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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248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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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는 것이 세상이고, 나이고, 너이고.....^^
아랫분의 '까만 안경테'에 살짝 웃음이 떠올라 저의 이야기도 풀어봅니다.

변해가는 넷세상 만큼이나, 지리산과 저의 관계도 변해갑니다.
처음에는 일행과 함께 엉키는 재미에 산을 올랐고,
한때는 혼자 산바람에 시달리는 재미에 올랐고
또 한때는 '지리산에서 이렇게 속되게 굴어도 되나' 싶게
사람바람에 시달리며 산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한때의 바람 (바람타령이 대단하죠?^^)...
허무한 바람이 아니라, 기쁘게 섭섭하게 아쉽게, 그렇게 불어가는 바람.
처럼 생각했지요.

그런 마음의 변화만큼 제 겉모습도 변해갑니다.
처음엔 완전 초보의 모습으로  엉기적엉기적 군시렁대며 일행의 꽁무니를 따르다가
또 언젠가는 제 한 몸은 추스릴 정도의 뽄새로 차분하게 산을 오릅니다.

그러니까,
이번은 그 '엉기적엉기적 군시렁대던' 때의 기억입니다.

처음 지리산을 만난게 12월 입산해제가 막 풀린 때였고,
새파란 물이 뚝뚝 떨어지게 하늘은 푸르고,
눈 앞엔 눈부신 은빛가루가 휘날렸습니다.
저는 그때 일행을 둘로 벌어지게 만드는 거북이였죠.
무지하게 추우니 잘 입어야한다던 말대로
옷을 입고 또 입고, 겹쳐입고.... (그러니 거북이가 됐지...)
배낭 하나 안맸는데도 왜그리 산길은 힘들던지.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니.'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날 이 거북이를 '보좌'하던 그 분은 저를 그런 아이로 봤던 것 같습니다.
'이 아이는 오늘 내려가면 절대로 산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하겠군.'
그런데.
거친 숨소리때문에 바람소리 하나 듣지 못했던 저는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숨이 넘어가게 힘들어도 왜그리 마음이 푸근하던지....

벽소령 지나, 길고 긴 길을 걸어 영신봉에 다 닿을 즈음이었네요.
경사진 바위지대가 아예 곧추선 벽처럼 느껴지던 곳.
(그때는 그 길이 어딘지 전혀 몰랐지요)
말없는 그 분이 손을 내밀었는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밧줄로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데.... 그래도 그래도....'
간신히 올라가고 보니 일행은 둘로 갈라져 그 분과 저만 남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그 분과 왕거북이인 저는 당연히 늦을 수 밖에요.
늘 멀리서 그리던 그 분과 함께, 그것도 지리산 능선에 서있으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 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까지 하고.

영신봉에 이르기전 만나는 망바위에 섰습니다.
차원을 가늠키 어렵게 아련하고 눈부신 그 산너울....
저는 어린애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폴짝폴짝 뛰고. 난리가 났지요.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망바위야."
"......"
"자, 저기를 가만히 봐..... 봤니?..... 여기 우표 붙였다.... 받았지?"
그 분은 제게 엽서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저는 그 망바위에서 떨어질뻔 했습니다.^^

그 시절 무척 짝사랑했던 그 산꾼은 새내기인 저에게
대학 산악부 시절의 낭만을 잠깐 되살려 봤을 겁니다.
세석산장에 거의 다 이르는 걸음을 슬쩍슬쩍 늦추던 그 분의 뒷모습을,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며 걸었습니다.

이후 나홀로 산행에 빠져들면서도 한동안은
그 분과 비슷한 배낭을 보고도 고개가 휙 돌아가고,
비슷한 목소리를 듣고 북적한 산장을 헤매보기도 했지요.

겉폼. 일명 '후까시'라고도 하죠....
칼바람에도 두군거려 땀이 나는 손을 잡고 오르던 너럭바위는
이제 지루한 계단에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그 시절도 그만큼 자리를 비껴섰습니다.
왕거북이도 이제 제 한 몸의 짐을 부리고 혼자 성큼성큼 계단을 오릅니다.
그래도 그 망바위를 지날 때마다 늘 한참을 멈춥니다.
'추락주의' 경고판이 붙은 쇠줄을 붙잡고 그 때를 떠올리며 웃어봅니다.
칫. 아저씨는 후까시~~~~~!
'잘 지내요?....
아저씨도 좋았지? 그러니까 부러부러 돌아서 가고 느릿느릿 걸었잖아....'

늦는 우리 둘을 기다리며 세석평전을 담던 친구의 캠코더에
우연히 우리가 담겼습니다.
뒷모습만 보며 걷느라 볼 수 없었던 그 분도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더랍니다....

오랜만에 추억을 되새기니 재밌네요.
그나저나, 그 분은
왕거북이가 아직도 지리산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줄
짐작이나 하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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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lu 2003.09.26 10:17
    ^.~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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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2003.09.26 10:19
    흐믓한 추억입니다. / 저는 14년전 중산리 야영장에서 잠 잘 곳이 없을때 모르는 사람들이 묶는 텐트 안에서 신세진적이 기억납니다. 인심 참 좋을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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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3.09.26 12:07
    아름다운 추억의 산행기네요.공수부대 산악행군 하는것도아니고 천천히 좌우를 구경하며 왜 산에왔는가 집에서는.이웃과는. 직장이나학교에서는.등 자기성찰을 하면서 땀흘리는게 진정한 산행아닐까 싶네요.
    젊은날의 흐뭇한추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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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2003.09.27 02:05
    추억이 많은 아가씨~!! 계속 들려 주실거죠.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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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js38 2003.09.29 00:57
    에고! 애틋해라! 그래 아직두 그러고 있다니.. 쯔~ 아니 하늘에 계신 천상님은 무얼 하시기에 이런 일도 안 봐 주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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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연 2003.09.29 16:07
    에틋...--;; 감사하네요. 방금 지리에서 2박3일을 헤집고 놀다내려왔네요. 지금 출근하러 갑니다. 지리에선 유유자적이었는데, 그 덕에 지금부턴 헐레벌떡 정신이 없어질듯.... 지리의 가을! 볼에 열꽃도 지기전인데.. 다시 가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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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상 2003.09.30 20:46
    나도 지리산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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