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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人)좋은 지리산(3) - 자랑스러운 후배 “포터”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더워지니 어느 듯 여름도 성큼 우리 곁으로 
들어와 누운 것 같다. 
한 겨울의 눈 덮인 지리산이 그리워진다. 

“형님, 어제 지리산에 얼마나 눈이 많이 왔는지 입산통제랍니다” 
“이번 주말에 됐습니까?” 
“좋지!~” 얼마나 기다리던 눈인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했어 승용차 정원인 5명이 의기투합하여 장터목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사는 이곳에서는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가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하니 겨울 산행은 
으레 눈을 쫒아 다니는 산행이다. 
겨울 산행이라 이것저것 안전장비도 준비 할 것이 많다. 
넣었다가 뺏다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그런대로 한 배낭 빵빵하게 
채워졌다. 등산 장비 점에 진열된 모습같이 안 둘레에는 스펀지 매트로 
둘러싸니 겉모양도 예쁘장하게 잘 빠졌다. 

함께 가는 일행들은 모두가 나와는 10년 넘게 나이 차이가 난다. 
산이라고는 근처도 안가든 내가 친구가 어느 날 백화점에서 의류점을 하다가 
정리를 하고 뜻한바 있어 등산장비 점을 개업했던 것이다. 
아직은 일반인들은 아웃도어 문화에 인식이 안 되어있어, 젊은 전문 산악인 
들이 주 고객이었다. 자일 같은 기술 장비의 비중도 커 퇴근시간 후에는 
언제나 산 꾼들의 아지트 역할도 했다. 나도 친구 집에다 그들의 무용담이 재미
있어 자주 그곳에 들려 젊은 후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웬만한 건 가격도 다 알아 때로는 가게도 봐주었다. 

그들은 등산학교 출신에다, 산악구조대 임무도 띄고 있는 대한 산악연맹 지부 
산하 각 산악회의 회원들이라 뭐든지 원리원칙이다. 우선 선후배 예우도 깍듯하다. 
어쩌다 출장 옷매무새나 배낭이 후줄근하면 꼭 한마디씩 한다. 
“형님, 오늘 산에 나무 하러가요?” 
그 소리를 듣고 아래위로 내 꼬락서니를 젊은 그들과 비교 해보니, 내 딴에는 
나름대로 폼을 좀 낸 것 같은 되도 핸섬한 그들보다 좀 덜 어울리는 것 같았다. 

“형님, 위에 입은 오버트라우져는 여기서는 벗었소!” 
그것은 산에 가서도 악천후 일 때 마다 못해 입는 거지 여기서는 불편합니다.” 
산에 갈 때는 집에서부터 으레 이렇게 입고 나와야 하는 줄 알은 내 생각이 틀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퇴근 후 부식준비도하고 했어 저녁 8시나 되어 출발을 하면 밤 12시에 눈바람 춤추는 
중산리에 도착한다. 그때만 해도 자가용 보급도 적고, 겨울 단체 산행도 적을 때라 
이 시간 중산리 공용 주차장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민박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4시에 일어나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대충인데도 바쁘다. 

쫄병 한 놈이 자진해서(?) 식기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이, 배낭 속에 든 장비들을 끄집어 
내어 채비를 서둘렀다. 스패츠, 아이젠, 털모자, 모장갑, 덧장갑, 오버트라우져, 거기다 
얼마 전 호기심 반에다, 친구 매상에 도움도 되고 해서 장만한 거창한 짝당 2,000g이 
넘는 ‘코플라치 워킹용 플라스틱 이중화’를 시험 착용했다. 

이제 이것저것 몸에 다 걸치고 나니 그 탱탱하던 배낭이 홀짝 해졌다. 
처음신은 신발이 영 부자유스럽다, 거의 우주인 수준이다. 그래도 이 자리서 어찌 할 
수도 없고 거금을 투자 한 것도 아까워, 역시 발도 시리지 않고 최고더라는 찬사를 
기대하며 악착같이 보조를 맞추어 갈 수 밖에 없다. 나 말고도 또 다른 두 사람도 
평소 신는 빙벽용 이중화를 신었다. 

물론 계절은 다르지만 최근 등단한 “슬리퍼 맨”에 비하면 거의 영국 버킹검궁의 왕실 
수준이다. K2행 차를 잘 못 탄 것 같다. 영국의 뉴질랜드 출신 힐러리경이나, 보닝턴의 
에베레스트 등반 차림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초장엔 의욕과 흥분 속에 그런대로 그들과 보조를 맞추며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기로 했다. 평소 써든 4 발 자리 아이젠은 눈밭에서 자주 아이스 볼이 생겨 오늘은 
8발 자리를 준비했다. 앞 침 두개만 없고 앞뒤 네발 씩 조정이 가능한 빙벽용 수준이다. 
좋은 장비까지는 좋은데 다리가 점점 더 무거워 진다. 숨결도 거칠어진다. 

이 중장비를 걸치고 잘못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겨울산행을 굳이 해야 하는 이유가 
도전, 모험 때문인가? 점점 후배들과 간격도 멀어진다. 쉬는 횟수도 많으니 선발대도 
걷다가 하염없이 뒤처져 오는 나를 기다리니 몸도 식어 추위를 느낀다.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점에 겨우 도착하니, “ 형님 수고 했습니다” 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엉덩이가 땅에 닿자마자 “ 자!~ 출발 합시다” 한다. 
이제 좀 쉬는가? 싶었는데 기다리기에 지쳤는지, 남의 사정도 무시한 채 또 일어나야했다. 
눈도 많다. 6부 능선부터는 거의 무릎까지 찼다. 

결국 장터목산장 100m 정도 앞두고 나는 전신 무력증으로 숨쉬기도 귀찮을 정도로 
퍼졌다. 이른바 다리가 다 풀려 한 발 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예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자리에 배낭을 맨 채 발랑 들어 눕고 말았다. 
이 때 나의 자랑스러운 후배 ‘포터’가 나의 배낭을 빼앗듯이 베끼어 앞가슴에 매고 갔다. 
별명이 해리포터가 아니고 1톤 트럭 포터다. 키가 2m 가까운데다 체격이나 힘도 대단하다. 
함께 산행할 때 마다 밥 많이 먹는다고 나한테 잔소리를 듣던 친구인데, 언젠가 설악산에 
동계훈련을 들어갔다가 여비가 떨어져 걱정을 하다가 일행 모두가 희운각 대피소 까지 
짐을 올려주고 여비를 벌기로 했는데. 그때 다른 사람의 세배 가까운 짐을 메고 간 이 
후로 얻은 별명이다. 

잠시 안정을 취하고 배낭도 짐을 덜었으니, 나는 다시 걷기위해 일어서 걷는데 정말 
이대로 꼼짝없이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이 험준한 산에서 자기 몸도 힘든데 누가 나를 
업고 갈 것인가? 배낭을 덜었는데도 딱 한 발 움직이고 다시 쉬고 또 딱 한 발 움직였다. 
소나무에 등을 기댄 채 내 신세가 왜 이 꼴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니, 모든 게 준비 
부족이 아니고 많은 최신장비에 치어 이 꼴이 되었다는 판단을 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장비도 어설픈데도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 하기는 
해도 잘만 올라가고 있었다. K2 등반가 수준의 완벽한 장비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때 위에서 누군가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힘주어 고개를 들고 보니 포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올라오질 않으니 
고참이 내려 가봐라 한 것 같다. 
“형님, 여기 업히세요!!” 나는 내 앞에 쭈그리고 앉은 그의 등에 얹혔다. 
여기서 오도 가도 못하고 죽는가? 했는데 눈물이 다 나올라 한다. 
막상 도착하니 편해서 그런지 일보전진 때문인지 얼마 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이구 형님 고생 많았습니다.” 너도 나도 인사성 하나는 확실하다. 
점심도 먹어야 하니 체온유지를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끄집어내어 걸쳤다 

이제 좀 살만하다.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다가도 능선에 올라서니 역시 잘 온 것 
같다. 등반가 ‘보닝턴’이 쓴 퀘스트(Quest)란 제목의 책이 있다. - 추구나 탐구를 말한다. 
우리나라 등산의류 제조업체도 이 퀘스트(Quest)란 상표를 써는 곳도 있다. 
이 고생을 사서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란 의문에 
“산이 거기에 있었어 오른다”는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된다. 인간의 욕구는 산이 존재 
함으로써 생긴다 했다 그리고 궁극의 욕망은 인간이 정복 하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 했다.
보닝턴이 '퀘스트'를 통해 정리해내고 있는 인간 의 자연 도전사는 인간의 나약함과 
자연의 위대함, 그리고 다시 자연의 위대함에 몸을 던져 맞서고 동화할 줄 아는 인간의 
위대함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동화 할 때 비로소 위대한 것 같다.


나야 뭐, 이런 말 할 자격도 없지만 진정한 산행의 의미는 큰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위대한 자랑스러운 후배 “포터” 는 이 불경기에 삼시세끼 밥이라도 잘 
먹는지 걱정스럽다. 한 10년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언제라도 만나면 반드시 우리는 이이야기를 또 다시 안 할 수 없다. [疊疊山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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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6.14 13:48
    음... 나이가 들어가니
    혼자 다니는 것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겠습니다.
    근데 아무리 훑어봐도 자랑스런 '포터'가 될만한 후보자가 없으니 에궁~
    (부러움 부러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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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옹 2004.06.15 00:29
    ㅎㅎ 있잖아요...소주....^^*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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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gesse 2004.06.21 13:23
    이 노래 들으니 다시 더블마운틴님 얼굴이 눈에 선하네요.
    그래도 고생한 산행이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 포터님, 연락되시면 저도 한번 소개받고 싶습니다.
    사람이 역사가 깊어지다 보니 짐 짊어지는게 영 힘들어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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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疊疊山中 2004.06.22 16:14
    으흐흐흐흐~~~ 역사?/ 역사는 흐른다. 아마 지금쯤 그 자랑스러운
    포터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자기를 닮은 포터를 구하러 다니고
    있을 겁니다. 암튼 내 만나면 말은 전하리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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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gesse 2004.06.22 17:47
    썩어도 준치고, 한번 장사는 영원한 장사가 아닐런지..
    그리고 疊疊山中님, 삼십대가 지나셨던가요?
    하이고,,,, 벌써 가물가물하네^^*
  • ?
    섬호정 2004.06.23 14:39
    카타리~~! 노래에 취해 이방에 오래 머뭅니다~ 에고~ 오브오브넷집에 오기만 하면 내 휴게실 <하동송림카페>엔 손님이 들락거리지도 않응께요~ 왜 지리산엔 모두 음악애호가들 뿐인기여~수준도 웬만치 높아야 따라들 불르지라...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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