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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4.01.29 13:05

홀로 보낸 아쉬움

조회 수 162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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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 2004년 1월 17일~18일
코스 : 중산리-로타리-천왕봉-장터목-중산리

금요일 저녁. 그렇게도 바랬건만....

차창 밖으로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궂은 날씨를 탓하며 엄한 버스 손잡이만 힘껏 당기고 있다.

"♩~♪~♬" 울리는 핸드폰을 얼른 받으니, 갑작스런 선배의 동행 제안.

'안간다고 하구선...' 그래도 선배 역시 오랫만에 가보고 싶었나 보다.

아침 7시에 노포동 터미널에서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서 급히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시간은 벌써 새벽 1시... 큰일이다. 빨리 자야지.

아~ 여기서 비극(?)이 시작될 줄이야 -0-

"때르르릉~~ 때르르릉~"

부시시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6시 30분.

화들짝 놀라 급히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아직 집이라는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8시에 출발하기로 살포시 딴에는 애교(?) 섞인 작업을 넣으니 OK!!

부시시 급하게 세수하고 얼른 가방들고 집을 나서니 시간안에 버스터미널에 도착.

급히 나와 뭔가 찜찜한게 있었으나, 별일 있으랴 일단은 선배와 버스에 올라탔는데...
(역시나 제일 중요한걸 빠뜨리고 말았으니...(__*)

여차저차하여 중산리에 도착해서 매표소를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전날 비가 와서 일까,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우리 외에 사람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조금을 올라가니 아가씨 한명이 혼자 산을 오르고 있다.

"혼자 왔어요?"  "네.."

그리곤 또 터벅터벅 잘도 걸어간다.

그녀--- 선배---나  이렇게 어느정도 간격을 두고 계속 오르는데...

"어, 거기 길 아닌데, 그쪽으로 가면 안돼요!"

목소리가 나는 곳을 눈으로 쫓으니 그녀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었고,

아주머니께서 그녀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계셨다.

눈 내린 길을 앞만 보고 가다보니 주욱 가버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배이고, 걱정도 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

그 뒤로 그녀와 선배, 나 이렇게 셋이서 동행 아닌 동행을 하며 올라가는데...

선배가 가끔 이것저것 그녀에게 물어보면  "네.., 아니오.. "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우리와 걷는 페이스가 틀려서인지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되고 로타리대피소에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와아~ 2주 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는 전혀 딴판으로 온통 하얀 동화속의 나라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곳이 화장실인줄 어떻게 알까...^^;]

우선 커피 한잔하기로 하고 컵을 찾으니... 어라? 컵이..

둘 다 컵을 빠뜨리고 온 것이었다. 덕분에 멀쩡한 코펠뚜껑에 커피를 타서 마시니 그 맛도 제법 그럴싸하다 ^^;

서로 어이없어 하며 라면물을 끓이고 있으니 좀 전의 그녀가 도착한다.

그녀의 점심은 김밥이었다. 라면을 먹을려고 수저를 찾으니... 어라.. 내 수저가..-0-

역시 급하게 나와 찜찜하더라니, 컵과 수저를 안가지고 온것이었다. ㅠㅠ

그녀가 살며시 웃으며 나무젓가락 두개를 건네준다 ^^;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렇게 셋이서 김밥과 라면을 나눠 먹으며 소박한 한끼를 보낸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선배와 아가씨는 먼저 출발하고, 난 법계사에 들러 물을 보충하며 너무나도 예쁜 절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아시죠? 적멸보궁입니다 ^^]

콘크리트의 아이젠 소리가 경내를 거스를까 조심조심 길을 나선다.

왜 그럴까? 꼭 설산에 오를때마다 반복되는 행동.. 나만 그런건 아니겠죠 ^^;



급히 뒤를 따라 오르니, 개선문. 잠시 쉬는 그녀를 몰래 카메라에 담았다.
(왜그랬을까 ㅡ.ㅡa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버렸당 (__* )
(그녀의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양해바랄께요 ^^;)



터벅터벅 걸으며 말을 건넸다.

나    : "어디서 왔어요?"
그녀 : "광주에서요"
나    : "산을 오르신지 오래 되셨나요? 혼자오기 쉽지 않은데 ^^"
그녀 : "아뇨.." (그냥 미소만 짓는다 ^^;)

뭔가 사연이 있는듯 하지만 실례일것 같아 다시 둘이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선배는 저만치 뒤에 힘들게 오고 있다 ^^;)



산에서 만난 눈으로 만들어진 불가사리 ^^;



예쁜 울타리를 거쳐



드디어 도착한 천왕봉... 아무도 없다..-0-

아쉽게도 시계가 좋지 않아 능선을 볼 순 없었지만... 조용한 천왕봉을 접수(?)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녀는 사진기가 있었는데, 찍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기를 압수(?)해서 천왕봉 옆에 다소곳이 서있는 그녀를 담아줬다.

그렇게 잠시 있으니 선배와 또 다른 등산객 4분이 올라온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그녀와 둘의 천왕봉 사진을 찍으며 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조심조심 천왕봉을 떠나 장터목으로 향하니 온통 눈밭이다.



부정한 자는 오를 수 없었다는 통천문을 지나 발걸음은 어느새 제석봉까지 와있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난 지리산 많은 길 중에서도 제석봉 울타리길이 가장 마음에 든다.

황량한 삭풍이 부는 제석봉..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항상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터벅터벅 장터목에 도착하니 저녁 6시 즈음...

선배는 여기서 그만가자고 한다. 그녀에게 물으니 세석까지의 길을 묻는다.

나 역시 쌍계사까지 가려면 오늘 무슨 수를 쓰든 세석까지는 가야하지만, 선배는 드러누워버린다.
(실제로 누운건 아니고 표현이 그렇다는 겁니다. 즉 더이상 못간다라는... ^^;)

아저씨 한분도 아가씨 혼자 가는건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그녀 긍정도 부정의 대답도 하지 않은채 가끔 나를 본다.

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렇게 실강이를 벌이다 그녀는 결국 세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쌍계사에 대한 욕심과 혼자 보내는 불안감까지 엄습하여 뒤쫗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선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무사히 세석까지 가기만을 바라며 저녁을 짓는다.

추위에 쌀을 씻으니 손이 금새 얼어버린다. 쌀을 씻고 올라오니 선배는 맞은편 사람들과 벌써 라면 한그릇에 맥주까지 얼큰하게 한잔하고 있다.

산에 오르며 느끼지만 이런게 정이 아닐까 싶다.

아침밥을 해놓고 잠자리 준비를 한다. 선배는 침낭을 가지고 왔는데, 약간 부실해보이는것이 새벽엔 추울것같다.

가지고 온 에어매트리스를 펴고 담요를 한장 빌려 잠을 청해본다.
(침낭은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내 45L 가방에 들고 오기는 역부족이었다)

시계를 보니 8시 즈음.. 세석으로 떠난 그녀의 안부를 걱정하며 잠이 든다. zzZ

새벽 4시쯤 되었나.. 부스럭 부스럭.. 한둘씩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나 역시 쌍계사로 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선배를 흔들어 깨운다.

이런... 선배는 시계를 보더니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어쩔 수 있나.. 산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선배의 몸상태를 체크하고 나도 덩달아 담요속으로 쏘옥~

아침 6시.. 미리 해놓은 밥을 사골우거지국에 말아 후딱 해치우고 짐을 챙기고 일어나니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배는 대피소 안에서 또다시 꿈나라로.. ^^;



카메라를 들고 나와 담아보지만.. 역시나 카메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름위로 일출이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선배와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장터목으로 하산을 시작하니.. 옆자리에 주무시던 두분이 먼저 내려가고 계셨다.

옆자리 두분 : "천왕봉 안가요?"
나 : "저희는 어제 갔다왔어요"
옆자리 두분 : "그렇구나. 우리는 추워서 바로 내려갈려구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선배와 두 분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갈곳을 가지못한 아쉬움이었을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한걸음 한걸음 조용히 혼자 밟는 눈길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 ^^

얼마쯤 내려왔을까? 짙은 안개에 여차하면 넘어질 판이다.



하얀 돌무더기를 지나고



통나무 다리를 터벅터벅 걸어서 내려간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눈의 착각일까?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마치 노천온천에 온듯하다.

아침에 미뤄둔 세수를 하려 손을 담그니... 정신이 반짝 들 정도로 시원한 것이 정말 좋다.



계곡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망울을 한컷 담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느덧 눈은 듬성듬성 빙판길도 없는 돌길이 계속된다.

조심조심 칼바위 아지트를 눈앞에 두고 아이젠을 풀었는데...

성급한 판단이었을까, 스틱으로 지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젖은 풀을 밟고 미끌.. "꽈당~"

에구에구.. 민망해서 벌떡 일어나 조심조심 한발을 내딛는 순간 또 다시 "꽈당~"

같은 자리에서 연이어 두번이나 넘어지다니..

칼바위 아지트 갈림길 바위에서 쉬고 있는 단체 등산객들의 눈길에 또 한번 쪽팔림이...(__*

얼른 다리를 건너 내려가니 선배는 벌써 매표소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터벅터벅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운이 좋았는지 11시 차가 마침 도착해 있었다.

진주에 도착해서도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노포동행 버스를 탈 수 있었고..

2시 조금 못되어 부산에 도착.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부대(부산대학교)앞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병으로 간단히 점심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장비를 정리하고 카메라를 보니, 세석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과 쌍계사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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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불패 2004.01.29 17:38
    잘 읽었습니다..
    나도 지리에 가야하는데.
    언제..쯤..
    맘뿐이네요..
  • ?
    소주한잔 2004.01.30 09:39
    눈이 소복이 이쁘게 내려와 앉았네요...정말 화장실 사진은^^ 누가 저길 화장실이라 생각하겠어요..천왕봉 표지석 음각이된 글자 사이에 눈이 비집고 들어가 있네요..^^ 사진과 글 고맙게 보고 갑니다.
    즐거운 산행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
    산유화 2004.02.01 15:27
    눈이 저렇게 많이 온 지리는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참 좋으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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