‘’그래, 맞아 우리는 정규 산행 꾼이고, 할아버지는 심심풀이니
기후가 안 좋으면 도중에 돌아가거나 안 올 거야?’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는데 예의 그 할아버지는
벌써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바람의 아들같이 날아가는 듯 사뿐하다.
발로 걷는 것이 아니고 양 어께를 살랑 살랑 앞뒤로
흔드니 발은 자연 반동에 의해 옮겨지는 듯 했다.

맞아, 오랜 이전에 외갓집에서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해 올 때, 빈 몸으로 뒤따라가는 나보다 더 앞서 가던 6일
먼저 태어 난 외사촌형의 뒷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그 지게 한 짐의 하중이 과연 몇 kg이나 되며, 그것 들을
배낭에 쑤셔 넣으면 몇 리터 배낭이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작란인데, 아직도 갈 길은 이다지도 먼지?
그러고 보니 무심하게도 어느 듯 할아버지처럼 산으로 갈까?
다방에서 주접이나 떨까하고 결정할 때가 코앞에 다가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안와도 되는 것은 꼭 나보다 앞선다니깐.


                                            [疊疊山中]




  • ?
    허허바다 2004.05.28 15:30
    정해진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그 누군가에 의해 지시받은 대로...
  • ?
    솔메 2004.05.29 14:21
    첩첩산중님의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글을
    다시 보게되어 반갑습니다.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허망한 레지들의 헛웃음이나 듣는것 보다는
    시간,기회되는데로 산을 찾는것이 낫다고 사료됩니다.
  • ?
    오 해 봉 2004.05.29 20:24
    疊疊山中님의 좋은글 참 좋습니다.
    나이가들어도 몸에서 냄새가 나지않게 날마다 목욕도하고
    규칙적으로걷고 가볍게뛰며 건전한일상을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슬기난 2004.05.30 21:34
    그래요 아직 마음은 그게 아닌데 귀밑에 흰머리가 늘어가는 것이,,,
    안와도 괜찮은게 마음보다 항상 빨리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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