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2004년 7월21일자 국제신문 기사]

경남 하동군 화개면 모암리 문덕산 골짜기에 자리잡은 '달빛초당'. 화개장터를 지나 지리산 쌍계사 입구를 거쳐 칠불사 방향으로 3㎞ 가량 차로 달리면 국도 오른편에 자리잡은 슬레이트 집이 하나 나온다.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 무렵까지 부산시단에서 활발한 행보를 펼쳤던 김필곤 시인이 거거하고 있는 '오두막'이다.

부산시단의 한때를 장식했던 '풍운남아' 김필곤 시인이 지난 1995년 낙향해 '은둔의 시인'으로 9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그는 이곳 하동군 화개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부산으로 건너가 20년을 보냈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 뭐 할 일이 있겠어요. 노동하는 것이 최고지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 산중 아닙니까."

그는 산중생활이 참 고달프다고 한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노동의 재미다. 땀 흘리는 재미다.

김 시인은 요즘 날이 밝을 무렵인 새벽 4시면 일어난다. 그리고 검정 고무신을 싣고 '오두막' 앞마당에서부터 시작되는 1000평 정도 되는 차밭을 가꾸는 '노동의 시간'이 이어진다. 날이 저물 때까지 낫을 들고 일일이 풀베는 일을 한다. 여름 차밭은 그렇게 뜨겁다. 김 시인의 '차밭 노동'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 반복된다.

"겨울 동안은 매일 군불 때고 차를 건조시키는 데 필요한 땔나무를 장만하는 데 종일 시간을 보내지요."

김 시인은 직접 만든 온돌방에서 군불 때며 부인과 함께 겨울을 보낸다고 전했다. 그래도 '산중 노동'은 하루 종일 계속된다.

여름 땡볕에도 그는 풀베기 작업을 한다. 기계는 사용하지 않는다. 일일이 낫으로 '손노동'을 한다.

그렇게 9년을 보냈다. 그래서 시인의 손은 마디 마디 거칠어진 갈퀴손으로 변했다.

"도시에서 내쫓긴 사람이지요."

그는 '디지털문명'으로 잘 짜여진 도시문명에 익숙하지 못하고 그 도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해 결국 산중으로 흘러들어갔다. 산은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김필곤 시인. 그는 198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뒤 1983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까지 당선된 부산의 '재능있는' 시인이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던 그해 첫 시집 '겨울묵시록'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첫 시집 발간은 웃기는 일이지요." 그냥 객기를 부린 것 같다는 말이다.

김 시인의 창작활동은 그렇지만 대단했다. 그동안 엮어낸 시집은 10여권. 그는 정확한 시집 발간 수를 모른다고 말했다.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는 눈치다.

그는 그렇게 부산시단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시인이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 중반까지 '낭만의 거리'였던 중앙동 남포동 광복동 등지를 누비며 당대의 문사들과 술독에 빠져 '문학'을 붙잡고 밤새 울었던 시인이다.

시인은 직업도 갖고 있었다. 이색직업이었다. 철도 우체국에 19년 동안 근무했다. 열차를 타고 서울 목포 광주 부산 대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20년을 채우기 싫어 19년만 근무했다는 것이 시인의 설명이다.

  
시인은 차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스님과 함께 차 전문잡지 '다심'과 '차와 선' 등을 발간해 차 대중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도시를 떠나 산중생활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는 부산에서 '남의 술'만 축내고 살았다고 말한다.

"한 나절은 차 끓이고, 또 한 나절은 시를 쓰고 싶었지요."

시인의 이 말은 풍유가 아니다. 노동이다. 그는 산중에서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9년 전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직접 집을 짓고 땅도 개간해 차밭을 가꾸며 오늘까지 살았다. 시인은 그리고 또 그렇게 살 것이다.

시인의 '오두막'에는 사립문조차 없다. '오두막'에는 붉은 글씨의 '달빛초당'이 쓰여진 바위 덩어리 옆에 '백일기도중 외인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떡 버티고 있다. 내방객의 출입이 반갑지 않다는 시인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도둑맞을 물건이 없으니 오두막 입구에 대나무 하나 걸쳐 문을 닫고 열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기보다는 부자예요."

시인은 풍요로웠다. 산에는 야생동물이 있고 폭포도 있으며 새도 지저귀고 그 모든 것을 마음 속 재산으로 담고 살기 때문이다. '오두막' 앞쪽에 위치한 계곡(시인은 자신의 호를 따 '벽사천'이라고 명명했다')에는 물고기도 있지 않은가. 시인은 그 물고기를 "잡아 먹지는 않고 눈으로 먹는 고기"라고 표현했다.

한 달 전기요금이 5000원에 불과한 시인의 산중생활. 그 때문인지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 쌀 값 정도만 벌 만큼 차 상품을 재배해 내다 팔면 된다는 것이다. 차 상품 이름은 '달빛차'라고 한다.

길필곤 시인은 모든 것을 '노동'으로 해결하는 산중생활을 담은 생활시집 '산거일기(山居日記)-문덕산 달빛초당'을 지난해 6월 발표했다.

연작 형태인 이 시집에는 시인이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와 차나무와 과일나무를 가꾸며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담담한 어조로 전달하는 현장 시작품이 실려 있다.

모처럼 달은 밝고/밤 쏙독새 피나게 울고//파초잎 깔고 앉아/달빛차 끓일제면//한냇물 그 여울소리는/문덕산을 다 적시네.//견우성 직녀성도/비스듬히 기울었고/바람에 일렁이는/파초잎 달그림자//도연명 그 시 한 구절도/찻잔 속에 떠오른다('산거일기-파초잎 깔고 앉아' 전문)

"부산에서 생활할 당시 고향이 그리웠는데 여기서는 부산이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막상 고향에 오니 '고향'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는 그러면서 20년 부산생활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산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한다. 시인은 그렇게 '산'이 되어 있었다.
<강춘진기자>
  • ?
    솔메 2004.07.21 17:53
    지난 봄 춘분절에 여산선생님과 함께 만나 뵌
    벽사 선생님의 半 神仙의 생활모습이 더욱 그립습니다.
  • ?
    허허바다 2004.07.21 18:45
    그렇군요... 벌써 봄은 이미 지나고
    여름도 중간을 넘어섰습니다.
    정말 "쏜 화살 같은" 쏜살같이 휙 지나가는 세월입니다.
    그간 잘 지네고 계신지...
    찾아 뵙고 인사를 여쭌다는 것이 벌써....
  • ?
    김현거사 2004.07.21 19:52
    요즘 개울 건너에 집을 한채 짓는데 7월 중순이면 준공이라더군요.
    논이 있어 거기에 연을 심고 무공해 미나리 밭에 미꾸라지 키우자 약속했는데,.....
    언제 가을에 텃밭 싱싱한 채소 따다가 막걸리 안주 삼아 달밤 개울가에 앉아 시 한번 읊었으면 딱 좋겠네.
  • ?
    허허바다 2004.07.21 23:25
    춘분의 "ㄴ"字 하나 뚝 때어내 버리고
    그럼 그날 술잔에 달을 담아... 예? 아! 알겠습니다 ^^*
  • ?
    산유화 2004.07.22 10:23
    춘분절을 지난 추억이으로 회고하니 세월 참 빠르네요.
    김필곤 선생님의 신선 같으신 모습 눈에 선합니다.^^
  • ?
    오 해 봉 2004.07.22 22:06
    여산선생님 칼럼에서 여러번읽고도 기회가닿지않아 못가봤습니니다,
    금년가을쯤엔 꼭한번 가볼렵니다,
  • ?
    섬호정 2004.07.23 13:01
    요즈음, 시조방에 모여앉아 벽사 김시인님의 수제차 '달빛차'를 신선하게 마십니다. 어느해, 5월에 늦차를 만들던 목압마을에서 일~
    김시인님 달빛초당에 들려 시조 한수씩 만들어 안고 올적에, 백운장에서 쌍계사 명물 사찰국수를 나누며 귀한 동요 한곡을 들었습니다~
    꼭 학예회에서 수줍게 독창하는 소년1 그 모습이었던 시인에게 모두 반해버렸습니다........ㅎㅎㅎ나중엔 모두 한낮의 대 합창이 되었지만..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 장 노래에 스스르 눈을 감고 잠이 듭~니다..
    어느 여류는 오래 찔끔 거리기도 하더만요..고향의 섬진강변 초임지 학교 4학년 교실 아이들 목소리와 내 서툴던 풍금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저도 한 찔금 했던일~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여산선생님 귀한 사연 고맙습니다. 신선한 추억입니다 .합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지리산의 추억 4 file 운영자 2001.09.15 9606
109 또 가고 싶다 4 느린걸음 2004.11.12 2056
108 나의 변명~고사목 9 막사발 2004.11.12 2021
107 장터목에서 본 반야의 석양~불놀이 7 막사발 2004.11.11 2344
106 시와 함께 하는 지리산 7 막사발 2004.11.09 2024
105 이곳이 어딘지 아시는 분이 계실런지요? 10 file 쉴만한 물가 2004.10.07 3207
104 고마운 분 찾습니다.(9월27일 아침 지갑찾아주신분) 5 억새 2004.10.04 7224
103 가을풍경이 그립습니다... 11 하이디 2004.09.22 2443
102 물(人)좋은 지리산(13) - 궁극(窮極)의 등산화(下) 9 疊疊山中 2004.09.22 2644
101 지리산을 사랑하시는님들 이런것도 올려도 되나요? 15 하이디 2004.09.19 2652
100 지리연가(가을편지) 9 file ♡.♧ 2004.09.10 2559
99 전역하면 꼭 가야쥐~~~~ 6 김희득 2004.08.26 2001
98 고향의 품 2 오잎크로버 2004.08.19 2441
97 지리산 그 산빛 5 도명 2004.08.06 2300
96 물(人)좋은 지리산(12) - 궁극(窮極)의 등산화(中) 7 疊疊山中 2004.07.28 3143
95 물(人)좋은 지리산(11) - 궁극(窮極)의 등산화(上) 3 疊疊山中 2004.07.23 2962
» 산이 된 시인-화개동천 달빛초당 벽사 김필곤님 7 如山 2004.07.21 2385
93 물(人)좋은 지리산(10) - 여 선생님 8 疊疊山中 2004.07.17 3029
92 그 강물 ! 4주년의 회고... 2 섬호정 2004.07.14 2042
91 물(人)좋은 지리산(9) - 김技士 10 疊疊山中 2004.07.12 2522
90 제가 2학년때 아빠와 둘이 다녀온 지리산에서 느낀것을 글로 씁니다 5 전형기 2004.07.10 24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