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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2003.06.01 10:27

1947년도 등천왕봉기

조회 수 179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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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한번 올린 적이있는 번역문인데 다시 올린 이유는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교정과 윤문을 거친 글이라 혹 참고가 될런가 해서입니다. 기타 문의사항이 있으면 제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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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천왕봉기

방장산은 우리나라 삼신산의 하나이니 그 최고 높은 봉우리를 천왕봉이라 하는데 아득히 허공에 솟아 멀리서 바라보면 올라가지 못할 듯한데도 등반하여 노는 사람들이 항상 끊이지 않는 것은 장관이 여기에 견줄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해년 봄에 나는 여러 친구들과 한번 등산하기로 약속하였다. 단산 인곡으로부터 백운동에 이르러 일박을 하고 그곳을 나와서 덕천을 거슬러서 경의당(敬義堂)에 이르러 남명선생(南冥先生) 사당을 배알하고 그 이튿날 아침 가랑비를 맞으며 출발하니 음력 삼월 삼십일이다.



사십리쯤 가서 중산리(中山里)에 도착하니 정오가 되었고 날씨도 쾌청하였는데 여기에서부터 산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점심 이후에 사람들은 몇 되의 쌀을 짊어지고 시내를 따라 힘들게 걷기도 하고 작은 오솔길로 나무숲을 지나가니 그 사이에 길을 분간하지 못할 부분이 많고 사방에 기이한 나무들이 많았다. 이상한 새들은 시냇가에서 울고, 폭포의 물소리는 산골짜기에 울렸으며 더러는 맑은 못 하얀 바윗돌이 허공을 비치니 마음에 즐겁고 볼 만하였다.



곧바로 꺾어 올라가지 못하고 산등성이 길로 올라가니 더욱 구불구불하고 늙은 등나무 나무에 뒤엉켜 있는 것이 마치 용이 누워있고 이무기가 거꾸러져 있는 것과 같았으며 떨어진 낙엽은 발이 묻힐 정도였다. 낙엽을 헤치고 삼십리를 올라가매 작은 가람이 하나 있으니 그 곳이 법계사(法界寺)이다. 초탈하여 사람 사는 경계가 아닌 듯하였고 해 또한 저물어 숙박을 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바위 위에 올라가 노인성(老人星)을 기다렸지만 날씨가 흐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이튿날 천왕봉을 바라보고서 올라가니 이로부터 십리쯤인데 험한 산길은 몇 배나 힘들었다. 이를 몇시간동안 헤매어 올라가니 마치 나의 몸은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았다. 서남쪽으로 대치하여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산봉우리는 반야봉이며 그 나머지는 감히 우러러 바라볼 수 없었다. 많은 산들이 앞에 나열하여 엎드려 있는 것은 모두가 마치 대장의 깃발을 바라보고서 지휘를 받는 것과 같았다. 영, 호남 두 고을의 지역은 좌우로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방달(房闥)과 같으며 바깥으로는 바다가 아득하여 눈을 다하여도 미치지 않고 인간세를 굽어보니 마치 초파리와 같고 달팽이 뿔과 같았다. 저 만,촉(蠻觸) 두 나라가 분분하게 아옹다옹 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천왕봉 정상 가까운 곳에 나무는 없고 바위가 많으며 층층한 봉우리 위에 높다랗게 바위가 하나 서 있으니 그 곳이 일월대다. 바위 곁에는 고금의 사람들이 글자를 새긴 것이 많고 그 아래에 나무를 쌓아 집을 만들었는데 이는 등산객의 잠자리에 대비한 것이었다. 산신사(山神祠)가 일월대 곁에 있는데 돌로 만든 탑과 석상으로 가서 절을 하며 聖人이 내려와 세상을 구제해 주기를 빌었다. 산의 서쪽 길을 따라 내려오니 기암과 기이한 봉우리들이 앞에 있어 호랑이와 표범이 꿇어앉아 있고 신선과 부처가 걸터앉아 있는 것 같았으며 떨기로 서 있는 삼나무와 전나무 가지가 모두 북쪽으로 드리워져 남쪽으로 뻗지 못한 것은 바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길은 바위구멍으로 떨어져 내려가는데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하며 나무 사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으니 이를 통천문이라 한다. 조금 내려와서 돌아보니 산봉우리는 이미 백운 사이에 걸쳐 있었다. 삼십리길을 걸어 세석평전에 도착하니 세상에서 말하는 청학동이다. 넓고 광활하여 주위가 십리쯤 되며 다른 볼거리는 없이 단지 작은 바위들이 노란 잡초사이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빙 둘러 남쪽으로 나무숲 사이에 피어나는 연기를 보고서 그곳으로 찾아가니 상수리나무로 엮은 집이 바위 사이에 듬성듬성 있고 밭둑도 보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모두 다른 지방 말씨를 쓰고 있었다. 양씨노인의 인도로 그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들을 만한 말이 많았으며 눈앞에는 곧바로 동남쪽으로 바다가 통하는데 맑은 날씨면 은은히 배가 보인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안개가 아득하니 계곡밖 산 아래는 안개가 자욱하지만 산위에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은 바로 이것으로 그 높이를 짐작할 만하였다



다시 돌아 조금 내려올 즈음에 석문이 있는데 그 높이는 한발 남짓 되었고 너비는 그 절반쯤 되었으며 이는 마치 사람이 정교하게 깎아 놓은 듯하였다. 동리에서 나온 이가 이 길을 따르지 않으면 내려올 길이 없다. 긴 골짜기 삼십리를 내려와 거림리에 이르니 이곳은 지난번에 산 아래로 지나간 적이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돌이켜 생각하니 하늘에서 내려온 듯싶었다.



이번 길은 천왕봉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다른 여러 산의 아름다움을 다 구경하지는 못했으나 가슴이 열리고 시계의 드넓음을 평생에 처음 느껴본 일이라 할 만하니 지난날에 등산이라고는 별로 하지 않다가 새삼 산다운 산을 처음 올라본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를 기록하는 것이다. 함께 등산하였던 사람은 남경진(南敬眞),이대원(李大遠),심정옥(沈正玉),권뇌경(權雷卿),권공술(權孔述),권응중(權應中), 그리고 나 이렇게 일곱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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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03.06.01 22:10
    네티즌들에게는 더 편안한 글이 되었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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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3.06.02 00:32
    한자 한자 구슬같이 영롱한 문장이 책으로 나왔다니 반갑기 그지없읍니다.혹시 책을 접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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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3.06.02 01:15
    할아버님의 자료(업적)을 정성껏 가꾸시는 변호사님의
    노고와 효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祖孫 두분다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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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메 2003.06.04 11:12
    이미 지난번에 글을 접한후에 홈페이지를 돌아보았는데,
    대단한 집안이십니다..
    후손의 奉祀 또한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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