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를 향해
잠자리에 들면서 마신 맥주가 나를 깨운다. 새벽 3시. 무거운 다리를 끌고 화장실은 찾아 나서니 높은 산의 새벽공기는 역시 차다. 서울은 오늘도 열대야인가? 무거운 걸음이 과연 내일 화엄사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을 불러 일으킨다.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상당히 넓어졌다. 평상시의 한배 반은 되지 싶다. 비좁은 방, 습기찬 침낭, 맥주, 지난 이틀간의 고행이 어우러져 빚어낸 작품이 아닐까? 여하튼 어제 보다는 일찍 일어났고 식사 후 남은 햇반 3개와 두루말이 휴지 두개를 종이컵에 담아 주는 원두커피 두 잔과 산장 매점에서 물물교환. 옛날 맛이 아니다. 엄청 손해 본 기분이다.
이제부터 화엄사까지 13.3km 남았다. 아직도 배낭의 무게는 줄지 않고 200m(절대 믿을 수 없다) 계단 길을 시작으로 종착역을 향한다. 화개재에 다시 올라서니 벌써 일대는 시끌벅적하다. 새벽에 화엄사나 성삼재에서 출발한 사람, 뱀사골에서 올라 온 사람. 가야지
오른쪽으로 10여분 걷다 보니 시작부터 걱정했던 계단이 보인다. 공포의 550계단.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아마 두번째 멈추어 섰을 때일 것이다. 누가 친절하게 나무 손잡이에 볼펜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330개 남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번 헤아려 볼걸. 정확히 36분(디지털 카메라가 확인하는 시간 기준임) 걸려 550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삼도봉(三道峰)이다. 그래도 천왕봉 마지막 100 여 미터를 오르는데 40분 걸린 것에 비하면 양반인데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쌓인 피로 때문이리라. 계단은 나의 의사결정권을 뺏어간다. 경사도 일정하니 보폭을 고정시킨다. 그래서 괴롭다. 같은 경사의 같은 거리를 가는 것 보다 두 배는 힘들게 느껴진다. 삼각뿔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니 경남, 전남, 전북 삼도를 다 밟는 셈이다.
이제 노루목으로 가야 한다. 삼도봉에서 내려 서니 비안개가 밀려 온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바람이 선선하고 햇볕도 내려 쪼이지 않아 한결 상쾌하다. 얕은 관목 숲 사이로 좁다란 길이 다정스럽고 선선한 바람도 정겹다. 아마 선비샘-벽소령 구간과 함께 전체구간에서 가장 쉽게 걸었던 구간이지 싶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일단의 성인 무리들이 왁자지끌 시끄럽다. 아침에 성삼재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지 싶다. ‘반야봉을 간다, 만다. 다녀 올 테니 기다려라.’–아직은 힘이 남아 있지, 그럼.
우리 둘 그 누구도 지리산 제 2봉인 반야봉에 대해서는 언급 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 건너 뛰어야지, 제1봉을 다녀왔는데. 계속되는 정상의 능선길. 삼도봉(1,499m)에서 노고단(1,507m)까지는 표고차가 거의 없고 그 사이에 높낮이 차가 큰 곳도 별로 없다. 조금 걷다 보니 얼짱 20대가 앉아 무엇인가를 꺼내 놓는데 약식이다. 옆에는 제법 휴대용 ice box까지 있다.
“수고하십니다. 약식이네요”
”좀 드시겠습니까?”
”지리산 처음 인가요”
“네”
”그 ice box 부담되실텐데” 잘 얻어 먹었다.
좀 더 걷다 보니 일단의 초등학생 무리들. 심지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김치통을 손에 들고 간다. 누가 리더인지 모르지만 고생길이 훤하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이제부터 수시로 찾아 올거다. 물어 보니 더구나 종주한단다.- 어딘가에 몰래 버려 이산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겠구나
임걸령에 도착하니 꽤 넓은 공터에 샘이 있다. 친구가 물을 뜨러 간다. 나의 무릎은 통증 수준은 아니지만 여하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제 불필요한(?) 이동은 친구의 몫이다. 어제 얻은 담배도 동이 났다. 그곳에서 만난 한 청년에게 애걸해서 네 개피 얻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앞으로 담배 구걸은 자기 몫이라고 분명 일렀건만---. 어차피 각자의 특기를 가지고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이고 보면 큰 불만은 없다. 연기를 뿜고 있으니 물을 떠 온 친구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징한 넘
그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짐에 대한 이야기 하던 중
“너무들 먹는 것에 집착해요. 심지어 언젠가는 기타 메고 가는 사람도 봤어요”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인 여러분 “짐은 작고 가볍게 꾸립시다” 그런데 필수 장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려면 돈이 좀 듭니다.
이제부터 별 고통없이 노고단까지 간다는 말에 희망을 가지고 돼지평전을 거쳐 노고단에 도착하니 11시 56분 4시간 30분정도 걸렸다. 3시간에 와야 정상인데 무리하지 않으려고 속도를 내지 않았고 오는 중에 우리는 이미 성삼재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 뜨거운 물에 씻고 황기 닭백숙에 소주로 마무리 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다.-야무진 계획이었다
별천지다. 천왕봉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여행사에서 단체로 왔는지 인원 점검하고 난리다. 저 멀리 보이는 석탑. 그 뒤로 뭐가 보이는지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사진 한장 찍고. 이제 대피소로 가야 하는데 길은 수 갈래, 이정표도 없다. 구두 신은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이 길은 짧은 등산로, 저 길은 긴 차도란다. 이미 한 두 시간 전부터 서서히 발의 온도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돌이 없는 흙길이 푹신한 카페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지 오래다. 의심의 여지없니 도로길을 택한다. 조금 걷다 보니 길가 한 모퉁이에 중년의 세사람이 부른다. 술판이다. 마늘장아찌에 소라장아찌까지, 한잔 하란다. 둘이서 한잔씩 걸식. 맛있다. 정상쪽으로 옅은 운무가 휘날리는 가운데 원추리 꽃이 노랗게 피었다. 참 예쁘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차가 보인다. 3일만에 보는 기름 먹는 놈이다. 노고단 안부 이후로 이미 환속한 기분이다. 사람들 복장, 얼굴의 생기가 다르다. 취사장에 들어가니 반듯한 취사대에 콸콸 넘치는 수도꼭지가 대여섯개 보인다. 남은 부식 다 처리해야 한다. 마늘 다진 것 다 풀어 라면 두개 끓이고 햇반 데우고 친구 부인이 싸준 더덕 무침에 성찬이다.-더덕무침 일찍 발견했어야 하는데, 참 맛있다.- 들고 다닌 삶의 노폐물 버리고 남은 깐 마늘 젊은 후배들에게 적선하고 나니 - 내가 얻어 먹은 훈제 장어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다- 이제 배낭이 가볍다. 업보를 덜어 낸 탓이다. 버림의 미학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가볍게 콧노래 부르며 내려간다. 또 두 갈래 길. 결심을 해야 한다.
원래 지리산 종주란 화엄사든 대원사든 동쪽이나 서쪽 끝에서 시작하여 반대편 끝으로 내려와야 한다.
코스 1)성삼재까지 차편 이용-등정 길이 없으므로 종주로 인정하기 가장 힘들다.(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코스 2) 성삼재에서 완료-하산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으므로 80% 쳐 주어도 사실 과분하다. 코스 3) 천왕봉에서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하산-대원사 길보다는 다소 시간은 적게 걸리고 거리도 짧지만 대원사 방향이 완만한 것을 감안하면 90%는 쳐 주어도 무리가 없다.
“무릎 어때?” 친구가 묻는다.
“좀 쉬니 견딜만한데---“
“어쩔레”
“일단 성삼재까지 가서 결정하자”
“OK”
차도를 따라 성삼재까지 걷는다. 이정표가 보인다. “화엄사”
“가자. 최후의 10 Cm 까지 걷자. 아까워서 포기 못한다”
“그래 가자”
돌계단이다. 한 30분정도 걸었을까?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후렴 소리가 나온다. “으” 그렇다고 다시 그 길을 올라 가기는 더 싫다. 계속 되는 계단 하산 길. 이제는 오른쪽 관절을 상하 15도 이상 굽히기 힘들다. 게처럼 옆으로 걷기 시작한다. 2002년 법천골 코스로 하산하던 악몽이 망령처럼 살아 난다. 그때는 아들이 큰 원군(?)이 되어주었는데---.입을 다문다. 주먹을 쥔다. 친구가 배낭을 달란다. 어차피 지금은 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사양한다. 등산로를 벗어나 지팡이를 하나 주워 온다. 고맙다.
몇 번 구호를 외쳤다.
“실실 가보자. 가야지 우짜노. 가다 보면 안 가겄나”
여지것 어느 구간에서도 물이 모자란 적은 없는데 노고단대피소에서 화엄사로 하산할 계획이 없었기에 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갈증은 심해지는데 물은 줄어 들고 그 누구도 계곡쪽으로 물을 뜨러 갈 엄두는 나지 않고 ----. 발은 뜨거워지는데 흙은 없다. 죽을 맛이다. 올라오는 사람에게 묻는 말은 하나 ”평지까지는 얼마나---?“
Lap time check.
18:50분 구례구 역에서 출발하는 예약 기차를 타기가 만만치 않다. 남원터미날에 전화하니 10시20분 막차란다. 그래 남원까지 버스타자. 버스 없으면 택시타자. 천천히 걷자.-친구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다.
중간에 10대 몇 명이 뛰어 다닌다. 그래 니들은 좋겠다. 나도 처음부터 다리 끌고 다니지는 않았다. 참샘이다. 완전 사막의 오아시스다. 한껏 물 들이키니 혼자서 운동화 신고 온 아저씨 왈”다 왔어요”나란이 걷다 아스팔트가 나타난다. 환호성을 지른다. “고생 끝 행복 시작”(글쎄)
계곡을 가로지르면 빠른 등산로, 차도 따라 가면 좀 더 걸린단다. 당근 카페트가 깔린 길이지. 그런데 이 3km가 또 장난이 아니다. 발이 점점 뜨거워진다. 눈에 들어 오는 것 아무것도 없다. 경사는 없는데. 더 이상 참기 어렵다 싶을 때 화엄사 앞 주차장이다. 화엄사에 들러 참배도 하고 그 예쁜 가람도 구경해야 하는데. 여지껏 반경 10Km 이내의 국보를 지나친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다리를 지나 차도에 오르니 인도에 나무를 깔고 있다. 아스팔트보다는 푹신하겠지. 걷는다.힘들다. 발이 너무 뜨겁다. 주저앉았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지나가는 택시의 유혹이 양귀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공사중인 아저씨가 발걸음으로 뭘 재나 본데,
“잠깐만 일어 서 주시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못 일어 납니다.”
택시를 타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끊는다, 최후의 10 Cm까지- 빌어 먹을 놈.
보인다.
화엄사 일주문이 보인다.
매표소가 보인다.
종착역이다.
대장정의 끝이다.
그래 나는 해냈다.
긴 시간이었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참고 이겨낸 시간이었다.
6시13분. 노고단대피소에서 4시간23분 걸렸다. 안내서에는 3시간도 채 안 걸리는 것으로 나와있는데---. 38.2 Km를 꼬박 3일 걸려 걸었다. 걸은 시간만도 족히 25시간은 되지 쉽고, 두 밤을 산에서 잤고, 6끼니를 해먹었고 “실실 가보자. 가야지 우짜노. 가다 보면 안 가겄나”를 수없이 외치며 왔다.
민박을 겸하는 식당에서 3일만에 몸을 씻고 닭백숙에 소맥 폭탄 한잔. 이 한잔을 마시기 위해 이곳까지 왔던가? 둘은 별로 말이 없다.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할말이 참 많을 듯도 한데. 힘이 없는 탓이리라.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걸었을까?
왜 걸었을까?
또 걸을 수 있을까?
무엇을 얻었는가?
또 무엇을 잃었는가?
숨이 턱에까지 찰 때면 한가지 방법만이 유효하다. 머리를 숙이고 다음 발걸음을 놓을 자리만 보고 뚜벅 뚜벅 옮기면 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힘이 든다고 고개를 들어,
얼마나 남았을까?
과연 그곳에 도달할 수나 있을까?
저 멀리 무엇이 있을까?
과연 그 곳에는 행복과 평화가 있을까?
그런 상념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발걸음은 너무나 무겁고 힘들어 진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꾸준히 걷고 걷다 보면 그곳에 이르리라.
좀 늦게 도착하면 어떤가? 못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도달하지 못하면 어떤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산골짜기 사이사이에 조금씩 남은 땅을 일구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면 산을 사랑할 일이지 않은가? 언젠가 Chicago 113층 빌딩-Sears Tower 꼭대기에서 사방을 둘러 보아도 지평선뿐인 것을 보곤 이유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있다. 이제는 다시는 그런 근거없는 열등감은 없을 것이다. 그 곳에서 태어나 사람은 절대 지리산을 종주할 수 없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한국에 태어나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듯해 뿌듯하다.
만 42의 나이에 첫 지리산 등정을 종주로 완수한 친구에게 찬사와 감사를 전한다. 다시 지리산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들이 산통의 괴로움을 다른 기쁨으로 승화시켜 또 아이를 낳듯 또 찾지 싶다.
잠자리에 들면서 마신 맥주가 나를 깨운다. 새벽 3시. 무거운 다리를 끌고 화장실은 찾아 나서니 높은 산의 새벽공기는 역시 차다. 서울은 오늘도 열대야인가? 무거운 걸음이 과연 내일 화엄사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을 불러 일으킨다.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상당히 넓어졌다. 평상시의 한배 반은 되지 싶다. 비좁은 방, 습기찬 침낭, 맥주, 지난 이틀간의 고행이 어우러져 빚어낸 작품이 아닐까? 여하튼 어제 보다는 일찍 일어났고 식사 후 남은 햇반 3개와 두루말이 휴지 두개를 종이컵에 담아 주는 원두커피 두 잔과 산장 매점에서 물물교환. 옛날 맛이 아니다. 엄청 손해 본 기분이다.
이제부터 화엄사까지 13.3km 남았다. 아직도 배낭의 무게는 줄지 않고 200m(절대 믿을 수 없다) 계단 길을 시작으로 종착역을 향한다. 화개재에 다시 올라서니 벌써 일대는 시끌벅적하다. 새벽에 화엄사나 성삼재에서 출발한 사람, 뱀사골에서 올라 온 사람. 가야지
오른쪽으로 10여분 걷다 보니 시작부터 걱정했던 계단이 보인다. 공포의 550계단.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아마 두번째 멈추어 섰을 때일 것이다. 누가 친절하게 나무 손잡이에 볼펜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330개 남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번 헤아려 볼걸. 정확히 36분(디지털 카메라가 확인하는 시간 기준임) 걸려 550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삼도봉(三道峰)이다. 그래도 천왕봉 마지막 100 여 미터를 오르는데 40분 걸린 것에 비하면 양반인데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쌓인 피로 때문이리라. 계단은 나의 의사결정권을 뺏어간다. 경사도 일정하니 보폭을 고정시킨다. 그래서 괴롭다. 같은 경사의 같은 거리를 가는 것 보다 두 배는 힘들게 느껴진다. 삼각뿔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니 경남, 전남, 전북 삼도를 다 밟는 셈이다.
이제 노루목으로 가야 한다. 삼도봉에서 내려 서니 비안개가 밀려 온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바람이 선선하고 햇볕도 내려 쪼이지 않아 한결 상쾌하다. 얕은 관목 숲 사이로 좁다란 길이 다정스럽고 선선한 바람도 정겹다. 아마 선비샘-벽소령 구간과 함께 전체구간에서 가장 쉽게 걸었던 구간이지 싶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일단의 성인 무리들이 왁자지끌 시끄럽다. 아침에 성삼재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지 싶다. ‘반야봉을 간다, 만다. 다녀 올 테니 기다려라.’–아직은 힘이 남아 있지, 그럼.
우리 둘 그 누구도 지리산 제 2봉인 반야봉에 대해서는 언급 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 건너 뛰어야지, 제1봉을 다녀왔는데. 계속되는 정상의 능선길. 삼도봉(1,499m)에서 노고단(1,507m)까지는 표고차가 거의 없고 그 사이에 높낮이 차가 큰 곳도 별로 없다. 조금 걷다 보니 얼짱 20대가 앉아 무엇인가를 꺼내 놓는데 약식이다. 옆에는 제법 휴대용 ice box까지 있다.
“수고하십니다. 약식이네요”
”좀 드시겠습니까?”
”지리산 처음 인가요”
“네”
”그 ice box 부담되실텐데” 잘 얻어 먹었다.
좀 더 걷다 보니 일단의 초등학생 무리들. 심지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김치통을 손에 들고 간다. 누가 리더인지 모르지만 고생길이 훤하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이제부터 수시로 찾아 올거다. 물어 보니 더구나 종주한단다.- 어딘가에 몰래 버려 이산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겠구나
임걸령에 도착하니 꽤 넓은 공터에 샘이 있다. 친구가 물을 뜨러 간다. 나의 무릎은 통증 수준은 아니지만 여하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제 불필요한(?) 이동은 친구의 몫이다. 어제 얻은 담배도 동이 났다. 그곳에서 만난 한 청년에게 애걸해서 네 개피 얻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앞으로 담배 구걸은 자기 몫이라고 분명 일렀건만---. 어차피 각자의 특기를 가지고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이고 보면 큰 불만은 없다. 연기를 뿜고 있으니 물을 떠 온 친구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징한 넘
그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짐에 대한 이야기 하던 중
“너무들 먹는 것에 집착해요. 심지어 언젠가는 기타 메고 가는 사람도 봤어요”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인 여러분 “짐은 작고 가볍게 꾸립시다” 그런데 필수 장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려면 돈이 좀 듭니다.
이제부터 별 고통없이 노고단까지 간다는 말에 희망을 가지고 돼지평전을 거쳐 노고단에 도착하니 11시 56분 4시간 30분정도 걸렸다. 3시간에 와야 정상인데 무리하지 않으려고 속도를 내지 않았고 오는 중에 우리는 이미 성삼재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 뜨거운 물에 씻고 황기 닭백숙에 소주로 마무리 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다.-야무진 계획이었다
별천지다. 천왕봉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여행사에서 단체로 왔는지 인원 점검하고 난리다. 저 멀리 보이는 석탑. 그 뒤로 뭐가 보이는지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사진 한장 찍고. 이제 대피소로 가야 하는데 길은 수 갈래, 이정표도 없다. 구두 신은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이 길은 짧은 등산로, 저 길은 긴 차도란다. 이미 한 두 시간 전부터 서서히 발의 온도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돌이 없는 흙길이 푹신한 카페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지 오래다. 의심의 여지없니 도로길을 택한다. 조금 걷다 보니 길가 한 모퉁이에 중년의 세사람이 부른다. 술판이다. 마늘장아찌에 소라장아찌까지, 한잔 하란다. 둘이서 한잔씩 걸식. 맛있다. 정상쪽으로 옅은 운무가 휘날리는 가운데 원추리 꽃이 노랗게 피었다. 참 예쁘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차가 보인다. 3일만에 보는 기름 먹는 놈이다. 노고단 안부 이후로 이미 환속한 기분이다. 사람들 복장, 얼굴의 생기가 다르다. 취사장에 들어가니 반듯한 취사대에 콸콸 넘치는 수도꼭지가 대여섯개 보인다. 남은 부식 다 처리해야 한다. 마늘 다진 것 다 풀어 라면 두개 끓이고 햇반 데우고 친구 부인이 싸준 더덕 무침에 성찬이다.-더덕무침 일찍 발견했어야 하는데, 참 맛있다.- 들고 다닌 삶의 노폐물 버리고 남은 깐 마늘 젊은 후배들에게 적선하고 나니 - 내가 얻어 먹은 훈제 장어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다- 이제 배낭이 가볍다. 업보를 덜어 낸 탓이다. 버림의 미학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가볍게 콧노래 부르며 내려간다. 또 두 갈래 길. 결심을 해야 한다.
원래 지리산 종주란 화엄사든 대원사든 동쪽이나 서쪽 끝에서 시작하여 반대편 끝으로 내려와야 한다.
코스 1)성삼재까지 차편 이용-등정 길이 없으므로 종주로 인정하기 가장 힘들다.(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코스 2) 성삼재에서 완료-하산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으므로 80% 쳐 주어도 사실 과분하다. 코스 3) 천왕봉에서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하산-대원사 길보다는 다소 시간은 적게 걸리고 거리도 짧지만 대원사 방향이 완만한 것을 감안하면 90%는 쳐 주어도 무리가 없다.
“무릎 어때?” 친구가 묻는다.
“좀 쉬니 견딜만한데---“
“어쩔레”
“일단 성삼재까지 가서 결정하자”
“OK”
차도를 따라 성삼재까지 걷는다. 이정표가 보인다. “화엄사”
“가자. 최후의 10 Cm 까지 걷자. 아까워서 포기 못한다”
“그래 가자”
돌계단이다. 한 30분정도 걸었을까?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후렴 소리가 나온다. “으” 그렇다고 다시 그 길을 올라 가기는 더 싫다. 계속 되는 계단 하산 길. 이제는 오른쪽 관절을 상하 15도 이상 굽히기 힘들다. 게처럼 옆으로 걷기 시작한다. 2002년 법천골 코스로 하산하던 악몽이 망령처럼 살아 난다. 그때는 아들이 큰 원군(?)이 되어주었는데---.입을 다문다. 주먹을 쥔다. 친구가 배낭을 달란다. 어차피 지금은 무게가 문제가 아니라 사양한다. 등산로를 벗어나 지팡이를 하나 주워 온다. 고맙다.
몇 번 구호를 외쳤다.
“실실 가보자. 가야지 우짜노. 가다 보면 안 가겄나”
여지것 어느 구간에서도 물이 모자란 적은 없는데 노고단대피소에서 화엄사로 하산할 계획이 없었기에 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갈증은 심해지는데 물은 줄어 들고 그 누구도 계곡쪽으로 물을 뜨러 갈 엄두는 나지 않고 ----. 발은 뜨거워지는데 흙은 없다. 죽을 맛이다. 올라오는 사람에게 묻는 말은 하나 ”평지까지는 얼마나---?“
Lap time check.
18:50분 구례구 역에서 출발하는 예약 기차를 타기가 만만치 않다. 남원터미날에 전화하니 10시20분 막차란다. 그래 남원까지 버스타자. 버스 없으면 택시타자. 천천히 걷자.-친구에게 미안하기 그지 없다.
중간에 10대 몇 명이 뛰어 다닌다. 그래 니들은 좋겠다. 나도 처음부터 다리 끌고 다니지는 않았다. 참샘이다. 완전 사막의 오아시스다. 한껏 물 들이키니 혼자서 운동화 신고 온 아저씨 왈”다 왔어요”나란이 걷다 아스팔트가 나타난다. 환호성을 지른다. “고생 끝 행복 시작”(글쎄)
계곡을 가로지르면 빠른 등산로, 차도 따라 가면 좀 더 걸린단다. 당근 카페트가 깔린 길이지. 그런데 이 3km가 또 장난이 아니다. 발이 점점 뜨거워진다. 눈에 들어 오는 것 아무것도 없다. 경사는 없는데. 더 이상 참기 어렵다 싶을 때 화엄사 앞 주차장이다. 화엄사에 들러 참배도 하고 그 예쁜 가람도 구경해야 하는데. 여지껏 반경 10Km 이내의 국보를 지나친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다리를 지나 차도에 오르니 인도에 나무를 깔고 있다. 아스팔트보다는 푹신하겠지. 걷는다.힘들다. 발이 너무 뜨겁다. 주저앉았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지나가는 택시의 유혹이 양귀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공사중인 아저씨가 발걸음으로 뭘 재나 본데,
“잠깐만 일어 서 주시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못 일어 납니다.”
택시를 타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끊는다, 최후의 10 Cm까지- 빌어 먹을 놈.
보인다.
화엄사 일주문이 보인다.
매표소가 보인다.
종착역이다.
대장정의 끝이다.
그래 나는 해냈다.
긴 시간이었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참고 이겨낸 시간이었다.
6시13분. 노고단대피소에서 4시간23분 걸렸다. 안내서에는 3시간도 채 안 걸리는 것으로 나와있는데---. 38.2 Km를 꼬박 3일 걸려 걸었다. 걸은 시간만도 족히 25시간은 되지 쉽고, 두 밤을 산에서 잤고, 6끼니를 해먹었고 “실실 가보자. 가야지 우짜노. 가다 보면 안 가겄나”를 수없이 외치며 왔다.
민박을 겸하는 식당에서 3일만에 몸을 씻고 닭백숙에 소맥 폭탄 한잔. 이 한잔을 마시기 위해 이곳까지 왔던가? 둘은 별로 말이 없다.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할말이 참 많을 듯도 한데. 힘이 없는 탓이리라.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걸었을까?
왜 걸었을까?
또 걸을 수 있을까?
무엇을 얻었는가?
또 무엇을 잃었는가?
숨이 턱에까지 찰 때면 한가지 방법만이 유효하다. 머리를 숙이고 다음 발걸음을 놓을 자리만 보고 뚜벅 뚜벅 옮기면 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힘이 든다고 고개를 들어,
얼마나 남았을까?
과연 그곳에 도달할 수나 있을까?
저 멀리 무엇이 있을까?
과연 그 곳에는 행복과 평화가 있을까?
그런 상념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 발걸음은 너무나 무겁고 힘들어 진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꾸준히 걷고 걷다 보면 그곳에 이르리라.
좀 늦게 도착하면 어떤가? 못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도달하지 못하면 어떤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산골짜기 사이사이에 조금씩 남은 땅을 일구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면 산을 사랑할 일이지 않은가? 언젠가 Chicago 113층 빌딩-Sears Tower 꼭대기에서 사방을 둘러 보아도 지평선뿐인 것을 보곤 이유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있다. 이제는 다시는 그런 근거없는 열등감은 없을 것이다. 그 곳에서 태어나 사람은 절대 지리산을 종주할 수 없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한국에 태어나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듯해 뿌듯하다.
만 42의 나이에 첫 지리산 등정을 종주로 완수한 친구에게 찬사와 감사를 전한다. 다시 지리산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들이 산통의 괴로움을 다른 기쁨으로 승화시켜 또 아이를 낳듯 또 찾지 싶다.
징하고 독한 사람을 끌고 가신분은 어떤분일까???
가슴 찡한 행복 한보따리 들고 귀가하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