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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질문과답변>김수훈의 초보산행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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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초보라는 박미경 씨가 금요일 아침에 갑자기 못 간다고 연락이 와서 3명(일산의 정민기 씨, 여주에서 오는 전은선 씨)으로가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한파와 폭설을 자꾸 얘기하고 있고, 지리산 사이트에는 입산통제라는 글씨가 자꾸 나타난다. 관리사무소에도 전화해 보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19시에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출발하기로. 23시, 영등포 역에서 인사를 나누고 캔맥주로 장도를 기원하는 건배.
하동 역에서 터미널 가는 방향으로 3백 미터쯤 가니 불 켜진 식당이 있다. 아마도 공사장중장비 인부들 때문에 일찍 문을 연 듯(항상 일찍 문을 여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음). 터미널 옆의 재첩국 파는 할머니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동에서 청학동까지 택시는 미터요금으로 가게 돼 있는데 32,000원이 좀 넘게 나온다. 타기 전에 흥정을 하고 3만원에 갔다. 쌩쌩 달리던 택시는 청학동에 들어서서 길에 깔린 눈 때문에 빌빌 대더니 급기야는 버스 정류장도 채 못가서 기권, 내려서 걷게 한다.
매표소 직원은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장비 갖춘 상태를 확인하고는 마지못해 통과시킨다. 간발의 차이로 입장료를 낸 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이게 나중에 세석산장에서 큰 힘이 될 줄이야! 살포시 깔린 눈에 첫 자국을 찍으면서 기분좋게 올라가는데 토끼발자국 같은 자국만이 이따금씩 나타났다가는 산죽 사이로 사라지곤 한다. 결국 중간에 잠깐 딴 길로 새는 바람에 5분 정도 되돌아왔는데, 1.7km 거리의 이정표에 이르니 예정보다 30분이나 늦었다. 삼신봉까지는 계속 비슷한 상태. 삼신봉에서는 엄청난 바람이 불어대서 머물러 있기가 곤란, 주능선의 풍광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바라보는 주능선의 파노라마가 이번 산행의 알맹이였었는데, 내 말을 믿고 따라와 준 일행들에게 면목이 없다.  결국 10분도 안돼서 걸음을 재촉.
남부능선의 산죽은 여전한데 눈을 잔뜩 이고 있어서 지나가다 머리나 배낭으로 건드리게 되면 우두둑 눈을 쏟아붓는 통에 지팡이로 두드리고 가기에 바쁘다. 석문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중간에서 눈밭에 어정쩡하니 쭈그려 앉아 점심을 먹는다. 나는 콩통조림(서부영화에서 보니까 멋있어 보여서)이고, 민기 씨는 부인이 싸 준 유부초밥, 은선 씨는 서양식으로 빵이다. 눈보라는 계속 되고 길을 찾느라 더듬대는 통에 속도는 자꾸 늦어진다. 석문을 지날 때는 1시간 이상이 지체되었다. 장터목산장까지 가야 하는데… 야간산행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주능선은 길이 잘 나 있겠지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대성골갈림길에서부터 눈의 깊이가 갑자기 깊어지기 시작한다. 금방 무릎을 넘더니 허벅지를 지나 허리 가까이까지 들어가는 곳도 수시로 나타난다. 러셀이란 것이 얼마나 힘드는 작업인지 실감난다. 다리를 들 수가 없어서 그냥 밀고 나가는데 마치 밀가루반죽 사이를 헤쳐나가듯  저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분명 눈의 밀도는 물보다 작을텐데 어째서 물속에서 걷는 것보다 더 힘이 들까?
음양수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눈짐작과 간간이 보이는 리본을 찾아 눈을 헤치고 간다. 이제는 장터목까지 가는 건 포기다. 시간도 안 되겠지만 체력도 바닥이다. 배도 고프다. 세석산장의 취사장에서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 소주 한 잔 하는 그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 드디어 샘터가 보인다. 샘터에서 취사장으로 가는 길이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눈더미가 쌓여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 싸늘한 취사장 안에는 지팡이 두 개를 포개놓은 달랑 한 팀의 사람없는 짐만 있다.(나중에 알고 보니 거칠부의 팀) 사무실에 가서 숙박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공단 직원이 '지리산 전체가 입산통제 되었는데 어떻게 들어왔느냐? 통제 규정을 위반했으니 50만원 벌칙금을 내라'고 욱박지른다. '우린 청학동에서 엄연히 입산이 가능하다는 직원의 얘기를 듣고 입장료도 정당하게 내고 들어왔는데, 무슨 벌금이냐!'고 맞받아 치긴 했지만 기분이 영 안 좋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더니 먼저 와 있던 팀(거칠부)이 저녁 먹으러 가더니 9시 소등시간이 되어서야 들어온다. 온풍기는 계속 돌아가는 것 같은데, 여벌 옷을 껴입고 담요 두 장을 덮었는데도 추워서 자꾸 잠이 깬다. 새로 산 오리털침낭을 안 가져온 게 엄청나게 후회된다. 밤에 열 번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갔는데, 샘터에 파이프가 얼어서 물을 받을 수가 없단다. 할 수없이 계란프라이 두 개에 어제 점심에 먹다남은 빵으로 대신하기로 하는데, 식용유도 얼어서 기름없이 계란프라이를 했다. 계란이라도 6개를 가져온 게 천만다행이다고 싶었다.
날씨는 여전하다. 7시 반이 되어서 날이 겨우 밝아지자 바로 하산을 시작한다. 어제의 경험으로 봐서 거림으로의 하산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제 거칠부 팀이 올라온 자국이 약간이나마 있어서 도움이 된다. 30여분 내려오니 거림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중년남자 두 명이 올라온다. 세석의 상황을 얘기해 주고 계속 내려가는데 그 사람들 발자국 덕분에 길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수고는 않아도 된다. 예전 기억으로는 상당히 순탄한 코스였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바위가 많지? 모두들 발목이 계속 뒤틀리면서 허둥대다가 결국 민기 씨가 급경사 비탈에서 미끄러져 하마터면 10미터 정도 되는 계곡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3시간을 뒤뚱거리며 내려와 매표소에 도착하니 5∼6명의 중년 남자들이 모여있는데 입산통제라고 모두들 돌려보내고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시각을 확인하고는 막걸리 하산주로 무사하산을 자축했다. 이제 서울가는 길이 정체되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아, 다음 주에는 어느 코스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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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희 2003.01.07 18:17
    김수훈님, 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산행기를 언제쯤 올리시려나 궁금했었는데...
    무사히 산행 하신 것 축하드리고요,
    백두대간 산행기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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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3.01.07 19:06
    김수훈선생님 하필폭설에 대단히 고생했군요.이번산행도 좋은추억으로 간직되겠읍니다.수고하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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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수 2003.01.08 10:14
    '눈 속을 헤엄쳤다'는 말이 꼭 맞군요. 김수훈님의 이 산행기가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군요. 눈보라 등 악조건 속의 산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 교훈을 재미있고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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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3.01.08 11:31
    '밀가루 반죽을 밀고가듯...' ^^ 허리에 감기는 눈속을 뚫고 헤엄을 치듯 전진하기란 참으로 어렵겠네요..그런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훌륭한 적설기산행 교과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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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기 2003.01.09 11:54
    고생하셨습니다.
    김선생님의 용기 대단하고 부럽습니다.
    이번 산행의 추억, 고생, 깊이 간직하렵니다.
    건강하시고 다음에 신행 할 기회가 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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